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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택 Jan 20. 2024

화물 DNA로 코로나에 대박나다

화물은 말이 없다

  1970년대 대한항공은 미주 및 유럽 노선에 화물기를 먼저 취항했다. 여객기를 먼저 취항하여 시장에 진입하는 대부분 여객 중심의 일반 항공사와는 전략이 달랐다. 창업 초기부터 화물운송을 중시했다. 


  대한항공은 1971년 4월 서울-도쿄-로스앤젤레스 노선에 화물기를 취항했다. 여객 수요보다는 화물 수요 전망이 좋았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10년 동안 단순 평균으로 매년 10.5%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미주 항공화물의 성장세는 뚜렷했으나 여객은 아직 국민의 해외관광이 자유롭지 못했다. 국민의 해외여행이 자유화한 것은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989년 1월 1일이었으니 1970년대 초반의 미주노선 개발 전략은 우선 화물수요 유치에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한항공은 화물기 취항 1년 후인 1972년 4월이 되어서야 호놀룰루와 로스앤젤레스에 여객기를 취항했다. LA 교민들은 화물기가 취항한 것을 보고 여객기도 곧 들어올 줄 알았다. 일 년이 걸렸다. 가난한 조국의 항공기가 태평양을 가로질러 이국만리 미국으로 취항하는 날 하와이 공항과 LA 공항에 교민들이 마중 나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순수 관광목적의 해외여행을 허용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좌석을 채울 수요가 넉넉하지 않았다. 산업화에 국가의 역량을 모으던 시절에 수출과 해외 건설사업으로 벌어들인 외화를 해외관광으로 소비할 여유가 없었다. 대한항공은 부족한 서울 출발 수요를 보완하기 위해 도쿄를 경유하여 운항했다. 1972년 일본이 국민의 해외여행을 자유화했고 이 기회를 포착했다. 


  대한항공은 뉴욕 역시 로스앤젤레스와 마찬가지로 화물기를 먼저 취항했다. 1979년 3월 23일 서울-앵커리지-뉴욕 노선에 화물기를 취항하고, 6일 후 같은 노선에 여객기를 취항했다. 이렇듯 화물기를 먼저 취항한 대한항공의 화물 DNA는 50년이 지나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빛을 발한다. 


  코로나19로 세계 각국은 자국의 하늘을 봉쇄하고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했다. 대한항공은 2020년 3월 전체 운항 노선의 70% 이상을 운항 중지했다. 이때 대한항공의 전통적인 화물 DNA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항공기가 지상에 발이 묶여 있으면 항공기의 부식 방지, 주기적인 엔진 점검 등 비용만 발생한다. 다시 날 때를 대비해 항공기 체크 리스트에 따라 주기적으로 점검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운휴 중인 노선을 대상으로 여객기에 화물만 실어 운항하다가 급기야 B777-300ER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했다. 여객기의 객실 좌석을 제거하고 화물 적재 공간을 추가 확보하여 화물운송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이러한 화물 DNA에 힘입어 2021년 1조 4,179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1년 후인 2022년의 영업이익은 2조 8,306억 원이다. 전년 대비 2배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대한항공이 역사상 2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은 2022년이 처음이다. 팬데믹 시기에 대한항공의 화물 DNA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화물은 자연재해, 정치적 소요, 전쟁, 테러, 팬데믹 등 이벤트 리스크(Event risk)*에 대한 노출 정도가 낮다. 국제화물 운송에 탁월한 역량을 가진 대한항공은 팬데믹 기간 중 국제화물 운송시장의 공급력 부족, 그에 따른 운임 인상으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 Event risk: 기업, 산업, 또는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투자자나 이해관계자에 손실을 입힐 수 있는 돌발 위험을 말한다. (Investopedia. 2023)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객 운송 위주인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등 국적 LCC는 팬데믹 3년 동안 적자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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