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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7화] 국내선 전편 만석으로 보내다

항공유 3,000파운드를 누락하다

by 충칭인연

항공유 3,000파운드를 누락하다

국내선 전편 탑승률 100%로 보내다


임호는 출근을 위해 공항청사에 들어설 때면 바깥과는 다른 온도의 청사 내 공기가 온몸에 부딪혀 오는 느낌이 좋았다. 겨울은 겨울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문을 통해 물리적으로 구분된 두 개의 서로 다른 공간이 연결되는 느낌이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원형 문(Portal)을 통해 순간적으로 공간 이동하는 것처럼.


레벨 카운터는 뉴스타항공 국내선 체크인 카운터의 맨 오른쪽에 있다. 그 옆 통로로 들어가면 총괄사무실이 있다. 임호는 총괄사무실에서 레벨 카운터로 나오기 전에 항상 기도부터 한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문제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하소서!”

그 기도 덕분에 임호는 레벨 업무를 보는 동안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었다.


국내선에 하루 18편 정도 운항하던 때다. 오후 근무조로 레벨 카운터에 올라가 마지막 제주행 항공편까지 전 편을 176석 만석으로 마감했다. 공항 최초의 기록을 썼다.


그날, 전편을 만석으로 보내고 마지막 한 편만 남겨놓고 있었다. 운송부 이사와 공항지점장부터 그 아래 관리자의 모든 시선이 임호에게 집중되었다. 이 한 편만 만석으로 보내면 하루 전편 만석이라는 공항 최초의 역사를 쓰기 때문이다. 앞서 운항한 17편의 만석 행렬이 빛을 보느냐 마느냐가 남아있는 이 한편을 만석으로 보내느냐 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었다.


일요일 제주행 마지막 항공편은 보통 신혼부부가 많다. 이들은 피로연 등으로 종종 카운터에 늦게 나오는 경우가 있어서 좌석 컨트롤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당일 마지막 편의 예약 상황은 좌석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예약하지 않고 공항에 나온 고쇼 승객을 빠르게 흡수해야 만석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고쇼 승객을 받을 수는 없다. 혹시라도 예약한 신혼부부가 탑승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낭패다.


카운터 관리 담당 신현호 과장이 레벨 카운터로 씨익 웃으며 건들건들 다가왔다. 그는 욕이 입에 붙어 다닌다. 마주칠 때마다 원투 스트레이트 잽을 날리는 시늉을 한다. 자신이 박종팔인 줄 알고 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솔직하고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다.


“요우, 임호! 남은 한 편도 만석으로 보내자. 할 수 있지?”

“만석으로만 보내면 되는 거죠? 예약 손님 떨어지면 과장님이 책임지세요?”

“당근, 맨! 내가 책임지지. 만석으로만 보내.”

그는 마치 랩을 하듯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끊어서 힘주어 말했다.


하루 전편 만석이라는 공항 최초의 기록을 쓰고 싶을 것이다. 신 과장은 자신만만하게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쳤다.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은 모양이다.

“야, 그래도 예약자 떨어지지 않게 잘해 봐.”

푸훗!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는 신혼부부가 탑승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 뒷감당하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그는 꼬리를 내렸다.

“예, 해보죠.”


하늘이 도왔다.

고쇼 승객을 딱 맞게 흡수하여 176석 만석으로 출발 15분 전에 카운터를 마감했다. 카운터 마감 직후 부랴부랴 신혼부부 두 명과 친구들이 카운터로 우르르 몰려왔다. 이들이 3분만 일찍 도착했다면 하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임호는 신혼부부에게 공항 근처에서 숙박하고 다음 날 아침 편으로 가도록 안내해드렸다.


옆에서 줄곧 지켜보던 신 과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석으로 마감한 걸 확인하고는 바로 워키토키로 공항지점장에게 이를 보고한다.

"지점장님, NS829편 176명으로 카운터 클로스. 금일 전편 만석 성공. 오버."

"로저. 땡큐."


하루 전편을 만석으로 내보내는 기록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신 과장은 임호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동훈은 이 일을 상기하며 동기인 이창준의 실수와 대비되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항공유 3,000파운드(LBS)를 누락하다


레벨은 노쇼, 고쇼를 적절히 관리하여 매 항공편의 탑승률 향상에 기여하는 것 이외에도, 웨이트·앤·밸런스 시트(Weight & Balance Sheet)라고 하는 항공기 무게 중심 도면을 작성하는 업무를 한다. 웨이트·앤·밸런스 시트는 승객, 화물, 항공유 등의 적재 현황과 항공기 중량 등 항공기 운항과 관련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항공기의 무게 중심(CG, Center of Gravity)이 정상범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여 준다. 레벨이 수행하는 웨이트·앤·밸런스 시트 작성은 항공기 안전 운항에 중요한 업무다. 지금은 전문 로드 마스터(Loadmaster, 탑재관리사)가 동 업무를 수행한다.


임호는 김포공항 국내선에서 근무하던 18개월 동안 숙직을 참 많이 했다.

김포공항 국내선은 오전 근무조와 오후 근무조의 2교대로 운영했다. 오후 근무조에서 남자 직원들이 번갈아 가며 공항 내 총괄사무실에서 매일 저녁 숙직을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보안시스템이 완벽하지 못했다. 임호는 순번이 되어 숙직을 서던 날 사무실을 둘러보니 공항 운송시스템과 운항 관련 책들이 많았다. 입사 당시 받았던 4주 교육이나 공항에 배치되어 받은 OJT(현장 실습)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호기심 가는 내용이 많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나하나 보다가 뜬눈으로 날을 새고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오는 숙직 순번을 기다리기가 지루했다. 오후 근무일 때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당일 숙직자를 집에 보내고 대신 숙직을 섰다. 숙직은 회사에서 숙직비를 주거나 하는 초과근무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숙직자들은 임호의 이러한 선행(?)에 고마워했다. 임호는 총괄사무실에서 숙직하는 날이 늘어나면서 항공 업무에 대한 내공도 하루하루 쌓여 갔다.


임호는 숙직 중에 항공기 운항 관련 서적을 공부하다가 항공편에 입력된 데이터를 리셋(Reset)하는 엔트리를 숙지했다. 여객 및 화물, 급유 등 항공기 운항과 관련한 적재 데이터를 각 부문은 컴퓨터에 형성된 해당 항공편에 입력한다. 임호가 공부한 서적에서는 에러 발생 시 리셋 엔트리를 사용하여 항공편을 기본 데이터로 재구성하도록 안내한다. 임호는 이 운항 관련 엔트리가 자기가 속한 여객 운송시스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므로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호기심에 암기하고 있었다.


1990년 상반기 어느 하루 김포-광주행 항공편이었다.

항공기 체크인 마감 시점이 되었다. 임호는 각 체크인 카운터에 해당 항공편의 체크인을 종료한다고 통보하고 마감 작업에 돌입했다. 체크인 데이터의 업로드를 완료하고 웨이트·앤·밸런스 시트 출력을 시도하는데 모니터에 항공기의 CG(무게 중심)가 빠진 것으로 메시지가 떴다. 승객과 수하물의 위치를 약간 조정하면 웨이트·앤·밸런스 시트를 출력할 수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계속 ‘Out of CG’ 메시지가 떴다. 긴장감은 더해 가고 항공기 출발 시간은 다가온다. 심장 박동이 예사롭지 않다. 직원들은 임호가 신속히 해결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임호는 정 안되면 종이 도면을 가져다가 매뉴얼로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임호는 공항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웨이트·앤·밸런스 시트 매뉴얼 빨리 그리기 시합에서 1등을 차지한 전력이 있다. 그전에 숙직하며 공부했던 리셋 엔트리를 먼저 사용해보기로 했다. 임호는 빠른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두드려 항공편을 리셋하고 여객 및 수하물 데이터를 신속하게 다시 업로드했다. 항공편 마감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웨이트·앤·밸런스 시트를 출력하여 기장에게 전달하고 항공기를 정시에 출발시켰다. 임호의 등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임호는 뿌듯했다. 목에 힘도 들어갔다. 숙직하며 남모르게 공부했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임호는 스스로가 좋았다. 그는 그날도 숙직 직원을 집에 보내고 대신 숙직하면서 여느 때보다 더욱 향학열에 불타 서적을 뒤적이고 있었다. 뭔가 큰일을 했다는 성취감에 취해 있었다.


저녁 늦은 시간에 운항관리실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국내선 총괄사무실 임호입니다.”

“수고하십니다. 운항관리실입니다.”

운항관리실이라는 말을 듣고 순간 오늘 리셋한 광주 항공편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예, 무슨 일이신지요?”

“다름이 아니고, 오늘 김포-광주 항공편에 대해 문의할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혹시 레벨 카운터 담당 직원이 누구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예, 제가 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그러십니까? 오늘 서울-광주 항공편에 항공유 3,000파운드(LBS)를 추가로 실었는데 컴퓨터에 반영이 되질 않았습니다. 누락 사유를 추적하다 보니 아무래도 국내선 카운터에서 착오가 생긴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일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는지요?”

직감이 맞았다. 순간 임호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항공기를 마감하고 웨이트·앤·밸런스 시트를 뽑는 데 출력이 되질 않아 항공편을 리셋했습니다. 여객과 화물을 다시 업로드(Upload)하고 웨이트·앤·밸런스 시트를 출력해서 기장에게 전달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누락 원인을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대답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희가 경위를 좀 더 파악해서 상부에 보고할 계획입니다. 혹시 직원분께 책임 소재를 물을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는 임호에게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동시에 임호의 소속과 성명을 받아 적고는 전화를 끊었다.


임호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말은 두렵지 않았다. 다만 별다른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후 운항관리팀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모든 항공편은 운항 목적지에 따라 기본 데이터가 내장되어 있다. 예를 들면, 서울-광주 항공편은 항공유가 기본적으로 14,400파운드(LBS)가 세팅되어 있다. 지상조업사는 기장의 별도 요청이 없으면 목적지별로 세팅된 기본 급유량만 급유한다. 기장은 도착지 공항인 광주의 기상 상태를 확인하고 항공유를 3,000파운드 더 급유하도록 사전 요청했고 그에 따라 항공유를 총 17,400파운드를 실은 것이다. 그런데 항공기 마감 시점에 웨이트·앤·밸런스 시트를 출력할 수 없어 항공편을 리셋하였고 추가 급유한 3,000파운드의 항공유가 컴퓨터에 누락되고 말았다. 임호는 컴퓨터에서 항공편을 리셋하면서 추가 급유한 항공유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못해 후속 입력 조치를 하지 못했다.


추가 급유한 3,000파운드의 항공유가 누락된 웨이트·앤·밸런스 시트를 받아 본 기장은 자기가 3,000파운드를 더 싣도록 요청을 했는데 서류상 반영이 되어 있질 않으니 의아했을 것이다. 기장은 광주 비행을 마치고 돌아와 그가 요청한 대로 3,000파운드가 추가로 급유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운항관리실은 실제로 급유한 사실을 확인하고 웨이트·앤·밸런스 시트상에 누락된 사유를 찾다가 저녁 늦게 총괄사무실로 전화했다. 임호는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날 이후 임호는 사무실에서 숙직하는 날이 줄었다.


<<본문을 구성하는 내용과 인물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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