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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화]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총탄이 쏟아지는 베이루트 거리를 걷는 것과 같다

by 충칭인연

본사 팀장으로 가서 마무리하고 싶다


“지점장님, 내년에 어디로 가실 겁니까?”

본사 영업지원팀장의 전화다. 임호는 인천지점장으로 3년을 근무했으니 부서를 옮겨야 한다.

“어디로 보낼 거야?”

임호는 그에게 말을 편하게 한다.

“수원지점장으로 가시죠.”

“수원?"

"네."

“인천이나 수원이나 똑같은데---, 3년 동안 또 같은 일을 하라고?”


인천지점과 수원지점은 50km 거리의 근거리 지점이다. 두 지점은 인력이나 규모, 하는 일이 같다.

"제기랄. 3년을 손발이 묶여 살았는데 수원에서 또 그 짓을 해란 말인가?"

임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변방의 지점장은 바람 불면 드러눕는 풀 같은 신세다.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든 룰(Rule)이 본사와 본부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그렇다. 인천지점장 임기 3년 동안 임호는 한 발자국도 진전하지 못했다. 3년을 또 본사 들러리나 서면서 맴돌고 싶지 않다.


사는 곳이 판교이니 수원까지 통근은 수월하겠다. 말년에 지점장 명함 하나 받아들고 감지덕지하며 끝낼 요량이라면 수원이 좋은 선택일 수 있다. 회사가 주는 월급을 꼬박꼬박 받으며 말년을 보낼 수 있다. 신입 때 가졌던 꿈은 접으면 그만이다. 임호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에게는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수원지점장으로 가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럼, 달리 갈 데는 있으세요?”

남들은 지점장으로 못 나가서 안달인데 임호는 마다한다. 영업지원팀장은 그런 임호가 복에 겨워 유난을 떤다고 생각한다.


“김 팀장, 나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본사 팀장으로 가서 마무리하고 싶다.”

임호는 남은 시간을 본사로 가서 회사의 정책 결정에 관여하고 싶었다.


임호는 일찍부터 본사의 지점 관리 시스템이 지점 간 내부경쟁을 부추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본사가 조장하는 지점 간 내부경쟁은 불필요한 비용을 촉발하고 회사 전체 매출을 갉아 먹는다고 확신했다.


지점장은 개별 지점에 부과한 연간 매출 목표의 달성률로 평가받는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별 지점의 매출 목표 달성에만 전념한다. 회사 전체의 매출 성장은 관심 밖의 일이다. 지점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 협력해서 회사 전체 매출을 높여야 할 인근 지점과 동일 수요를 놓고 저가의 출혈경쟁을 벌인다. 회사의 전체 매출을 갉아먹는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죄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이렇듯 개별 지점장이 개별 지점의 매출 목표에만 몰입하면 회사의 전체 매출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진다.


임호는 오래전부터 이것을 회사의 병폐로 인식했다. 소모적인 내부경쟁 요인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변방에서 떠들어도 쇠귀에 경읽기다.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그는 본사로 들어가서 이 일을 꼭 하고 싶었다.


임호는 회사의 매출 성장과 문화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여러 영업 행태를 비망록에 기록해왔다. 기회가 오면 그것들을 꼭 개선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기회는 오지 않았다.


임호는 변방에서 더 이상 관전평만 할 수 없었다. 비망록에 기록해 온 개선안 하나를 회사 통신망에 올렸다. A4 용지 일곱 장 분량이다. 본사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태양항공 출신의 임원들은 본사 팀장 회의에서 임호를 비난했다. 일선 지점장 주제에 알량한 지식으로 너무 튄다고 성토했다.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낙인을 찍었다.


베이징에서 중국지역 지점장 회의가 있었다. 저녁 식사 후 가라오케 자리에서 회포를 푸는 자리가 열렸다. 임원 하나가 임호 옆으로 다가와 앉더니 귓속말로 조용히 속삭인다.


“지점장님, ‘나의 제언’에 글 쓰는 건 그만 좀 하세요. 위에서 싫어합니다.”

“---.”

임호는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경영진과 소통할 방법이 없어서 회사 게시판의 ‘나의 제언’에 실명으로 입바른 소리를 했다. 위에서 싫어한단다.


‘나의 제언’은 초기에 무기명으로 운영했다.

직원들은 익명성에 기대어 제언은 뒷전이고 불평과 고발성 화제를 쏟아냈다. 당초 건전한 제언의 토론장을 기대했는데 내부 불만과 갈등의 성토장으로 변했다. 태양항공 출신 임원들은 날이 밝기도 전에 출근하여 나의 제언부터 하나하나 확인한다. 밤새 혹시라도 이상한 내용이 올라와 있으면 사전에 빠르게 조치하기 위해서다. 그룹 회장이 보기 전에 말이다.


이후 ‘나의 제언’을 유기명으로 전환했다.

직원들은 더 이상 고발성 폭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나의 제언을 유기명으로 전환한 이후 단 한 건의 제언도 올라오지 않은 날이 대부분이다. 이름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제안하는 것은 총탄이 쏟아지는 베이루트의 거리를 횡단하는 것과 같다. 부서마다 보고 체계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공개 제안하는 것은 지나친 자기 과시성을 드러냈다고 평가되어 매장당하기 십상이다.


임호는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노출하고 제언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그는 오로지 시스템 개선에 사명을 느낀다. 임호는 그 자신이 본사의 지점 관리 시스템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본사의 지점 관리 시스템은 그에게 있어서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는 병폐였다.


임호가 제안한 바로 그 개선안은 15년이 지나서 채택되었다. 임호는 회사를 떠나고 없다. 사람은 간 데 없고 그의 제언만 부활했다. 그것도 회사가 경쟁사에 넘어가기 직전에 채택했다. 임호에게 제언하지 말라고 조언했던 바로 그 임원이 사장으로 올라오면서다.


임호는 영업지원팀장에게 본사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본사는 안되죠.”

영업지원팀장은 그것을 즉석에서 거절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태양항공 출신 임원들이 임호를 본사로 부를 리 없다는 걸 잘 알고있다.


“어쨌든 수원지점장으로는 가지 않을 테니 그렇게 보고해 줘.”

임호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알았습니다. 다시 연락할게요.”


얼마 후 발령이 떴다.

임호는 뉴스타 공항 경영지원팀장으로 발령이 났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룹 공채 1기로 입사하여 28년 동안 뉴스타항공에서 근무했는데---. 그는 결국 계열사인 뉴스타 공항으로 내쳐졌다.


<<본문을 구성하는 내용과 인물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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