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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8화] 당신 진급을 누가 시키는지 아나?

과장님 진급은 누가 시키는지 아십니까?

by 충칭인연

도날드항공의 운송 서비스업무를 대행하다


임호는 1990년 7월 김포공항 국제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과 미국 디트로이트(DTW)를 운항하는 도날드항공 DN030편의 운송 서비스업무를 뉴스타항공이 대행했다. 운항 요일에 따라 도쿄(TYO)를 경유하기도 하고 디트로이트로 직항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운항편이 만석이었다. 매 편마다 미군 군속이 평균 40명 정도 탑승했다.


B747 대형 항공기가 해당 노선을 운항했다.

퍼스트 클래스 12석을 포함하여 전체 공급석이 420석이다. 이코노미 좌석 배열은 3-4-3이다. B747은 항공기의 전반부가 2층 구조로 되어 있어서 공항에서 쉽게 눈에 띈다. 높이가 19.3m로 6층 건물에 해당한다. 길이 70m에 폭이 60m로 최대 490명의 승객과 25톤의 화물을 적재한다. 2007년 상업 비행을 시작한 초대형 항공기 A380이 출현하기 전까지 지구상에 가장 큰 여객기였다.


보잉사는 B747을 당초 화물기로 개발하고 있었다.

조종실을 2층에 두고 화물기 컨셉트로 개발하던 중에 보잉은 여객기 개발로 선회했다. 1960년대 중·후반 대량 수송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측한 팬암(Pan Am)이 보잉사에 초대형 여객기 개발을 요청했다. 세계 항공수요가 연평균 20% 넘게 성장한 것도 원인이었다.


증가하는 항공수요를 소화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항공기의 운항 횟수를 늘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항공기의 공급력을 대형화하는 것이다.


전자는 항로 및 공항의 번잡 상황을 초래하므로 항공기를 대형화하는 것에 모두의 공감대가 있었다.


DN030편의 탑승을 시작할 때면 400여 명의 승객이 탑승구 앞에 긴 줄을 만든다. 항공기가 만석이면 직원은 탑승구에서 420명의 탑승권을 절취한다. 게이트에는 숙련된 직원을 배정한다. 이들은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


먼저, 탑승권 상의 편명과 목적지를 확인하여 부주의한 승객의 오탑승을 막는다. 가끔 확인하지 못해 손님을 잘못 태우는 경우가 있다. 이륙하기 전에 기내에서 오탑승 승객을 발견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목적지까지 가게 되면 그 승객은 항공기 도착 후에 입국 거절되어 같은 항공편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를 디포티(Deportee)라 한다. 항공사는 이로 인해 목적지 국가로부터 벌금을 부과받기 때문에 담당 직원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목적지와 편명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도, 탑승권을 절취하여 매 50장이 되면 가슴 높이의 옆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탑승 완료 시점에 컴퓨터의 체크인 마감 숫자와 실제 탑승권 숫자를 대조한다. 승객이 전부 탑승했는지 아니면 아직 미탑승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50장씩 모아놓으면 탑승자 수를 확인하는데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한 가지가 또 있다.

“안녕하십니까.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스스로 하기 편한 인사말을 정해 고객에게 건넨다. 탑승권 회수에 넉넉잡고 한 사람당 3초가 걸린다고 가정하면 420명 탑승에 21분이 걸린다. 뜯어도 뜯어도 끝이 없다. 직원들은 탑승권을 뜯는다고 표현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탑승권을 뜯으며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니 탑승이 끝나면 기진맥진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이 수월해졌다.


당신 진급을 누가 시키는지 아나?


임호는 도널드항공 체크인 카운터에서 고상국을 만났다.

그는 원래 항공 전문 인력을 공급하는 용역업체의 직원으로 도널드항공에 파견 근무하고 있었다. 뉴스타항공이 도널드항공과 장기 용역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기존 업체의 직원 일부를 뉴스타항공이 흡수했다. 고상국은 그때 뉴스타항공으로 입사했다.


그는 명랑하고 유쾌한 성격이며 친구랑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할 때면 자기 집 가자고 손목을 잡아끈다. 둘은 강남 고속터미널 앞쪽 상가의 통닭집에 앉아 치맥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임호는 상국의 순수함과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직원들이 부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노’라고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그러한 친절한 성격 때문인지 특히 여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임호는 그런 그가 직원들에게 상처받는 일이 많지 않을까 걱정했다. 상국은 자기를 걱정하는 임호의 말을 신뢰한다.


하루는 그가 할 이야기가 있다며 집에 가자고 했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공항 앞 골뱅이 맥주집으로 몰려가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반포로 향했다. 고상국이 사는 한신아파트로 이동해서 인근 단골 치킨집으로 향했다. 둘은 500CC 생맥주와 프라이드치킨을 놓고 마주 앉았다.


퇴근하여 직장동료와 함께 즐기는 맥주와 치킨의 궁합은 피로에 찌든 샐러리맨들에게는 일종의 선물 같은 것이다. 튀김가루를 덧씌워 바삭하게 튀긴 치킨의 육질이 입안에 지방의 느끼함을 남긴다. 맥주의 발효 과정에서 생긴 탄산의 자극과 호프의 쓴맛이 입안에 묻어있는 기름기를 씻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고온에서 튀겨낸 치킨의 뜨거운 맛과 맥주의 차가운 맛이 입안에 교차하며 주는 자극은 그야말로 환상의 궁합이다.

저녁때가 되어 허기진 탓인지 생맥주에 치킨 맛은 일품이었다. 고상국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호야. 오늘 강해철 과장이 나를 따로 불러서 일을 시켰는데---.”

그는 말하다 말고 맥주잔을 들어서 임호에게 건배를 권했다.


“근데 강 과장이 시킨 일이 좀 꺼림칙해.”

“뭔데?”

“카운터에서 체크인할 때 승객이 내는 공항세 6,000원 있잖아?”

“그래, 공항이용료 6,000원. 왜?”


공항이용료는 공항 내 모든 시설과 설비의 유지 및 관리를 위해 징수하는 세금 항목이다. 김포공항 국제선을 이용해 출국하는 승객은 공항이용료 6,000원을 체크인 카운터에서 탑승권을 받을 때 카운터 직원에게 현금으로 지불했다. 당국의 위임을 받아 항공사 카운터에서 직원이 대신 징수했다.

2002년 5월부터는 공항이용료를 항공권 가격에 포함하여 징수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미군 군속은 공항이용료가 면제잖아?”

“그렇지. 면제지.”

“편당 일반 승객 중에서 최소 10명을 미군 군속으로 처리하라는 거야. 돈을 빼라는 이야기지.”

“뭐?”

“부서 운영하고 직원들 관리하려면 돈이 필요하단다. 본사에서 배정한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거든. 그랬더니 부서 운영을 위한 것이고 모두가 동의했으니 별일 없을 거래. 걱정하지 말란다.”

“그걸 말이라고 해!”


기가 막혔다.

국가 세금을 횡령하자는 이야기다. 간땡이가 부어도 이만저만 부은 게 아니었다. 태양항공의 핏줄들이 뉴스타항공으로 넘어와 요직을 차지하고 조직을 장악하면서 그들의 부패 문화는 뉴스타항공 창립 초기부터 하나하나 스며들었다. 이들은 실제 개인과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직 공통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집단적인 자기기만 행위를 합리화한다. 이러한 비윤리적 결정이 설사 부당하고 비난받는 행위라 하더라도 집단 전체가 합의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 결정을 수행하는 구성원의 양심적 판단을 조직의 명령에 위탁하게 만든다.


“강 과장 그놈은 따이공 화물 그냥 부쳐주고 뒤로 돈 받는 거 직원들이 다 아는 사실이잖아?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더 큰 일을 꾸며?”

임호는 흥분해서 생맥주잔을 테이블에 놓으며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를 쳤다.


강해철 과장은 조직의 이익이라는 대의 아래 사원들이 수긍할 수 없는 일들을 도맡아서 한다. 자신이 가진 재량으로 비자금을 형성하여 위로 상납하고 자신의 역량을 인정받는다. 스스로가 수행하는 비도덕적 행위를 집단적 대의로 포장하기 때문에 인간 본성의 죄책감에 붙들리지도 않는다. 그는 어쩌면 특정 집단의 생존과 기득권을 위해 소모되는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그는 체크인 카운터에서 따이공의 수하물 탁송 편의를 봐주고 금전을 취득한다. 카운터 체크인을 시작하면 그는 카운터에 나와 어슬렁거리며 따이공을 기다린다. 따이공들은 일반화물로 신고·운송해야 할 화물을 관세와 비싼 운송료를 피하려고 이를 화물로 보내지 않는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개인 수하물로 탁송한다.


화물의 운송 비용을 절감하려는 따이공. 수하물 탁송 편의를 봐주고 금전적 이익을 챙기려는 강 과장. 이 양자의 욕구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곳이 체크인 카운터다.


예를 들면, 따이공이 가져온 100kg의 화물을 40kg으로 체크인해서 시스템에 등록하고 탁송한다. 허용 중량을 초과한 수하물에 대해서는 탁송 수수료를 조금만 받거나 아니면 전액 면제하고 100kg을 부친다. 편의를 봐준 대가로 뒤로 돈을 받는다. 이러한 비도덕적 거래는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이익을 위해 결속되고 확장되면서 두 가지의 문제를 낳는다.


첫째는, 회사의 수입 손실이다.

초과수하물에 대한 탁송 수수료가 카운터 담당 과장의 재량으로 면제되었으니 그만큼 회사의 수입이 감소한다.


둘째는, 항공기 안전 운항에 위협을 줄 수 있다.

수수료를 면제한 60kg의 수하물은 시스템에 탑재 수하물로 반영되지 않는다. 항공기 안전 운항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장은 웨이트·앤·밸런스 시트 상의 항공기 중량보다 실제 더 실린 것을 알지 못한다.


회사의 수입과 안전 운항은 회사가 양보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이자 선이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한 집단은 그들의 이익을 선으로 규정하고 이것을 반대하는 개인은 악으로 낙인을 찍어 집단 배척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걸 어떡하지?”

고상국이 걱정스럽고 난감한 표정으로 묻는다.

“뭘, 어떡해. 국가 세금을 손대면 되겠냐? 공항이용료는 국가 세금이야. 이놈들 태양항공에서 배운 버릇 못 버리고 뉴스타에 와서도 도둑질을 해?”

사리 분별을 못 하는 그들의 행태에 임호는 화가 치밀었다.

“호야, 강 과장이 이미 지시했는데 어떡하냐. 거부하면 보복할 텐데. 인사고과 긁어서 내년 대리 진급은 물 건너갈 텐데.”

“으음---.”

이놈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인사권으로 행패를 부릴 것이다.


“강 과장이 네게 처음 이야기했을 때 세금 횡령의 문제를 바로 제기했으면 그 사악한 놈이 없는 일로 하자고 발을 뺐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음---.”

임호는 고상국이 걱정하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런다고 향후 상국에게 닥칠지 모를 더 큰 위험을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상국아, 이 일을 지시한 게 너 혼자냐?”

“아니, 카운터에 근무하는 남자 직원 중에 나와 김윤 둘에게 이야기한 거야. 너는 빼고.”

강해철 과장은 카운터에 근무하는 남자 직원 세 명 중 임호만 빼고 둘을 불러 지시를 했다. 태양항공 핏줄들은 일찌감치 임호의 반골 기질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임호를 자기들 사람으로 포함하지 않는다.


“상국아, 내 말 잘 들어. 너는 천생 착한 놈이야. 이런 일은 너와 어울리지 않아. 나중에 상처받지 말고. 이 일은 김윤 혼자 하게 하고 너는 빠져.”

“지금 내가 어떻게 빠지냐?”

“내가 하자는 대로 해.”

임호는 맥주잔을 들어 잔뜩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상국에게 한 모금 권했다.


“내일 강 과장을 찾아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 어제 임호를 만났다. 이 일을 알고 있을 줄 알고 말했는데 모르고 있더라. 임호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이 일을 김윤이 하는 것은 개의치 않겠지만 네가 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해. 그러면 너를 이 일에서 빼줄 거야. 그때 못 이긴 척하고 빠져.”

“알았다. 그렇게 해보자.”


이튿날 고상국이 임호에게 말했다.

“호야, 강 과장에게 이야기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알았다며 자기가 너를 한번 만나보겠다고 한다. 너한테 연락할 거야.”

“알았다.”


강 과장이 임호를 찾아왔다. 둘은 휴게실에 마주 앉았다. 임호는 그가 자기에게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소파에 마주 앉자 발을 꼬고 앉으며 임호에게 말을 꺼냈다.


“임호 씨, 나랑 손잡지?”

그는 말을 길게 하며 수고하고 싶지 않다. 태양항공 후예들이 자기 편을 확인하는 데 쓰는 말이 “나랑 손잡자”이다. 일종의 통과 의식 같은 것이다.


“예? 무슨 손을 잡습니까?”

그는 임호의 대답이 거부의 의미라는 것을 잘 안다. 자신의 권위가 무시당했다고 여긴다. 긴말이 필요 없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다 말고 위협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급을 누가 시키는지 알고는 있나?”

태양항공 핏줄들이 부하 직원을 복종시키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추접스러운 놈들. 자기들 말 잘 듣고 더러운 짓 대신 하는 자들을 진급시켜 자신들만의 세상을 구축하려는 더러운 집단. 임호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는 임호에게 진급을 빌미로 협박했다. 임호는 깃털 같은 권력으로 갑질하는 일은 질색이다. 그는 순간 욱했다.

“과장님 진급은 누가 시키는지 아십니까?”

“누구야?”

“접니다.”

“---.”


강 과장은 “이 미친놈이”라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그는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센 반응에 기가 막혔다. 표정이 굳은 채 일어나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이 일은 순식간에 태양항공 핏줄들에게 퍼졌다.

임호는 비리로 똘똘 뭉친 그들에게 찍힌 것이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임호는 그들이 화물 수수료를 가로채건 말건, 공항이용료를 횡령하건 말건 개의치 않았다. 회사의 수익과 안전을 따질 만한 지위에 있지도 않다. 정의를 부르짖는 투사도 아니다. 타인의 것을 탐해 자신과 집단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권력자들과 맞설 힘도 없다. 임호는 자기가 좋아하는 동료이자 친구인 고상국이 그들의 비리에 연루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정뿐이었다.


<<본문을 구성하는 내용과 인물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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