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택 Jan 09. 2024

긴 봄(長春)을 떠나다(4)

창춘을 떠나 충칭으로 가다

  나는 머릿속으로 창춘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엇부터 정리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순서를 매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임대계약 문제가 맘에 걸렸다. 2000년 1월 1일에 새 아파트를 임대계약했는데 4개월 만에 계약을 종료해야 하니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물론, 통상적으로 12개월 임차료를 한꺼번에 선지불했거나, 아니면 3개월마다, 혹은 6개월마다 지불하는 조건으로 계약했다면 집주인이 미리 받은 돈이 있으니 괜찮겠지만, 본 계약은 월세 10,000위안을 매월 지불하기로 하고 계약하였다.


  월세를 한 달 한 달 지급하는 방식을 팡동(房东, 집주인)은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회사에서 주택 임차료를 한 달씩 지급하는 것을 설명하고, 그리고 지점장으로 재직하는 잔여기간 2년 반 동안 계속 거주한다는 점을 강조하여 임대차계약을 관철하였다. 그런데, 거주한 지 4개월 만에 계약을 파기하게 되었으니 팡동은 노발대발할 것이 분명하다. 임대를 위해 새로 구입한 고가의 가구에 대한 변상이 없으면 회사를 폭파하겠다고 협박할 것이다. 지린성 건달로 잔뼈가 굵었으니 혹시 모를 그 가능성을 소홀히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매우 흥분한 어조로 그리고 내가 예측한 그대로 “회사를 폭파하러 가겠다”라고 했다. 나는 그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최선의 용어를 사용하며 설득했다. 


  내가 임차하여 사용한 아파트는 장춘의 고급 거주지역에 위치하며, 1층과 2층 복층으로 되어 있고, 거실에는 한쪽 벽을 차지하는 초대형 스크린의 TV가 설치되어 있다. 침대, 소파, 냉장고 등 모든 가구를 최고급으로 새로 비치했으니 손해가 막심할 일이다. 팡동은 지린성 지역의 건달 출신이다. 그 아파트는 창춘시 00 판사처(办事处) 린 처장이 내게 특별히 소개해 준 집이다. 그의 개입이 없었다면 임차료 월별 지급으로는 그러한 고급 저택을 그 가격에 계약할 수 없었다. 


  린 처장은 1998년 당시 창춘에 주재하는 유일한 외항사 지점장인 나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그때는 00 판사처가 실세였다. 그래서인지 한국 가라오케 사장은 물론이고 창춘의 교수, 의사, 사업가, 건달 할 것 없이 사교 관계가 넓었다. 이곳 지린성에서 크고 작은 사업을 하는 한국인들 역시 그를 통해 민원을 해결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그가 나를 찾아와 벤츠나 BMW, 아우디 할 것 없이 원하는 차가 있으면 공짜로 주겠으니 말만 하란다. 번호판은 없으니 알아서 달라고 한다. 사람을 찾으면 번호판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아니면, 다른 번호판을 달고 다니다가 옌다(严打, 공안의 불시 검문) 기간 동안은 집에 세워 두고 다른 차를 타고 다니라고 가르쳐 준다. 자기도 그렇게 타고 다닌단다. 국가의 록을 먹는 공무원이 외제 차량 서·너 대를 바꿔 가며 불법차량을 몰고 다닌다. 불시 검문 기간이 되면 자기가 미리 알려 줄 테니 걱정할 것 없다고 큰소리친다. 공안(경찰)에도 믿을 만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역의 권력과 재력가들은 이러한 관계 속에서 서로 도우며 공생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일로 그와 엮이고 싶지도 않았고, 또 항공사를 대표해서 나온 사람이 그런 범법행위를 할 수는 없어서 정중히 사양했다.


  나는 집을 소개해 준 린 처장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에게 충칭으로 발령이 난 사실을 알리고 집주인에게 사정 설명을 잘해 달라고 부탁했다. 린 처장은 난감하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충칭으로 가기도 전에 집주인으로부터 큰 수모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충칭 지점장 발령을 받고 집주인의 위협을 적절히 관리하며 그렇게 지린성의 긴 봄(長春)을 뒤로 하고 떠났다. (끝)     

작가의 이전글 긴 봄(長春)을 떠나다(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