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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택 Jan 11. 2024

충칭(重庆)에 이슬비는 내리고(2)

산의 도시(山城) 충칭

  황화위엔 대교를 건너 뱀처럼 감은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덧 시내로 들어섰다. 도시의 생김새가 어린 시절에 떠나온 고향 여수를 닮았다. 도시의 굴곡이 심하고 언덕배기에도 집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평지에 도시가 조성된 창춘과는 달리 충칭의 도로는 경사와 굴곡이 심하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도시에서 흔히 보이는 자전거는 보이지 않고 오토바이가 많이 보였다. 이런 지형적인 원인으로 충칭은 일찍이 오토바이 산업이 발달했다. 리판, 롱싱, 중선 등 유명한 오토바이 제조업체가 많다. 그들이 생산하는 오토바이는 내수용으로 사용하고 또 베트남 등지로 수출한다. 베트남 오토바이 시장의 70%를 중국이 점유한다. 

  

  도로는 오가는 차량으로 혼잡하고, 어둑어둑한 밤 길가 훠궈 식당에는 사람이 붐빈다. 창춘 역시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았는데 여기도 사람이 참 많다. 차는 어느덧 시내 중심에 있는 충칭빈관(중경호텔)에 도착했다. 나는 여정을 풀고, 김 사장과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1층 로비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충칭에서 처음 경험한 량펀(凉粉)과 수이주위피엔(水煮鱼片)의 감칠 매운맛이 아직 입안에 남아 화끈거린다.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이 입안의 매운맛과 닿으니 바쁘게 달려온 하루에 느긋함이 생겨난다. 나는 김 사장과 취항식 이야기를 나누었다. 취항이 6월 22일이니 정확히 58일 남았다. 보통 해외지점을 개설할 때 지점장 인선을 거쳐 취항 90일 전에 지점장을 현지에 보낸다. 그런 통상적인 절차에 비추어 보니 시간이 매우 부족하게 여겨졌다. 취항 준비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긴장감이 돌았다. 게다가, 충칭은 다른 지역 취항과 달리 한 가지를 더해야 한다. 박삼구 회장이 취항 당일 저녁에 아시아나항공의 충칭 취항을 기념하여 한류공연을 개최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취항 준비에도 시간이 촉박한데 한류공연이라는 혹이 하나 더 붙었다. 


  어느덧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졌다. 아침 일찍 창춘을 출발해 베이징을 거쳐 충칭에 오느라 오늘 하루는 무척 분주했다. 이제 날이 밝으면 당장 지점 사무실과 공항 사무실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항공기 취항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해야 한다. 시의 외사판공실, 코우안빤(Port office), 공항 CIQ(세관, 출입국, 검역) 등을 찾아다니며 항공기 운항 관련 인·허가 절차 등 대관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공항 운송업무와 지상조업(Ground handling) 업무를 중국 항공사에 맡길지 공항공단에 맡길지도 만나보고 결정해야 한다. 갑자기 긴장감이 돌면서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가 아랫입술을 양쪽에서 가운데로 모으고 있었다.


  나는 충칭빈관 로비를 나와 호텔 앞 너른 주차장에서 김 사장을 전송했다. 안으로 들어가려다 잠깐 돌아서서 충칭에서 처음 맞이한 4월의 밤을 느끼고 있었다. 초저녁에 내리던 이슬비는 여전히 그칠 줄을 모른다. 깊은 밤 소리 없이 봄비가 내리니 날이 밝으면 세상은 새 생명으로 기뻐하겠다. 밤늦은 시간 호텔 주변 밤거리의 저 불빛들이 이슬비에 흩날린다. 호텔에 딸린 예종후이(夜总会, 나이트클럽)는 여유로운 발걸음들로 밤 깊은 줄 모른다. 입구로 연결된 계단으로 연신 열리고 닫히는 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선율은 이슬비가 만든 오선지를 타고 흐르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밤하늘로 퍼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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