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 김나영 Apr 26. 2021

7 < 선녀 콤플렉스 >

아주 어릴 시절, 어떤 꿈들을 꾸며 살았습니까? 

나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보면, 누군가 아이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남자아이는 대개가 대통령· 장군· 연예인· 박사· 의사 등, 어른들의 욕구가 반영된 그래서 다소 거창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구성원을 나열했고 여자아이들은 미스코리아나 선생님과 같은 사회적 구성원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인 인물인 공주나 왕비가 되고 싶어 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나 또한 동화를 많이 읽은 탓인지 언제나 비현실적인 인물을 꿈꾸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요술공주와 선녀라는 인물입니다. 나름대로의 이유 인즉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서, 착하고 가여운 사람들 편에서 그들을 도와주면 얼마나 행복하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토록 맑고 순수한 시절이 내게도 있었는가 싶은 게,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기도 합니다. 

그때 내가 바라던 선녀란 신의 영역에서 살며 날아다닐 수도 있고 신선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는 신통력을 지닌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바로 仙女라는 한자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커가면서 막연하게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선녀가 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은 사라지지 않은 채 善女로서라도 살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仙女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면 善女가 되어 착하게 살면서 적어도 남에게 해를 주지는 않는 그럼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 자라면서 그런 마음은 나의 성공에 대한 열망과 좌절감, 삶에 대한 애착과 상대적 부족 감등에 의해 밀려났고, 다른 사람들을 향한 이유 없는 분노와 적대감이 생기고부터는 아예 나만의 문제에만 골똘해지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순수와 열정이라는 것이 내 안에서 팽팽하게 대립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내게는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습니다. 어쩌면 그 두 가지는 애초부터 서로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었는데, 내가 스스로 그것을 편 갈라놓고 둘 중 하나를 택하려면 나머지 하나는 버려져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힘이 들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순수와 열정은 모두가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해 주는 것인데 순수는 어쩐지 神의 영역에 있는 것처럼 여겨졌고 열정은 철저하게 세속적인 영역에 놓여 있는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순수함을 일지 않고도 얼마든지 열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체득해 나가게 되긴 했지만 과거에는 순수와 열정이, 선과 악이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대결구도로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하나의 편견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쨌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강박관념처럼 내 안에서 도드라질 땐, 나 혼자만 선하게 살면 뭐해.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자기 행복을 위해 못된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열정적으로 살려면 선하게만 살아서는 안 돼.라는 비뚤어진 시각으로, 다시 선해지고자 하는 나의 영혼의 목소리를 듣기를 강하게 거부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그런 마음을 지닌 시기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나의 마음이 결코 편안할 수가 없었고 나에게 대한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 너무도 컸기에 그 사랑의 힘 앞에서 나는 언제나 온순한 양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 누군가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 대상이 수많은 사람들이 되던지, 아니면 나의 힘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단 한 사람이던지 간에.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기 것을 주장하지 않고 모든 일에 착하고 순하게만 대응을 하면 ‘웬 천사표?’하며 오히려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는 가 봅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주관대로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선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달려가 안아주고 싶어 집니다.

나도 제대로 잘하지 못하고 있는데 용감하게 善女(선하다, 라는 의미가 같다고 여겨 요즘 사람들은 선녀 대신 천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가 되어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는 누군가에게 선을 베풀며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스스로가 천사의 표시를 지녔든 아니든 우리는 이미 선한 것에 대한 갈망을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는데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착하면 왠지 약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인정을 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자선을 베풀 때,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라는 것을 은연중에 강요당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그것이 분명 미덕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다시 선녀의 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이제 또다시 선녀가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선녀가 되어 날아갈 수도 있기를 바랍니다. 仙女의 옷을 입고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진정한 善女가 되기를 원합니다. 한 없이 善해지기란 너무도 멀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분노가 나를 방해하기도 하겠지만, 도를 닦는 마음으로 仙과 善이 내 안에서 만나 새로운 나를 창조하도록 스스로를 격려해 줄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6 < 진흙 속에 피어난 꽃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