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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세

무서운 이름

by 충칭인연

2013년 송도는 아파트 공급 과잉으로 미분양이 심각했다.

상훈은 3공구에 소재한 포스코 브랜드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분양 홍보관 뒷편의 넓은 주차장은 휑했다.

실내에 들어서니 썰렁하다.

잘 꾸며진 넓은 공간은 손님보다 직원이 많았다.

상담원이 다가와 열심히 소개한다.

미분양 물건 해소를 위한 할인은 없었다.

상훈이 머뭇거리니 데스크 직원이 잠깐 데스크 뒷편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사무실에서 나와 깊숙이 숨겨놓은 로얄층이라며 내놓으며 유혹한다.

잭·니클라우스 골프장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뷰가 인상적이었다.

상훈은 결정했다.

그는 아들 학교 때문에 판교를 떠나 송도로 당장 이사할 수는 없었다.

2015년 아파트 입주 시점에 세입자를 찾아 전세를 놓았다.


2023년 10월 세입자는 상훈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세가가 하락했으니 전세가를 조정하면 2년 재계약 하겠다는 내용이다.

2023년 송도는 대규모 신규 아파트의 입주가 시작되었다.

멀리 인천대교가 보이는 바닷가 쪽으로 주욱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입주 물량이 증가하니 전세 공급이 늘었다.

급격한 금리인상은 전세 거래를 위축시켰다.

전세 시장에 극심한 불안감이 조성되었다.

2021년 급등했던 전세가는 2023년에 급락했다.

상훈은 원하지 않았지만 롤러코스트에 올라탔다.

올라갈 때의 안정감은 떨어질 때 공포로 바뀌었다.

'역전세' 라는 사회적 현상이 표출되었다.

전세가가 하락했으니 이를 낮추어 달라는 세입자의 요구는 정당하다.

상훈은 '역전세'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때가 되면 넓은 아파트로 갈아타기 하려는 전형적인 보통 가장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문자 하나 하나 예의를 갖추어 회신했다.

"원하시는 대로 전세가를 낮추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허락하시면, 세입자를 구해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겠습니다."

다음날 답장이 왔다.

"전세가를 낮추지 못한다니 안타깝습니다. 그럼, 10억 보증보험을 가입해 주시는 조건으로 재계약하겠습니다."

상훈은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회신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들은 송도 부동산중개사무소에 마주 앉았다.

일주일 동안 상황이 변했다.

세입자는 이전의 말을 번복하고 새로운 요구를 내놓았다.

"아래 저층의 시세를 반영하여 보증금의 차액을 반환해주세요."

순간 상훈은 당황했고 세입자는 말을 이어갔다.

"아니면 보증금 차액에 대해 은행이자 5%를 적용하여 매월 지급해주세요."

세입자는 입장을 바꾸고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제시했다.


세입자는 갑의 위치에 있다.

임대차 3법은 세입자에게 임의 재단이 가능한 권리를 허용하고 있다.

세입자는 묵시적 갱신 등 전세 계약의 연장 후에도 사전 통지를 통해 언제든지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이는 세입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선의의 임대인을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세입자는 자신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임대인의 자산을 경매 처분할 수 있다.

며칠이 지나 세입자는 상훈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10억 8천만 원의 보증금 반환을 청구하며 3개월 후에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보증금 반환이 이루어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세 시장이 악화하여 전세 수요가 없다.

정부는 정책적으로 대출을 규제하고 있다.

새로운 세입자를 찾지 않고는 보증금 반환이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세입자는 전세 물건에 그대로 거주하면서 임대인에게 압력을 행사했다.

어떠한 것들인지 보자:


첫째, 세입자는 내용증명의 법적 효력이 발생한 시점부터 자신이 원하는 보증금 차액에 대한 5% 은행이자 지급을 요구했다.

이는 세입자가 전세 물건을 점거하고 있기 때문에 임대인에게 강제할 수 없는 요구다.


둘째, '2024년 7월 말까지 보증금을 반환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쓰고 공증을 위해 인감을 날인하여 우편 송부하라는 요구다.

이 역시 세입자가 임대인에게 강제할 없는 요구다. 세입자가 전세 물건을 그대로 점거 사용하면서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 약정일까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해당 물건을 바로 경매 처분한다는 의미다.


셋째, 보증금을 7억5천만 원으로 낮추면 재계약하겠다는 세입자의 의사를 부동산중개업자가 전달했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상훈은 기존 세입자의 요구대로 보증금을 낮출 생각이었다.

세입자는 하루만에 다시 번복하여 보증금을 7억 원으로 다시 낮추어 요구했다.

부동산중개업자를 통해서다.

상훈은 세입자의 변화무쌍한 압력에 무기력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넷째, 소송을 취하할테니 소송 인지대, 변호사 비용 등 일체의 소송비용을 부담하라는 요구다.

부동산중개업자는 소송을 하면 임대인이 무조건 지게 되어 있다고 한다.

소송에 대응하지 말고 타협하라고 조언한다.

상훈 역시 이에 적극 동의한다.

타협은 상황을 더이상 악화하지 않고 갈등을 적정 선에서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타협은 선택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상훈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적극 대응했다.



2024년 12월 24일, 아기 예수 탄생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세입자가 제기한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의 판결 주문이 선고되었다: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상훈은 소송에서 이겼지만 상처가 남았다.

세입자는 소송비용의 부담을 상훈에게 부과하는 데 실패했다.

세입자는 요구했던 것들을 얻지 못했다.

상훈은 적극적으로 대응하느라 출혈이 많았다.

하지만 골프장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집은 지켰다.

송도 여기 저기에 경매 물건들이 나와 있다.

들도 갈등은 참 힘들었을 것이다.

"역전세"

무서운 이름이다.

불리한 시장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상훈은 세입자도 겪었을 갈등과 불편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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