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자 36명이 떨어지다
노쇼와 고쇼 사이에 시소(Seesaw)를 타다
1989년 1월의 김포공항 주변은 어느 시골 도시의 읍내 풍경 그대로였다.
김포공항 진입로인 공항대로와 방화동, 공항동 일대는 항공기 안전 운항을 위한 고도 제한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높은 건물이 없다. 관할구청과 항공 당국이 건축물의 층수를 대개 3층 이하로 제한하여 건축을 허가한다. 김포공항 입구는 대부분 1, 2층 건물이다.
임호는 김포공항 입구의 낡은 1층 양옥 하숙집에 묵었다.
하숙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공항 근무자다. 허름한 내부 시설에 코딱지만 한 방이지만 퇴근해서 몸을 눕혀 휴식을 취하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달아오른 방구들에 누런 장판이 아랫목 바닥에 눌어붙어 군데군데 검게 탔다. 백열전구 하나가 방을 어둡게 비추고 벽지는 퇴색해 시골 농가의 사랑방을 연상케 한다. 창문 하나 없는 누추한 방이지만 방안에 가득하고 따뜻한 온기가 좋았다. 추운 겨울 공항의 세찬 바람을 맞고 저녁 늦게 퇴근해서 돌아오면 몸은 어느새 얼어붙는다. 아랫목 이불 밑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전해지는 방바닥의 따뜻한 온기가 어머니 젖가슴처럼 포근하고 아늑하다.
하숙집 주인아주머니는 전라남도 해남이 고향이다.
음식솜씨가 일품이다. 아침과 저녁 식탁에 오르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고향의 맛 그대로다. 여수 돌산에서 올라온 갓김치는 입안을 톡 쏘는 특유의 맛을 뽐낸다. 돌산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 천연적인 환경이 제공하는 해풍과 염분은 강하고 독특한 향의 돌산 갓을 만들어낸다. 흰쌀밥에 갓김치가 더해지면 여수만을 흐르는 바다의 내음이 입안에 퍼진다.
동기인 안동훈은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2층 양옥집에 방 하나를 빌려 자취를 한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자취를 오래 해서 이력이 붙었다. 서로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있어서 오전 근무인 날 오후 2시 정도 퇴근하면 임호는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많다. 동기들과 공항 입구에 모여 맥주에 골뱅이로 시간을 보낸다. 그 옆 2층 당구장으로 올라가 스리쿠션 볼로 내기 당구를 친다. 그러다가 안동훈의 자취방으로 우르르 몰려가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혈혈단신 청춘의 몸 하나 믿고 서울로 올라와 시작한 김포공항 생활. 젊은 날의 김포공항 스케치는 그렇게 하루하루 물들어 가고 있었다.
김포공항 국내선은 오전과 오후 2교대로 근무한다.
오늘이 오전 근무면 다음 날은 오후 근무다. 반대로 오늘이 오후 근무면 다음 날은 오전 근무다. 오전 근무를 끝내고 오후 2시에 공항을 나서면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다음날은 오후 근무이니 출근 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부담도 없다.
직원들은 삼삼오오 공항 입구의 골뱅이 맛집으로 모여든다. 시원한 맥주를 서로 나누면서, 새벽 일찍 출근하여 현장 근무 중에 겪은 피로와 긴장감을 털어낸다. 할머니가 운영하는 골뱅이 맛집은 공항 근무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할머니의 손맛이 배인 맵고 달콤한 골뱅이와 소면은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데 최고의 선택이다.
“호야, 창준이 이제 어떻게 되냐? 사고를 쳐서---.”
안동훈이 콜라를 컵에 따르며 어제 카운터에서 발생한 사고를 언급했다.
그는 맥주 한 모금도 마시질 못해 콜라를 마신다. 임호보다 두 살이 아래지만 동기라는 이유로 말을 놓는다. 그는 출발 데스크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체크인 카운터에서 벌어진 사고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글쎄다. 아직 결정된 건 없다. 두고 봐야지.”
이창준은 그룹 공채 1기이며 동기다. 그는 임호와 서로 다른 조를 이루고 오전, 오후로 나누어 번갈아 가며 레벨 카운터 업무를 담당했다.
“아침 부산 편에 예약자 36명이 떨어졌다며? 어떻게 그런 일이---?”
“그러게. 새벽까지 술 마시다 그대로 출근했단다. 창준이 체력 좋은 건 세상이 다 알잖아?”
“그래도 오전 근무 있는 날은 조심했어야지, 쯧쯧.”
“힘들어서 10분 정도만 쉬려고 휴게실에 들어갔다가 그만 잠든 거야.”
“아이고!”
“빈 좌석이 많아서 고쇼(Go-show) 승객 받으려고 노렉(NO-REC, No Record) 체크인 기능을 열어놓고 자리를 비웠어. 그래야 직원들이 예약 없이 나온 승객에게도 좌석을 줄 수가 있거든. 10분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 거야.”
“다른 직원한테 말이라도 하고 갔으면 문제없었지---.”
“그거야. 자기를 과신했어. 아침 편은 예약 없이 나오는 승객이 많아. 순식간에 자리가 찰 위험이 있거든. 사람들은 일단 예약 먼저 하고 일정이 바뀌어도 예약을 취소하는 법이 없잖아? 그러니까 정말 가야 할 사람들이 예약을 못 하고 나오는 거야.”
“예약 문화가 후져서 그래. 페널티를 물리든지 해야지 원. 그래서 편마다 초과예약을 하는 거 아냐?”
“그래. 그날도 고쇼 승객이 많이 나왔어. 창준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이쪽저쪽 카운터에서 고쇼 승객들에게 그냥 막 좌석을 다 준 거야. 예약 승객은 아직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항공편 마감 시간도 아직 남았는데, 고쇼 승객으로 만석이 된 거야. 예약자들이 카운터에 나와 좌석 달라고 하는데 어떡해? 줄 좌석이 없어. 너 생각해봐라. 너 같으면 가만히 있겠냐? 공항이 난리가 났다. 부산행 오전 항공편의 경상도 사나이들 장난 아니거든.”
“맞아. 항공기 출발 10분만 지연돼도, 이놈아 자석들! 하며 이 새끼 저 새끼!는 기본이야.”
“화난 경상도 사나이들이 지점장 찾고 난리가 났어. 그 떡대 좋은 지점장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는데, 고양이 앞에 생쥐 꼴이야. 너 지점장 떡대를 봐라. 주눅들 사람이냐? 근데 그날 스타일 완전히 구겼다.”
“그나저나 떨어진 36명은 어떻게 됐냐?”
“한 시간 뒤 편으로 일부 보내고, 일부는 태양항공 부산 편으로 좌석 사서 보냈다. 그리고 몇 명은 오늘 아침 편으로 나갔고. 항공권은 전부 환불했다.”
“고생했네. 근데 레벨을 어떻게 봤길래 예약자가 떨어져?”
“그건 레벨 카운터 업무의 메카니즘을 알아야 해.”
안동훈은 레벨 업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몰라 궁금했다.
“음, 그건 말이야---. 잘 들어.”
임호는 설명을 이어갔다.
“레벨(Level) 카운터 업무란 그 단어가 주는 의미 그대로 항공편의 예약자 수와 체크인 수의 균형을 유지하여 탑승률을 최적화하는 거야. 레벨은 예약자가 공항에 나와 체크인하는 시간대별 체크인 숫자와 잔여 좌석 수를 확인해. 또, 아직 좌석을 받아 가지 않은 예약자 수와 남은 좌석 수를 체크해. 이 작업을 오랜 시간 반복하다 보면 자기만의 데이터와 노하우가 생겨.”
“레벨이 아무나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전문성이 필요한데?”
“왜, 아무나 하면 너도 하려고? 또 있어. 예약하고 공항에 나오지 않는 노쇼(No-show) 승객이 얼마나 될 것인지를 예측해야 해. 그래야 고쇼 승객을 얼마나 받으면 될지 감이 잡혀. 레벨은 이렇게 탑승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즉, 예약자 수, 실시간 체크인 수와 잔여 좌석 수, 노쇼 및 고쇼 예측치, 이런 요인들의 실시간 변동 상황에서 상호 연동성을 찾는 거야. 그 시간적 흐름을 포착해서 항공기의 탑승률을 높이는 고도의 예술이야.”
임호는 탑승률 제고를 위해 자신이 구축한 하나의 질서를 세상에 공개하는 듯 우쭐했다.
“레벨은 레벨 카운터의 컴퓨터 하나로 체크인 카운터에 있는 모든 컴퓨터와 건너편 발권 카운터의 컴퓨터, 그리고 네가 근무하는 2층 출발 사무실의 컴퓨터까지 통제해. 레벨은 출발 한 시간 전인 항공편에 특히 집중해서 예약자 수와 체크인 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야.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아직 체크인하지 않은 예약자 수와 잔여 좌석 수를 확인하는 거지. 예약 없이 나온 고쇼 승객을 흡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각 카운터에서 고쇼 승객을 체크인할 수 있도록 노렉(NO-REC, No Record) 체크인 기능을 활성화해. 그렇게 하면 예약 없이 온 승객이라도 전 카운터에서 좌석을 줄 수 있어. 그러다 체크인 수가 증가하면 다시 노렉 체크인 기능을 막는 작업을 반복하는 거야. 예약자가 카운터에 나와 체크인하는 숫자와 예약 없이 카운터에 나와 체크인한 숫자를 시간 경과와 함께 균형을 맞추며 탑승률을 최적화하는 거지. 그게 레벨의 일이야. 알아들었어?”
“음, 이제 좀 알 것 같아.”
안동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호는 설명을 이어간다.
“예를 들어, 176석의 B737 항공편에 190명이 예약되어 있다고 하자. 14석이 초과 예약되었잖아? 예약하고 공항에 나오지 않은 노쇼가 많으니 예약관리부서는 좌석 유실을 막기 위해 항상 초과예약을 하는 것이 관례야. 보통 10%에서 많으면 20%까지 노쇼가 생겨. 이런 높은 노쇼율 때문에 항공기가 비어갈 가능성이 커져. 예약 없이 공항에 나온 고쇼 승객을 흡수해야 항공기가 비어갈 가능성을 줄일 수 있어. 그런다고 고쇼 승객을 지나치게 많이 받으면 예약자가 탑승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해. 그렇다면 큰일이야.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레벨은 고쇼와 노쇼 사이에서 시소(Seesaw)를 잘 타야 해.”
“창준이가 고쇼를 너무 많이 받았다는 거 아냐?”
“맞아. 좀 더 설명하면, 예약자가 190명이라고 했잖아? 레벨은 예약자 190명 중 노쇼가 몇 명일지를 추정하고, 고쇼는 몇 명을 받아야 항공기를 만석으로 채울 수 있을지를 미리 계산하고 있어야 해. 그런 다음, 위험을 무릅쓰고 몇 명 정도를 고쇼로 미리 확보할지 아니면 안정적으로 마감 시간까지 고쇼를 기다리게 할지를 결정하는 거야. 그것은 레벨의 특성이 도전적인지 보수적인지에 따라 달라."
"레벨도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둘 다 추구하는 것은 같아. 방법만 틀릴 뿐이야. 자, 항공기 출발 시간 40분 전에 예약 없이 건너편 발권 카운터에 고쇼 승객 10명이 나타났어. 보수적인 레벨이라면 항공기 수속 마감 시간인 출발 15분 전까지 25분 동안 대기하게 할 거야. 출발 15분 전이 되면 그때 수속을 마감하고 그들에게 남은 좌석을 주는 것이니 전혀 문제가 없어. 문제는 그들이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태양항공으로 가버린다는 거야. 수입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거지. 그런데 도전적인 레벨은 달라. 노쇼율과 좌석이 빌 것을 감안해서 그 열 명에게 바로 좌석을 제공하는 거야. 태양항공으로 보내지 않고 즉시 수입으로 연결하는 거지. 문제는 기존 예약자들이 다 나오는 경우는 탑승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있어. 그러면 공항에서 난리가 나는 거지.”
“그럼, 창준이가 도전적인 레벨이라는 거네?”
“아니지. 창준이 케이스는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아. 단지 실수했을 뿐이야.”
이창준은 전날 저녁부터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잠 한숨 자지 않고 아침 근무에 돌입했다. 입사한 지 아직 1년이 되지 않은 신입이어서 혈기가 왕성했다. 여기저기서 술 마실 기회도 많았다. 그는 술을 좋아해 사양하지도 않는다.
“창준이는 이번 일로 힘들어지게 생겼다. 술 때문에 그런 거라 성실성에 큰 타격을 입었어. 임호 너는 저번에 전편 만석을 기록해 히트였는데 창준이는 대형 사고를 쳤으니---. 안 됐다.”
안동훈은 몇 개월 전 임호가 하루 전편을 만석으로 내보내 공항 최초의 탑승률 100%를 기록한 것을 언급했다. 그 일로 운송부 이사와 공항지점장은 뉴스타항공 주기성 사장으로부터 감사와 격려의 전화를 받았다. 그들은 하루 내내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
임호는 동훈의 말에 호응하지 않고 맥주를 들이켰다.
“맞다. 내가 공항 최초의 기록을 썼었지.”
<<본문을 구성하는 내용과 인물은 허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