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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김나영 Apr 27. 2021

9 <집착, 가만히 내려놓기>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것들에 집착을 합니다. 한 사람이, 아이로 태어나서 자라고 늙어 죽기까지 일생을 거쳐 집착하지 않는 순간이 없습니다. 식욕을 비롯한 본능적인 욕망과 좋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 그리고 사람에 대한 소유욕과 갈망, 심지어 그리움까지도 나는 모두 집착이라고 생각합니다.

욕망이 우리 안에 자리하기 시작해서 조금 긴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다면 그때부터 모든 욕망이 집착으로 변하는 것이므로 욕망과 집착은 근본적으로 하나라고 보는 것입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인간의 고통과 번뇌가 욕심과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깨달음을 얻고 해탈을 하려면 모든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도의 길로 접어든 사람이 아니고서야 우리들 같은 평범한 사람이 모든 집착을 버리기가 과연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니, 버려야 할 이유조차 알고 싶지도 않거나 안다고 해도 그래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다 행복해질 수 있도록 어느 면에서 욕망과 집착은 긍정적인 역할을 해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배고픔이 크면 클수록 식욕에 대한 집착이 커질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채워지는 충족감은 훨씬 감격스럽고 그 음식들이 고맙게 느껴질 것입니다. 또 우리는 우리가 보다 풍요롭고자 하는 욕망 덕분에 더 많은 편리한 것들을 만들 수 있었고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를 더욱 분발하게 해 주고, 집착으로 자리해서라도 끝내 포기하지 않게 함으로써 마침내 이루도록 해줍니다.


집착은 성취감과 행복감을 만끽하도록 완성된 결과를 이끌어 내는데 없어서는 안 될 원천적인 힘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쪽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꿈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열망하는 것은 똑같은데도 집착을 갖는다.라고 하지 않고, 비전을 갖는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다치게 하거나 남을 헤치게 되는 집착만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수용해도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랑의 속성이 본래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간혹 지고지순한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며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사랑하는 이에 대해 혹은 사랑의 감정 자체에 아름다운 집착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의 그런 사랑을 통해 우리는 그래도 아직은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리라 믿고 사랑의 결말에 대해 회의를 품고 싶지 않아 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집착이라는 것이 반드시 우리에게서 버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우리가 집착이라고 느껴지는 상황에 놓이면 그것을 억지로 버리려 애쓸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그 자리에 잠시 내려놓으라고 하고 싶습니다. 억지로 버리려고 하면 그야말로 우리는 그것에 더욱 집착을 할 수밖에 없어질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음식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갖게 되어, 그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금연을 시도하려는 사람도 금단 증상에 시달려야 할 만큼 담배에 대한 집착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헤어질 때가 되어 저절로 마음이 식은 연인이 아닌데 강제로 그들을 갈라놓으려 한다면 그들은 더욱 큰 결속력으로 무슨 큰일이라도 저지를 듯 단단하게 뭉쳐집니다.

물건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 백화점엘 가면 이것저것 모두 사고 싶어 집니다. 그때 못 사면 꼭 후회가 될 것만 같아 안달이 납니다.

성공과 일에 중독이 된 사람 역시 그것이 집착인 줄 알면서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전전긍긍 뒤척이기만 합니다. 

그들이 이러한 모든 집착들을 무작정 버리려고 하지 말고, 그저 가만히 내려놓으려는 마음을 먹는다면 스스로를 옭아매는 집착으로부터 오히려 쉽게 벗어나 절제하려는 마음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일에 대해서도 과도한 집착이 조절되고 균형감각을 지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 유럽 배낭여행 시절에 코스가 같아 며칠 동행했던 한국인 여자가 생각이 납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독일의 뮌헨 역이었습니다. 깡마른 몸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머리 길이까지 매우 짧아서 얼핏 보면 남자 같기도 했습니다. 강건함이 느껴지는 그녀이긴 했지만 그녀의 모습 속에서 정말 그동안 엄청나게 알뜰 여행을 해온 흔적이 잔뜩 배어 나왔습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있던 그 잠깐의 기간 동안에도 비교적 물품의 값이 싼 편의점만 찾아다녔습니다. 마침내 커다란 바게트 빵 하나를 사서 오로지 딸기잼만을 발라 먹으며 돌아다녔고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박물관만을 용케도 찾아 관광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너무나 큰 가치를 지닌 곳일지라도 그녀는 돈을 절약해야 했으므로 무조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그녀에게서 절약 여행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다니는 동안, 속이 많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고작 다른 나라의 편의점을 찾아다니려고 그 먼 나라까지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본래의 여행의 목적과는 아주 동떨어져서 무슨 극기 훈련을 하러 온 사람처럼 그렇게 다니면서도, 그녀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 말도 못 하고 그냥 쫓아다녔습니다.

결국 그녀와 코스가 달라 헤어진 뒤 다른 지역을 돌던 나는 뮌헨을 제대로 보기 위해 다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여행의 목적이나 방식이 무척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녀는 나와 만난 그날이 여행한 지 딱 두 달째 되는 날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 유럽의 못 가본 곳을 모두 돌아볼 거라고 다부지게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약간의 돈을 마련했고 그것을 평소에 꿈꾸던 유럽 배낭여행에 모두 투자하기로 한 것인데, 내가 나름대로 알뜰하게 계획했어도 한 달 정도를 돌아볼 만큼밖에 안 되는 돈으로 그녀는 세 달 동안 유럽의 단 한 나라도 빠뜨리지 않고 돌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그 모험정신이 참으로 가상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를 집착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을 만끽하지 못하고 한정된 시간과 경비에 얽매여 여행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그녀가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녀에게는 두 번 다시 유럽여행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그렇게 숫자적으로 많은 나라에 집착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뭐.’하는 생각으로 자기 인생에 대한 긍정적인 희망과 여유로움을 가졌더라면 집착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이미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언제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나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집착을 내려놓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를 지닌 것에 집착을 하면 사소한 집착은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거나 쉽게 던져버릴 수 있어집니다.


내가 우주의 가장 선하고 큰 존재인 창조주와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믿음은 마음이 부자가 된 듯 풍요로워져서, 사람이나 물건에 과도한 집착을 하지 않을 수 있게 해 줍니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절대자의 도움으로 모든 에너지를 받아, 보다 의미 있는 큰 것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 가득 차오르는 자부심으로 모든 것을 조화롭게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집착도 잘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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