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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화] 새로운 스위치를 켜다

모든 새로운 시작은 다른 시작의 끝에서 온다

by 충칭인연

뉴스타 공항으로 가다


임호의 인사발령에 앞서 동양그룹 회장부속실은 뉴스타항공에 두 가지 지침을 전달했다.


하나는, 임호를 부장으로 진급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를 본사로 보내는 것이다.


뉴스타항공 김두식 사장은 육중한 몸에 뒤뚱뒤뚱 도마뱀처럼 걷는다. 그의 걸음걸이는 둔하게 보이지만 머릿속으로 돌아가는 계산은 무척 빠르다. 그는 그룹에서 내려온 두 가지 지침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김두식 사장은 태양항공 출신들과 줄곧 갈등을 빚어온 임호를 뉴스타항공에서 부장으로 진급시키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태양항공 출신 임원들의 일관된 생각이다.


"그룹에서 임호를 부장으로 진급시키고 본사로 발령을 내라는데 좋은 방법이 없나? 그놈이 본사로 들어오면 우리가 시끄러워."

"이번 기회에 임호를 내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김두식 사장의 질문에 인사팀 김상도 상무가 대답한다. 김상도는 국제업무실에서 임호와 악연이 있다. 그가 말을 이어간다.


"지금 전사적으로 구조조정이 진행 중입니다. 회사가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들어 연말 정기인사 발표에서 부장 진급을 전면 동결한다고 공표하십시오."

"응?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일이잖아?"

"맞습니다. 그래야 임호를 뉴스타공항 본사로 내칠 수 있습니다."

"그래. 좀 속보이기는 한데---. 그 방법이 좋을 것 같다. 아니면 항공에서 그놈 진급하는 꼴을 지켜봐야 하니 그건 아니지."

김두식 사장은 회사가 위기라는 것을 내세워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을 감행했다. 뉴스타항공에서 임호가 부장으로 진급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임호를 부장으로 진급시킨다는 명목하에 그를 항공의 계열사인 뉴스타공항으로 보내는 꼼수를 썼다. 그는 눈엣가시인 임호를 수월하게 내쳤다.


그 결과,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시도하겠다고 꼼꼼히 기록해온 임호의 비망록은 그 첫 장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되었다.


임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뉴스타공항에 가서 2년만 버티고 권토중래하자. 만약 항공으로 복귀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그때 미련 없이 떠나자.”

임호는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사장님,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뉴스타항공 김두식 사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예를 표했다. 임호는 쫓겨가는 마당에 내키지는 않았으나 그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항공 사정이 어려우니 공항으로 가 있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임호는 사장의 말이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뉴스타항공에서 쫓겨나는 것이 그저 억울했다.


임호는 인사발표가 있던 날 바로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 정리를 하고 있었다. 신입직원 김태용만 남아서 일을 보고 있었다.


“김태용 씨, 아직 퇴근 안 했네?”

“네, 할 일이 좀 있어서 그렇습니다. 퇴근 안 하시나요?”


그는 학교 다닐 때 세븐의 백 댄서로 활동했다. 그 경력 때문에 본사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호출 1순위다. 그는 여수가 고향이다. 임호는 그와 동향이라 그런지 친근감을 느꼈다. 퇴근 후 시간이 되면 그와 함께 인천지점 주변 식당에서 저녁 식사와 함께 반주를 곁들이곤 했다. 김태용 역시 자기에게 잘 대해주는 임호 지점장을 잘 따랐다. 둘은 자주 가는 식당에 마주 앉았다.


“지점장님, 제가 한 잔 따르겠습니다.”

“그래.”

둘은 잔을 부딪히고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김태용 씨 이번에 서울지점으로 발령났지?”

“네, 그렇습니다. 걱정이 많습니다.”

“걱정할 것 없어. 회사가 어수선하지만 맡은 일 충실하면 돼. 김태용 씨는 거기서도 잘할 거야.”

“네,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임호는 그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지점장님, 저는 입사한 지 몇 년이 안 되어서 잘 모르겠지만 회사가 맞게 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사에 대한 걱정이 많구나.”

“네, 회사가 부채와 유동성 위기로 경영이 위태롭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항공기 도입 비용과 차입금 상환으로 재무적 압박이 심하다. 지금까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어서 또 그런가 보다 하는데 이번은 좀 달라. 항공뿐 아니라 지주회사인 동양산업과 계열사 부채 문제가 얽혀 있어서 재무적 리스크가 커.”

“본사에서 대리와 과장을 중심으로 구조조정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습니다. 젊은 직원들의 시각을 구조조정에 반영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젊은 시각? 그런데 거기에는 불순한 의도가 담겨있다. 얼마 전에 본사 전략기획실이 국내 부서장, 지점장을 본사 대강당에 소집해서 회사 구조조정에 관한 긴급 보고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김두식 사장이 뭐라 그랬냐면, 대리 3년 차에서 과장 3년 차까지 20명을 선발하여 구조조정 TF를 가동했고 거기서 50여 개의 구조조정 항목을 리스트업(List-up) 했다는 거야. 알고 있지?"

"네."

"다들 뻔한 것들이야. 비용을 줄이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정해져 있다. 영업지점과 운송지점을 통폐합하면 시설과 인력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지역마다 지점사무실 하나 없애고, 지점장 자리 하나 빼고, 직원 줄여서 최소한의 인원으로 통합지점을 운영하는 거야. 또, 뭐 있어? 제공하던 지점장 차량 회수하고, 공항 라운지 없애고, 적자 노선은 운휴하여 해외지점 사무실 복항할 때까지 문 닫고, 거기 있는 현지 베이스 직원들 휴직하고. 또 뭐 있지? 항공기 기종마다 객실 서비스 인력 재조정하는 거야. 승무원의 서비스 구역을 늘리면 투입 인원을 줄일 수 있거든. 전부 다 이런 것들이야. 말하기 창피하지만, 부서장들 임금 5% 반납한 것은 늘 해오던 일이야. 태양항공 출신들은 임금 반납한 것으로 구조조정했다고 생각해. 잠깐 말이 옆으로 샜는데, 어쨋든 그들의 한계야. TF가 제시한 구조조정 항목이 물론 그동안 방만하게 경영해왔던 것들을 정상화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은 직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거야.”


임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빈 잔에 술을 따랐다.

그는 현재의 회사 리더십과 경영 위기에 관해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다. 자신이 나서서 뭔가 해볼 수 있는 처지도 아닌데 이야기해봐야 속만 상한다. 하지만, 김태용에게만은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임호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김두식 사장이 분명히 말했다. TF에서 올린 구조조정 안건을 손 하나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채택했다고. 후---, 사장이 한 이 말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혹시 감이 잡히나? 아까 내가 말하길 구조조정 안건이 대부분 어쩐다고 그랬지?”

“직원들의 희생을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그거야. 집중해서 듣고 있었군.”

임호는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김태용이 마음에 들었다.


“직원들의 희생이 따르는 구조조정이라면 직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먼저야. 그럼, 그 설득을 누가 해야지? TF의 젊은 직원들이 하나?”

“사장이 해야죠.”

“그래. 사장인 내가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의 위기 상황을 솔선수범해서 책임지고 극복할 테니 여러분은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 이렇게 피를 토하며 소리쳐야 하는 거야. 그래야 사장의 진정성, 리더십의 열정을 보고 직원들이 따를 거 아냐? 그런데 김두식 사장이 어떻게 했어?”

“구조조정을 직원들에게 떠넘겼습니다.”

“백 퍼센트 정확해. 직원들에게 떠넘겼다는 표현이 맞아. 책임을 회피한 거야. TF 직원들이 선정한 구조조정 안건을 하나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채택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여러분들의 젊은 동료들이 회사를 구하기 위해 시작한 구조조정이고 사장인 자신은 그것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야. 본말이 전도됐어. 주도적 리더십은 이미 소멸했어.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하고자 하는 절박한 리더십이 느껴지나?”

“말씀 듣고 보니, 사장으로서 위기 극복 리더십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두식 사장은 늘 그래왔어. 핵심을 피해가는 리더십은 곳곳에서 확인돼. 말하자면 길어. 자, 이만 각설하고---. 사장이 구조조정을 마치 남 이야기하듯이 하니 직원들이 사장을 신뢰해 안 해?”

“신뢰 안 합니다.”


임호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화만 날 뿐이다.


임호는 김태용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진급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다. 10년 만에 부장 진급한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말하겠는가? 인사발표가 있는 매년 12월이면 우울하다. 그는 아내에게 면목이 없다. 항공에서 공항으로 옮긴 것만 말해주었다. 임호의 아내는 남편이 행여 상처를 받을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새로운 스위치를 켜다


임호에게 권토중래는 없었다.

회사의 스위치를 끄고 새로운 삶의 스위치를 켰다. 모든 새로운 시작은 다른 시작의 끝에서 온다. 라틴 격언에 “Every new beginning comes from some other beginning’s end.”라는 말이 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선가 멈추었기 때문이다.


많은 게 달라졌다.

새벽 5시 50분. 서판교에서 9003번을 타고 서울역으로 가서 지하도를 한참 내려가 공항철도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가던 길. 이제 가지 않아도 된다. 꽉 쥐었던 주먹도 풀었다.


아내랑 판교 현대백화점 5층 CGV 매장에서 커피를 들고 다시 8층으로 올라가 조조할인 영화를 보는 것도 새로운 삶의 일부가 되었다.


판교 아브뉴프랑의 스타벅스에서 도로 쪽 창가 자리에 아내랑 나란히 앉아 먹는 브런치와 커피는 집 떠나 여행하는 느낌을 준다.


“여보, 고생했어요.”

아내 크리스티나는 임호가 회사에서 겪었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매년 연말 진급에서 소외되고 변방으로만 전전하는 모습을 보았다.


차장에서 부장으로 진급하는 데 14년이 걸렸다. 그것도 그룹 회장부속실에서 뉴스타항공에 지시하지 않았다면 차장으로 회사를 나왔을 것이다.


아내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 임호의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했다. 정년에 도달하지 않은 가장이 회사를 스스로 그만둔다고 하면 그것을 좋아할 아내가 누가 있겠는가? 임호는 넉넉하게 이해해주는 아내가 고맙다.


“고맙소.”

아내의 손등에 손을 살며시 얹었다. 아내 크리스티나는 남편의 결정을 응원한다고 말했지만 내심 걱정도 있을 것이다. 모르는 바 아니다.


아들은 항저우국제학교(HGH, Hangzhou International School) 1학년을 마치고 2011년 판교의 한국외국인학교(KIS, Korea International School) 2학년으로 전학했다. 그는 막 8학년 1학기를 마치고 지금은 겨울방학 중이다. 고등학교 졸업까지 아직 4년 6개월이 남았다. 매년 학비만 3,500만 원 정도 들어간다. 회사를 그만두고 돈 들어올 데 없으니 부담이 적지 않은 금액이다.


30년 퇴직금 2억 2천만 원의 현금이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 다섯 개 회사의 주식을 3억 정도 가지고 있다. 당장 수입은 없어도 얼마간 버틸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수천만 원 들어가는 아들의 학비와 또 그만큼 들어가는 사교육비를 생각하면 안압이 높아진다.


외국인학교 다닌다고 과외수업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KIS가 미국 학교의 커리큘럼(Curriculum)을 그대로 가져와 영어로 수업한다고 해서 영어를 따로 배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계 부모를 가진 학생들은 영어의 어휘와 문맥을 구사하는 수준이 영미계 부모의 자녀와 현격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거의 모든 학생이 영어권 외국인에게 과외를 받는다. 아들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명문대학인 다트머스 대학교를 졸업한 미국인이 매주 이틀 집에 와서 하루 3시간씩 영미문학, 에세이 등을 지도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외국인학교 학생들은 미국 명문대 진학을 위해 강남을 중심으로 활약하는 대학 진학 컨설팅업체의 맞춤형 지원을 받는다. 전문 인력 3, 4명이 담당 학생의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 팀을 구성한다. 학생의 적성과 성적, 잠재력과 가능성을 평가, 분석하고 진학 희망 대학 후보군을 선정한 후 성공 플랜을 마련한다. 팀은 플랜에 따라 학생의 GPA, SAT 등 성적 관리는 물론 부수적인 자격 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행여 명문대학에 가지 못할 것이 두려워서 매년 3,0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진학 지원 서비스를 받는다. 금액은 관리 수준에 따라 다양하다.


사교육 시장에는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이 자녀의 대학을 결정한다는 유머가 돈다. 외국인학교를 중심으로 미국 대학 진학을 위한 엄마들 간의 경쟁이 상상을 초월한다. 앞으로 남은 4년 6개월 동안 학비와 사교육비로 충당해야 할 자금 규모를 생각하니 걱정이 어찌 되지 않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불안감과 걱정이 밀려왔다.


베이글 한 조각을 양손으로 뜯어 입에 물었다.

잘 익은 빵의 질감이 혀의 양옆을 간지럽힌다. 오늘은 베이글을 좀 많이 익혔나 보다. 딱딱한 부분이 오른쪽 어금니에 닿으니 이가 시려온다. 회사 다니느라 뒤로 미루었는데 내일은 고등학교 후배가 운영하는 치과를 가봐야겠다.


양손을 머리 뒤로 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니 창밖 건물 사이로 하늘빛이 푸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다. 눈에 익은 여객기 하나가 하얀 구름을 뚫고 내려와 성남 서울공항 방향으로 날아간다. 뉴스타항공 비행기다. 항공기 엠페나지 Empennage(꼬리날개 부분)의 빨강·노랑·파랑의 별모양 도색은 뉴스타항공의 상징이다. 멀리서도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다.


“이곳 성남시 상공은 민간 항공기의 비행 금지 구역인데---.”

성남시 일대는 군사 통제 공역이다. 군사 공항인 서울공항이 위치해서 민간 항공기의 비행을 통제한다.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에서 이륙하는 여객기 역시 성남 공역은 회피 운항한다. 대통령 전용기나 해외 국빈 방문의 전용기, 또는 해외 파병 인원의 수송 등 특수 목적을 위한 민간 항공기의 경우 군의 협조를 얻어 성남시 일대 공역에 진입할 수 있다.


10년 전, 임호는 쿠웨이트에 출장했다. 이라크 아르빌(Erbil)의 자이툰부대(Zaytun Base)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병력을 쿠웨이트 국제공항(KWI)에서 서울공항으로 수송하기 위해서다.


“나도 저 비행기처럼 이곳 상공을 통해 서울공항으로 들어왔을 텐데---.”


임호는 뉴스타항공 비행기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통창 너머 하늘을 바라보았다. 뉴스타항공은 임호에게 꿈이었다. 청춘의 기억 그 자체였다.


<<본문을 구성하는 내용과 인물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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