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제일 먼저 추운 날씨가 떠오르고 온 세상에 하얗게 쌓여 포근한 솜이불을 덮은 듯, 훈훈함을 안겨주는 흰 눈이 떠오르기도 할 것입니다.
명절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즐거운 놀이를 하는 정겨움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구세군의 종소리와 빨간 자선냄비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연인들은 사랑하는 이와의 수많은 추억들을 떠올릴 것이고 학생들은 수능 시험과 방학과 졸업 등을 생각할 것입니다. 또 따뜻한 호빵과 구수한 군밤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스키장과 따뜻한 나라로의 낭만적인 여행을 떠올리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할 암담한 현실을 먼저 떠올리고는 한숨부터 짓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겨울이 되면 항상 그 모든 것들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바로 하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순록을 이끌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입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내게 허허. 하고 웃어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나에게 산타클로스는 언제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인가 봅니다. 아마도 그것은 어려서부터 성탄절을 기리며 지내온 종교적 영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과 산타클로스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산타클로스가 이 세상에 오는 때도 크리스마스이브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성탄절을 앞두고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전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기쁘게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보아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크리스마스가 되면 모두가 기뻐하고 세상이 온통 즐거움의 소리로 술렁거리는 듯합니다. 그리고는 모두들 마음이 훈훈해져서 모처럼 이웃을 돌아보기도 하고 서로에게 무척 관대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아주 어릴 적에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우리가 잠이 든 동안에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간다고 믿었었습니다. 우리는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대하며 벽이나 문고리에 양말을 매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선물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부랴부랴 착한 일을 찾아 하기도 했습니다.
너그러운 산타 할아버지는 그런 모습마저 갸륵하게 여기는지 다음 날 어김없이 양말 속에 선물을 넣어 두고 가셨고, 어떤 사연들로 인해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는 서운함과 함께 더욱 착하게 살며 다음 해를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곤 했습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서운한 마음에 산타 할아버지는 없는 거야. 하고 원망을 해보지만 다음 해가 되면 또다시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게 되고 맙니다.
누가 만들었고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는 몰라도 어릴 적 우리의 동심은 산타클로스라는 존재로 인해 더욱 해맑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어른이 되고 세상의 이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차츰차츰 산타가 실제로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우리의 마음 안에서 아예 그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동심을 지켜주던 그 마지막 보루 같은 존재가 마음 안에서 영원히 지워진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요즘에는 아이들마저도 너무나 영악해져서 산타클로스는 없는 거라고, 모두가 어른들이 꾸며낸 거라고, 선물을 주는 사람은 엄마와 아빠들이라고, 그래서 내가 갖고 싶은 선물을 엄마와 아빠한테 말하면 되는 거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도 자랑스럽다는 듯이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아이들에게 뻐기는 말투로 으스대며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세상의 어른들은 그저 연례적인 이벤트 행사로서만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를 치장해서 그나마 아이들을 기쁘게 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상업적 이득을 꾀합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동심(童心)이란 무엇인가요. 문자 그대로 아이들만이 지니는 감정일까요.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동심의 진짜 의미는 어른이라 해도 어린아이처럼, 없는 존재조차 온전히 믿어 버릴 수 있을 만큼의 순수한 감정을 뜻하는 것일 겁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산타클로스라는 존재 하나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동심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어리석어 보일만큼 맹목적으로 모든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순수함을 간직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동심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요즘엔 산타클로스 대신에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들이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역시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는 더욱 믿고 싶은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다행이겠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읽었던 수많은 동화책들의 주인공들이 아직도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그만큼 순수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가상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기에 마음이 따뜻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수록 그에게서 순수한 마음과 동심이 발견될 때가 많습니다. 동심을 지닌 사람들은 어른의 이치로 틀에 박힌 듯 스스로를 가두지 않기에 더 많은 아이디어와 창조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눈물이 메마르지 않았다는 것 역시 동심이 메마르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일수록 앞 뒤 안 가리고 울어대지만 그것은 아이들이 어른들 만큼 많은 욕심을 갖지도 않기에 텅 빈 마음으로 울 줄 알기 때문입니다.
동심이 사라져서 모질고 독한 마음들로 가득 차 버린 사람들에게서는 희한하게도 눈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소위 폭력조직의 보스가 되어 못된 짓을 하는 자일 지라도 어떠한 이유로든 눈물을 흘릴 줄 안다면 그는 그나마 의적이 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심이 아직은 살아 있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서 영혼이 아직은 순수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피도 눈물도 없는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의 주변에는 의외로 너무나 많습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과 공무원들이 모두 동심을 잃지 않아 준다면 어쩐지 우리의 사회가 더욱 깨끗하고 따뜻해질 것만 같습니다. 모두가 아이처럼 순수해질 테니까요.
내가 사는 동네에는 정말로 산타클로스를 꿈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진짜 산타클로스라고 믿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산타클로스의 고향으로 알려진 핀란드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는 웃을 때에도 산타클로스처럼 여유롭고 푸근하게 웃습니다. 겨울이 오면 산타클로스의 옷을 입고 벤치에서 어린아이들과 껄껄거리며 행복해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동화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그를 비웃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와 잠시라도 함께 있으면 모두가 저절로 마음이 기뻐지기 때문입니다. 그의 얼굴엔 아이처럼 행복한 미소가 가득합니다. 그에게 깃들어 있는 평화는 저에게도 그 어떤 동경과 선망을 불러일으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본성과 무의식에서는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TV의 어떤 프로그램에서 누군가 산타클로스의 옷을 입고 나온 것을 보면 그가 분명 가짜인 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현실에 찌들어 잠시 잊고 있을 뿐 우리 어른들에게는 어릴 적 우리에게 꿈을 주었던 산타클로스에게 애틋한 그리움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산타클로스가 많아지는 세상을 꿈꾸어봅니다. 그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맑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를 닮아 우리들 모두가 산타클로스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