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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택 Jan 05. 2024

긴 봄(长春)을 떠나다

샹그릴라 호텔에 지점 사무실을 개설하다

  “개나리의 노란 꽃 빛으로 긴 봄(長春)이 오나 보다. 

  겨울 끝자락에 매달린 만주(長春) 벌판에는 아직 바람이 세찬데.”


  때는 바야흐로 4월 중순이지만 이른 아침 찬 바람 매서운 거리에는 아직도 두꺼운 국방색의 롱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오간다. 창춘 샹그릴라 호텔 입구에서 차를 내리니 도어맨이 안쪽에서 육중한 유리문을 열어 준다. 4월의 이른 아침. 아직은 매서운 만주의 찬 바람이 따스한 온기의 호텔 안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간다. 로비 안쪽으로 들어서면 넓은 라운지 바가 눈에 들어온다. 무대 옆 앰프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기타 잭이 꽂혀 있고 스네어 드럼 아래쪽으로는 드럼 스틱이 떨어져 있다. 어젯밤 늦게 사무실을 나서며 1층 로비에 울려 퍼지던 필리핀 4인조 밴드의 〈Don’t play that song〉의 선율이 귓가에 맴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가 키를 꺼내 사무실 문을 연다. 카운터 옆 벽에 붙어 있는 전등 스위치를 모두 켜고 문이 자동으로 닫히지 않게 바닥의 도어 홀더에 툭 소리가 날 때까지 문을 밀어 놓는다. 승무원복을 입은 모델 팝 스탠드를 문 앞으로 옮겨 세워 놓는다. 그녀에게 예의를 갖추어 하루의 매출을 부탁하고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 박스와 회사 내부 통보서를 체크하고 나면 사무실 한쪽의 탕비실에서 커피 한 잔을 타서 두 손으로 감싸들고 자리로 돌아온다. 하루의 일과는 늘 그렇게 시작한다. 이제 40분 정도 지나면 직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한다. 그들은 갱의실에서 유니폼으로 바꿔 입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그들 역시 그들의 일과를 시작한다.


  1998년 7월 1일 창춘지점장 발령을 받고 창춘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주기장에 멈춘 항공기의 트랩을 걸어 내려오니 트랩 아래 기다리던 도착 직원이 앞장서서 청사 쪽으로 안내를 한다. 붉은 글씨로 ‘到达(도착)’이라고 적힌 청사 입구를 향해 가는 중에 “잘못 왔다!”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청사 건물 하나 놓여 있고 탑승교도 없는 공항에 초여름 이른 저녁인데도 아직 땔감 태우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니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창춘은 1996년 6월 정기성 전세편으로 처음 운항했다. 이후 한·중 항공회담에서 창춘을 정기편 목적지점으로 지정하고 1998년 3월 기존 전세편을 정기편으로 전환했다. 나는 정기편 취항과 함께 창춘 시내 영업지점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판매망 구축을 위해 그해 7월 1일 창춘에 도착했다. 


  다음 날 공항 사무실로 출근하여 직원들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지점 직원들의 소망은 겨울에 따뜻한 물 나오는 곳에서 근무하는 것이었다. 사무실이 한적하고 허름한(그때는 그랬다) 공항청사에 있었고 겨울에도 온수가 공급되지 않았으니 오죽했겠는가? 나는 이듬해인 1999년 4월 직원들의 그 소박한 소망을 현실로 바꾸었다.


  창춘은 1996년 정기성 전세편으로 운항했기 때문에 시내에 영업지점을 개설하지 못하고 공항 사무실만 두고 있었다. 한·중 항공협정은 정기편 취항의 경우에만 시내에 영업지점을 개설하도록 허용한다. 전세편의 경우에는 영업활동을 제한하여 시내에 영업지점을 두지 못하게 했다. 공항에서 운송 서비스만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98년 7월 취임 직전 서울-창춘 노선이 정기편으로 전환되면서 시내지점을 개설할 수 있게 되었다. 


  사무실 물색 대상으로 나는 두 가지 선결 조건이 있었다. 하나는 겨울에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곳이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여행사와 손님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창춘 샹그릴라 호텔이 안성맞춤이었다. 따뜻한 물이 나오고 접근성이 좋다. 문제는 비용이다.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 지점장으로서 창춘 최고의 호텔에 사무실을 둔다는 부담감이 컸으나 다행히 운이 좋았다. 


  창춘 샹그릴라 호텔은 시내 중심가에 갓 개업한 최고급 호텔이다. 나는 총지배인과 협상에 나섰다. 외국계 항공사 사무실을 호텔에 두는 것이 그들의 영업과 홍보에도 유익할 거라는 나의 설득에 호텔 측이 쉽게 넘어가 주었다. 당시 아시아나는 유일한 외항사였다. 무게감이 있었다. 샹그릴라 측은 그들의 표준 사무실 임차료를 적용하지 않고 우리 회사의 임차료 지급 예산에 맞추어 계약하는 선의를 제공했다. 외국인 항공사 사무실 유치가 기업 사무실의 후속 유치에 유익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창춘공항 사무실에서 샹그릴라 호텔로 이사하던 1999년 4월 8일. 직원들의 그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4월이면 아직도 날씨가 춥고 때때로 폭설이 내려 항공기가 운항하지 못할 정도로 추운 날도 있으니 따뜻한 물이 나오는 호텔 사무실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들이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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