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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택 Dec 28. 2023

Big 2의 합병

경쟁과 독점


  1990년대 초 항공기를 이용한 고객은 “새 비행기를 타시겠습니까? 헌 비행기를 타시겠습니까?”라는 광고 문구를 기억할 것이다. 이 짧은 문구 하나가 아시아나항공은 언제나 새 비행기라는 연상 효과를 가져왔다. 이후 세월이 흘러 아시아나가 보유한 항공기의 평균 기령(항공기 나이)이 대한항공보다 높아진 순간조차도 아시아나는 언제나 새롭다는 이미지가 소비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유치하게 보였을지도 모를 ‘새 비행기·헌 비행기’의 기재 경쟁이 국내 항공업계의 서비스 경쟁을 촉발하였다. 색동날개 아시아나항공의 꿈·사랑·감동을 모토로 한 고객서비스 경쟁, 여행 일정의 선택을 다양화한 스케줄 경쟁, 그리고 항공수요의 저변을 확대한 가격경쟁으로 확장되었다. 우리 항공의 서비스 수준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고 항공 소비자 편익은 대폭 향상되었다.


  1988년 12월 23일 색동날개의 첫 비행으로 시작한 두 국적항공사의 서비스 경쟁, 스케줄 경쟁, 가격 경쟁은 30여 년 만에 우리의 곁을 떠날 준비를 한다.


  채권자인 산업은행(前 이동걸 총재)의 결정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에 인수·합병되었으며 현재 미국, EU, 일본 등 해외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절차가 진행 중이다.


  산업은행은 기간산업안정기금에서 수조 원을 투입해 아시아나항공을 개별 기업으로 남기는 안과, 산업 효율화를 고려해 대한항공과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안 중 후자를 택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인수·합병하기로 하면서 산업은행의 계획을 지지했고, 반대로 산업은행은 대한항공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든든한 대한항공의 우군이 돼줬다. (데일리안. 2022-5-26)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인수·합병하기로 한 것은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의 이익에 부합한 결정이었다는 설명이지만 시장경쟁이나 소비자 편익에 대한 고려는 없다.

 

  물론, 한국경제(2022-5-23)의 보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국가 기간산업 정상화 및 소비자 편익 증대 등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는 시장의 일반적인 시각과는 차이가 있다. Big 2의 합병으로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지고 독과점 체제가 형성되면 소비자 편익은 자연스럽게 훼손된다는 시장의 우려가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Big 2의 합병을 ‘경쟁과 독점’의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코로나 직전 연도인 2019년은 국제선 항공여객운송 수가 처음으로 9,000만 명을 넘어섰고 대한항공(KE)과 아시아나항공(OZ)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다. 2019년 실적을 기준으로, KE·OZ 합병 이후의 지역별 경쟁구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한다. 한국공항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의 항공통계(2019)의 수치를 활용하였다.


  1) 일본


  두 대형항공사의 2019년 일본 수송분담률(시장점유율) KE 19.6%와 OZ 15.3%가 하나로 합쳐져 KE 항공그룹의 시장점유율은 34.9%로 늘어난다. 여기에, KE 항공그룹에 속하는 저비용항공사(LCC, Low Cost Carrier)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의 시장점유율을 더하면 KE 항공그룹의 시장점유율은 57.3%로 늘어난다. 이 수치를 국적항공사만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KE 항공그룹의 점유율은 63.4%로 확대된다.   


  2) 동남아


  두 대형항공사의 2019년 동남아 시장점유율 KE 18.4%와 OZ 11.4%가 하나로 합쳐져 KE 항공그룹의 시장점유율은 29.8%로 늘어난다. 여기에, KE 항공그룹에 속하는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의 시장점유율을 더하면 KE 항공그룹의 시장점유율은 42.9%로 늘어난다. 이 수치를 국적항공사만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KE 항공그룹의 점유율은 63.4%로 확대된다.


  일본과 동남아 노선에서 국적항공사만을 기준으로 KE 항공그룹은 각각 63.4%의 동일한 시장점유율을 유지한다. 나머지 36.6%가 대형항공사의 자회사 LCC를 제외한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 독립 LCC들의 시장점유율이다. 저가를 선호하는 여행자들은 일본과 동남아에서는 여전히 36.6%의 선택권이 있다. 그러나, 중국과 미주에서는 독과점 현상이 심각하다.


  3) 중국


  두 대형항공사의 2019년 중국 시장점유율 KE 21.3%와 OZ 21.2%가 더해져 KE 항공그룹의 시장점유율은 42.5%로 확대된다. 여기에 KE 항공그룹 소속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의 점유율 3.2%가 더해지면 KE 항공그룹의 시장점유율은 45.7%로 늘어난다. 이 수치를 국적항공사만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KE 항공그룹의 점유율은 88.4%로 늘어나 중국노선에서 심각한 독과점 체제가 형성된다.


  4) 미주(북미)


  미주노선은 국적 LCC가 운항하지 않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만 운항한다. 저가를 무기로 중·단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국적 LCC는 장거리 노선을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에 포함하지 않는다. 물론, 팬데믹 이후인 2022년 로스앤젤레스와 뉴욕(EWR)에 취항한 장거리 저비용항공사 에어프레미아가 있지만 이번 평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두 대형항공사의 2019년 미주 시장점유율 KE 50.2%와 OZ 23.1%가 합쳐져 KE 항공그룹의 시장점유율은 73.3%로 늘어나 독과점 체제를 이룬다. 이 수치를 국적항공사 기준으로 보면 KE 항공그룹은 미주노선을 100% 완전 독점한다. 미주노선에서 국적항공사 간의 경쟁은 사라졌으며 소비자 편익 역시 사라졌다.


  중국과 미주를 여행하는 국민은 KE 항공그룹의 항공기를 이용하지 않고는 여행하기 쉽지 않다. 국적항공사 중에서 KE 항공그룹에 맞설 국적항공사가 거의 없다는 의미다.


  2022년 가을 학기에 NYU에 입학한 아들을 뉴욕으로 보내기 위해 C씨는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가족 3인의 인천-뉴욕 항공권의 가격을 검색하였다. C씨는 아시아나항공의 항공료가 대한항공보다 비싼 것을 보고 Big 2의 합병 모드가 시장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8월 22일 출발하여 9월 1일 돌아오는 여정의 인천-뉴욕 구간의 왕복 항공권 가격을 각 항공사의 홈페이지에서 검색했다.

 

  먼저, 비즈니스 항공권의 가격이다. 아시아나항공의 비즈니스 왕복 항공권 가격은 인당 8,285,100원이다. 대한항공의 비즈니스 왕복 항공권 가격은 인당 7,669,900원이다. 아시아나항공의 비즈니스 항공권 가격이 대한항공보다 615,200원 더 비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이코노미 항공권의 가격을 보자. 아시아나항공의 이코노미 왕복 항공권 가격은 인당 3,085,100원이다. 대한항공의 이코노미 왕복 항공권의 가격은 인당 2,999,900원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이코노미 항공권의 가격이 대한항공보다 85,200원이 비싸다. 이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항공과의 경쟁노선에서, 아시아나항공의 가격이 대한항공보다 비싼 적은 없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그것을 후발 항공사의 숙명처럼 받아들여 왔다.  


  오니시 야스유키의 저서 『이나모리 가즈오 1,155일간의 투쟁』은 오늘날 일본이 2개의 대형 항공사 경쟁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강한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JAL은 예전부터 몇 번이나 경영 위기에 빠졌지만 그때마다 국가의 지원으로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우리 항공도 마찬가지다. 1997년 IMF,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영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위기를 넘겼다.


  JAL의 간부는 회사의 이익보다는 사내의 이견을 조정하거나 정부와의 교섭에 힘쓰는 일을 업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경영층을 구성해 왔다. ‘병든 대기업’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책은 전한다. 80세를 눈앞에 둔 이나모리 가즈오는 JAL과 ANA, 이렇게 2개 항공사의 경쟁을 어떻게든 지킬 생각이었다. 그에게는 ‘독점은 악’이라는 신념이 있었다고 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2년 동안은 각자 운영하고, 2년 후엔 대한항공이라는 이름 아래 통합이 될 것”이며 “항공업계의 재편을 위해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은 꼭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이 말하는 항공업계의 재편이 항공 소비자의 편익과 국민의 이익을 훼손하는 쪽으로 이루어져서는 환영받지 못한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누리는 것은 그간 누려온 소비자의 당연한 혜택이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독점은 악’이라는 강한 신념, 그리고 일본 항공업계에 2개 대형 항공사의 경쟁체제를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강력한 리더십은 Big 2의 합병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울림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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