쭝화(中华)와 노키아 디지털 핸드폰, 그리고 항공권
나는 창춘지점장으로 발령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하기 힘든 한 가지 판매 시스템에 직면했다. 중국 내 모든 지점은 지점마다 노선별 판매가격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노선별 판매가격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베이징-서울 구간의 항공권을 베이징지점에서 판매하는 가격과 창춘지점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서로 다르다. 한 회사의 같은 서비스 상품인데 구매하는 지역에 따라 가격이 서로 다르다. 이상하지 않은가?
중국에 쭝화(中华)라는 고급 담배가 있다. 1990년대 후반 중국에서 폼 잡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루비통 타이가(Taiga) 손가방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휴대품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여의도 63빌딩의 모습을 닮은 노키아 디지털 핸드폰이고 또 하나는 쭝화 담배다. 별것 아닌 이 두 가지가 이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허세의 도구로 쓰인다. 고급 식당의 원탁 테이블에 앉으면 쭝화 담배부터 손가방에서 꺼낸다. 짧은 인사와 함께 한 개비 한 개비씩 일행들이 앉은 테이블 위로 던진다. 이들은 물건을 던져서 주는 것이 무례가 아니다.
1990년대 중·후반 노키아 핸드폰은 2023년 12월 환율로 220만 원이고 쭝화 담배는 한 갑에 9천 원이 넘는다. 같은 시기 한국 담배인 솔과 디스가 1,000원~1,500원 정도였으니 고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 쭝화 담배 가격이 도시마다 다르고 또 같은 도시 내에서도 동네마다 다르다. 어느 지역에서는 36위안에 팔고 또 어느 지역에서는 50위안에 판다.
노키아 휴대폰도 마찬가지다. 베이징에서는 12,000위안인데 덜덜거리는 중국 택시(的士)를 타고 2시간을 달려 옆 동네 톈진으로 가면 8,000위안에 살 수 있다. 덜덜거리는 그 택시를 다시 타고 돌아와야 하지만 4,000위안을 싸게 살 수 있다. 이 이야기는 황당한 바보들의 이야기인지라 기회가 되면 나중에 하기로 하자. 어쨌든 가격이 지역마다 다르다. 똑같은 담배인데. 그래도 담배와 항공권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격이 다른데.
해외지점은 지점마다 모든 국제선의 구간별 판매 가격 테이블을 가지고 있다. 창춘지점이라고 해서 창춘-서울 구간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베이징-서울 구간 등 타 구간의 항공권 역시 판매한다.
창춘에 사는 리우 씨는 아시아나항공 팬이다. 물론 창춘-서울노선은 ‘1노선 1사’ 정책의 적용을 받아 한국과 중국 각각 하나의 지정 항공사만 운항한다. 한국은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하고 중국은 북방항공이 운항한다. 창춘-서울노선에서는 대한항공을 경험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막혀있다. 아시아나항공의 팬일 수밖에 없다. 한·중 간 항공 정책이 항공사 간 경쟁을 차단하고 기존 항공사를 보호한다.
리우 씨는 아시아나항공이 서비스도 좋고 기내식도 맛있단다. 승무원이 너무 친절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그가 서울을 가는데 개인 사정상 창춘에서 직접 가지 않고 베이징을 거쳐서 간다. 그런데 창춘지점에서 판매하는 베이징-서울 항공권 가격이 베이징에서 판매하는 베이징-서울 항공권 가격보다 훨씬 비싸다. 담배도 아닌데? 여러분이 창춘에 사는 Mr. Liu라면 기꺼이 비싼 돈을 지불하고 창춘지점의 매출을 위해 희생할 수 있겠는가?
리우 씨에게는 이제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베이징에 가서 아시아나 항공권을 창춘지점보다 싸게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창춘 소재 대한항공 판매 대리점에서 대한항공의 베이징-서울 항공권을 구매하는 것이다. 다행히 리우 씨가 베이징에서 아시아나항공 지점이나 대리점을 찾아 항공권을 구매한다면 좋겠지만 그는 창춘 소재의 대한항공 대리점을 통해 베이징-서울 대한항공 항공권을 구매할 수도 있다. 대한항공은 창춘에서 구매하나 베이징에서 구매하나 동일한 가격이니 신뢰도 있다. 그리고 창춘에서 항공권을 구매해서 가면 베이징에서 대리점을 찾아다니며 구매해야 하는 부담감도 없다. 한국 갈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베이징으로 출발하는 발걸음도 가볍다.
개별 항공사의 배려 없는 서비스 판매시스템이 고객에게 얼마나 큰 불편을 주는지 이해했으면 좋겠다. 또 그것이 회사의 수입에도 마이너스 요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춘이라는 1차 접점에서 고객을 유치하지 못하면 고객의 선택은 넓어진다. 고객의 선택이 넓어지면 수요를 유실할 위험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모든 지점은 같은 구간에 같은 가격을 공유하여 수요 발생의 1차 접점에서 바로 유치하는 것이 회사 수입에 유익하다고 주장했다.
개별지점(베이징지점)은 그 지점의 관할 노선(베이징-서울 노선)에서 달성해야 하는 매출 목표에 대한 부담이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타 지점(창춘지점 등)들에 비해 낮은 판매가격으로 차별화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되었다. 하나는 회사의 가격 정책에 대한 고객의 신뢰도 하락이고 다른 하나는 회사의 수입 손실이다. 나는 모든 지점은 단일 가격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들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기회가 되면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이후 진통이 있었고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였지만 모든 지점이 동일한 가격 테이블을 공유하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