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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택 Jan 13. 2024

상하이에서 두보를 만나다(2)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2016년은 내가 인천지점장을 끝으로 아시아나항공에서 자회사인 아시아나에어포트의 경영지원팀장으로 물러나 김포공항으로 출근하던 때였다. 햇수로 28년 동안 근무했던 아시아나항공을 떠나 자회사로 옮겼다. 비로소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을 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사장 직속의 국제업무실에서 항공협정을 담당하던 6년 반을 제외하고는 나는 변방에서 비주류로서 역할을 담당해 왔다. 담양 소쇄원에 가면 초입에 작은 정자 ‘대봉대(待鳳臺)’가 있다. 조선의 문인 양산보(1503~1557년)가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고 낙향하여 소쇄원을 만들었고 그 입구에는 대봉대(待鳳臺)가 자리해 있다. 


  대봉대(待鳳臺)의 鳳은 임금을 가리키며 待의 사전적 의미는 ‘기다리다’, ‘필요로 하다’이다. 해석하면 임금을 그리워하는 누각이고 조정의 소식을 기다리는 정자의 의미다. 나라를 개혁하고자 했던 스승 조광조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자 양산보는 벼슬의 무상함을 느끼고 낙향하여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저 대봉대(待鳳臺)에 앉아서 먼 쪽을 바라보았을 양산보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오지 않을 소식을 기다렸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충칭시 가무단은 내게 공연 초청장을 보내왔다. 나는 인천에서 상하이로 날아가 두보 공연을 관람했으며, 이때부터 두보에게 인간적인 연민의 정을 품기 시작했다. 공연이 끝나고 저녁 12시경 공연 제작진과 출연진이 숙박하는 호텔 1층의 바에 둘러앉아 공연 출품인과 제작자는 내게 두보의 관람평을 요청했다.


  나는 공연 전반부에 펼쳐지는 두보의 인생역정에 깊은 감동과 공감으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솔직한 관람 소감을 전했다. 두보는 당대 유명 시인으로, 그의 시는 시문학사상 현실주의의 최고봉이며, 그는 중국 시문학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조정의 관직에 올라 꿈을 펼치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시인의 양심과 용기로 국가와 민족의 운명, 그리고 백성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 두보가 관직을 구하여 관직에 오르고 다시 관직을 버릴 때까지. 세상에 나가 처세를 하고 다시 속세를 떠날 때까지. 그의 일생이 좌절하고 방랑하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귀족 관료들의 부패한 모습에 분노하고 궁핍한 백성의 삶에 가슴 아파하는 시인의 사상이 무용극 공연을 통해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특히, 전반부에 보이는 두보의 인생은 열심히 살아가는 한국의 일반 샐러리맨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높은 지위에 올라 뜻을 펼치고자 애를 쓰는 이 땅의 정직한 샐러리맨들이 거대한 장벽에 부딪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무대 위 두보의 모습에서 갑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을 건넬 것인가? 


  다만, 후반부는 파동이 없이 다소 지루하게 전개되어 몰입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으니 군데군데 환기할 수 있는 재료의 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출품인과 제작진은 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이후 보완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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