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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9화] 스타일 구겼다

원하시는 대로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by 충칭인연

스타일 완전히 구겼다


임호는 그룹 공채 1기로 입사한 이후 그 뒤로 3개월, 6개월 간격으로 신입직원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그 탓에 금방 고참 계열에 올라섰다. 신입직원들은 태양항공 출신 관리자들보다 공채 1기 선배들을 더 따랐다. 태양의 핏줄과는 뭔가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루는 고교 후배인 윤상봉이 임호를 찾아와 후배 신입사원들의 민원을 전달한다.

“형님, 권순천 대리가 신입직원들 일하는데 찾아와 사사건건 간섭하고 괴롭힙니다. 운송부 이사나 공항지점장이 출발 라운지를 순시하면 어디에 짱박혀 있다가 튀어나와 직원들을 못살게 굽니다.”

“권 대리가 그런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잖아?”


권 대리는 윗사람에겐 납작 엎드리고 아랫사람은 억압하는 전형적인 갑질형 인물이다.

“신입직원들이 뜻을 모았습니다. 형님이 나서서 권 대리를 좀 막아주십시오.”

“아니, 공채 1기 선배들 많은데 왜 하필 나보고 총대를 메래?”

“신입직원들이 형님을 많이 따릅니다.”


임호는 고등학교, 대학교 학창 시절에도 종종 후배나 동기들의 부탁을 받고 민원을 해결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물론 뜻하지 않은 봉변을 겪기도 했다.


“신입직원들이 요구하는 사항이 정확히 뭐냐?”

“요청은 하납니다. 권 대리가 근무 중에 직원들을 쫓아다니며 지적질을 합니다. 습관적으로요. 설사 지적사항이 있더라도 긴급하지 않은 것은 현장보다는 브리핑 시간에 전체 공지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내일 시간 봐서 권 대리 면담할게.”

윤상봉은 임호 대답을 듣고 활짝 웃으며 돌아갔다.


임호는 다음 날 오전 근무 때 권 대리에게 면담 요청을 했다.

그는 작은 키에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있다. 얼굴을 큰 안경이 덮고 있어서 외견상으로는 좀스럽고 가난한 고시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대리님, 건의드릴 게 있습니다.”

임호는 영웅본색의 마크(주윤발 역) 스타일로 말을 꺼냈다.


“뭔데?”

“신입사원들 건의 사항입니다.”

“말해봐.”

“대리님께서 직원들 근무 중에 일일이 지적하시는 것 말입니다. 현장에서 바로 하는 것보다 브리핑 시간에 직원들 다 모였을 때 해 주시면 좋겠다는 요청입니다.”

갑자기 권 대리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뭐? 이것들이 겁대가리 상실했구만. 우리 때는 불려가서 뺨까지 맞았는데 배가 불러도 한참 불렀어.”

예기치 못한 그의 민감한 반응에 당황했지만 임호는 차분히 설명했다.

“대리님, 언짢게 하려고 말씀드리는 것 아니니 진정하시고요. 현장에서 긴급하지 않은 지적사항은 기억하셨다가 오후 브리핑 시간에 지적해주면 개선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니 윗사람이 까라면 까는 거지.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하기 싫으면 회사 관두든지.”


부하 직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가 내뱉은 천박한 말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태양항공에서 오래도록 대리 진급을 하지 못하다가 뉴스타항공으로 넘어오면서 대리로 진급했다. 태양항공이 왜 그를 꼴통으로 부르고 또 그를 꼬드겨서 뉴스타항공으로 넘어오게 했다는 소문이 도는지 이해가 갔다.


1979년 10·26 사태와 12·12 군사쿠데타, 1980년 5·18 항쟁,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성장한 젊은이들은 자유에 대한 의식이 높고 억압에 저항하는 성향이 있다. 그들은 선배 세대가 견지해온 ‘까라면 까라’식의 군대 문화를 배척한다.


“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시급을 다투는 지적사항이 아니라면 브리핑 시간에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게 하기 싫다는 거지, 뭐야. 당신도 내가 지나치게 지적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임호는 이 정도에서 대화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아닙니다. 정 그러시다면 대리님 생각대로 하십시오.”

“뭐야? 할 말 다 해 놓고 이제야 내 생각대로 하라고? 당신 내가 우스워?”

“우습다뇨.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신입직원들의 의견을 전달해 드린 것뿐입니다.”

“생각을 하고 말을 해야지. 날 보고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 아냐? 내가 허수아비야?”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실 줄 몰랐습니다. 오늘 건의드린 사항은 그냥 없었던 걸로 해 주십시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앞으로 신입직원들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해? 실컷 이야기하고 없었던 걸로 하자고?”

뭐가 꼬여도 한참 꼬였다. 임호는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싶었다.

“대리님, 그럼, 저는 그만 일 들어가겠습니다.”

“가긴 어딜 가! 끝장을 봐야지.”


그는 투견 케이지(Cage)에서 싸움 상대를 포착하고 달려들기 직전, 주인에게 목줄이 잡힌 채 접착제같이 끈적끈적한 침을 흘리며 씩씩거리는 일본 시코쿠의 도사견 같았다. 그의 히스테릭한 반응을 뒤로 하고 임호는 체크인 카운터로 향했다.


“임호 씨, 어디 가! 이리 와!”

임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체크인 카운터로 이동했다.


체크인 카운터는 승객의 탑승수속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공항에서 승객과 직원이 가장 먼저 만나는 접점이며 ‘공항의 꽃’으로 불린다. 회사는 용모 단정하고 상냥한 직원을 체크인 카운터에 배치한다.


체크인 카운터로 온 지 한 30분 지났을까? 권순천 대리가 식식거리며 체크인 카운터로 임호를 찾아왔다.


“임호 씨, 내가 뭘 잘못했어? 넥타이가 삐뚤어져서 지적했고, 하얀 양말 신어서 이야기했는데 뭐가 잘못됐냐고? 엉?”

“저 대리님 잘못했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방법을 바꿔 달라고 건의드린 거죠. 대리님, 저 지금 근무 중이고 손님 왔다 갔다 하시니 나중에 말씀하시죠.”

“뭘 나중에 이야기해. 말해봐. 내가 뭘 잘못했어?”


권 대리는 병적 집착력을 보였다. 공채 1기인 내게도 이러는데 신입직원들은 무척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을 질질 흘리며 상대 투견의 목을 물고 늘어지는 도사견처럼 공격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그 자리에서 근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출발 사무실로 올라갔다. 퇴근까지 남은 근무시간을 출발 사무실에서 소화할 생각이었다.


출발 카운터는 탑승수속과 보안 수속을 마치고 출발 라운지에 입장한 승객의 게이트 탑승을 지원한다. 항공기의 정시운항(On-time operation)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곳이다.


출발 사무실로 피해 온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그가 출발 사무실로 헐떡거리며 임호를 찾아왔다.

“여기 있으면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나? 또 도망가봐. 내가 끝까지 쫓아갈 테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입직원들의 건의 사항을 전달한 것뿐인데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일은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태양항공 출신 과장급 관리자들의 지시가 있지 않았을까? 신입직원들과 우리 공채 1기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여겼을까? 이 기회에 단단히 잡아두지 않으면 앞으로 통제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을까?


뉴스타항공의 창립 초기에 회사를 버리고 넘어온 태양항공 후예들. 그들은 뉴스타항공에서 권력을 형성해가고 있다. 누구라도 그들의 세력에 도전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분명히 경고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이번 신입직원들의 요구를 그냥 수용하면 다음엔 더 큰 것을 요구하고 결국엔 자신들의 머리꼭지에 올라탈 것을 두려워해 아예 그 싹을 자르려고 하는 것일까? 권 대리의 정상적이지 않은 과도한 반응에 임호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임호는 그의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조용히 일어서서 그를 피해 출발 사무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권 대리는 뒤에서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똑같은 말들을 계속 쏟아냈다.


임호는 도착 사무실로 갔다. 퇴근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으니 거기에서 남은 시간 동안 근무할 생각이었다. 어디서라도 근무를 하고 있어야 나중에 꼬투리를 잡히지 않는다. 도착 사무실에 들어가 데스크에 앉아 도착장 컨베이어벨트 쪽을 바라보니 근무자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선배님, 무슨 일이십니까?”

“니들 권 대리 건의 사항이라고 내게 준 거 있잖아? 그거 이야기했다가 지금 사망 직전이다. 오늘 하루 내내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그놈 피해서 일로 왔다. 니들도 힘들지?”

“말도 마십시오. 죽을 지경입니다.”


항공기가 도착 후 손님이 다 빠져나가서 도착 사무실은 다음 편이 들어올 때까지 한가한 편이었다.

항공 여행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도착 카운터는 승객의 수하물로 발생하는 비정상 상황이나 여행 중에 발생한 고객의 애로사항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승객의 최종 접점이다. 기내에 물건을 두고 내렸다고 접촉하는 경우가 많다. 안경, 책, 지갑, 고급 볼펜, 카메라 등 물품도 다양하다. 항공사에서는 그것을 손님이 놓고 갔다고 하여 LB(Left Behind) 아이템으로 관리한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권 대리가 도착 사무실까지 임호를 찾아왔다.

“여기로 오면 내가 모를 줄 알았지? 내가 쫓아다니니 짜증 나?”


그는 임호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것에 슬슬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대리라고 하는 사람이 하는 짓거리와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가관이다. 생각 같아선 꿀밤이라도 세게 한 대 먹였으면 좋겠지만 그건 생각뿐이었다.


“대리님, 이제 그만하시죠.”

“뭘 그만해. 듣기 싫으면 회사 그만둬! 그만두면 되잖아?”

“제가 언제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습니까? 그만하시라고 했죠?”

“그래, 듣기 싫으면 회사 그만둬!”

“아니, 대리님이 무슨 권한으로 나보고 회사를 그만두라고 강요하십니까?”


그는 계속 회사 그만두라는 말을 하면서 임호를 자극하고 궁지로 몰았다. 임호는 그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있으면 퇴근 시간이니 그때까지만 참자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집요한 공격이 계속되었다. 항공기가 도착하여 승객들이 짐을 찾기 위해 도착장 컨베이어벨트 쪽으로 몰려들 때 임호 역시 사무실에서 나와 승객들의 이동 경로를 지켜보고 있었다. 임호는 혹시 모를 승객의 문의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권 대리는 거기까지 따라와 임호를 계속 괴롭혔다. 신입직원들 건의 사항 몇 마디 전달한 것이 이토록 스토킹 수준의 괴롭힘을 당해야 할 일인가?


임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퇴근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무너지고 말았다.

“대리님, 제가 회사 그만두기를 원하시면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곁에서 후배 직원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임호는 발권 카운터로 갔다. 거기에서 항공권을 구입해 광주행 항공기에 탑승했다. 진회색 제복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그대로 기내에 올랐다. 영웅본색의 마크처럼 신입직원들의 민원을 멋지게 해결하려 했는데 스타일 완전히 구겼다. 일진이 사나웠다. 권 대리는 “옳지, 너 죽었어!”라고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본문을 구성하는 내용과 인물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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