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오는 천하제일이다
구이린의 양수오는 천하제일이다
임호 일행은 구이린 일정을 협의하기 위해 모두 임호 방으로 모였다. 송 대리가 머뭇머뭇하더니 입을 연다.
“과장님, 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000위안씩 더 걷어야겠습니다.”
“3,000위안을 벌써 다 썼어? 좀 빠른데? 알았어.”
오늘 하루 택시비, 입장료, 그리고 세끼 식사비, 양꼬치와 술값을 언뜻 계산해보았다. 3,000위안을 다 썼다는 것이 수긍이 가지 않았다. 지출 내역은 나중에 설명하겠지 생각하고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1,000위안을 송 대리에게 막 건네려던 참이다. 최판성 사원이 급히 임호 손을 제지하며 끼어들었다.
“과장님, 지금부터는 제가 관리하겠습니다. 1,000위안을 제게 주십시오.”
최판성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임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임호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그럼, 지금부터 판성 씨가 관리해봐.”
임호는 1,000위안을 최판성에게 건넸다.
돈을 받은 최판성은 자기 돈 1,000위안을 보태 왼손에 2,000위안을 들고 송 대리에게 말했다.
“대리님, 쓰고 남은 돈과 회비 1,000위안을 제게 주십시오.”
“알았어. 조금 있다 줄게.”
양 대리는 갑작스러운 최판성의 반응에 당황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돈을 건네지 않고 방에 돌아가서 주겠다고 했다. 둘은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송 대리가 임호 방을 다시 찾아왔다.
“과장님, 회비 관리를 제가 하도록 해 주십시오.”
“아니 아까 최판성 씨가 하기로 했잖아? 그게 그리 중요한 일이야?”
“제가 관리하다가 최판성 씨가 하면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보여 그렇습니다. 제 체면이 좀 그렇습니다.”
송 대리는 정색을 하고 돈 관리를 자기가 하겠다고 한다. 그게 체면과 무슨 상관이지?
“아니 뭐가 잘못한 것처럼 보이고 또 뭔 체면이 그렇다는 거야? 최판성 씨가 하도록 그냥 놔둬.”
“과장님, 제가 한 번 더 하게 해 주십시오.”
그는 고집을 부렸다. 왜 이러지?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귀찮게 하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내일 판성 씨랑 다시 이야기하자고.”
임호는 송 대리가 방을 나간 후, 룸 내선을 이용해 최판성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과장님, 무슨 일입니까?”
“송 대리가 회비 주더냐?”
“아니요, 준다고 했는데 아직 못 받았습니다.”
“그래? 조금 전 송 대리가 왔다 갔다. 자기가 관리하게 해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과장님, 송 대리가 돈을 벌써 다 썼다고 하는데 좀 이상하지 않으세요?”
최판성도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과장님, 이런 말씀 드리기 그런데요. 송 대리가 회비를 3,000위안으로 관리하면 벌써 돈을 다 썼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수중에 돈이 남아있으니까요. 그런데 2,000위안으로 관리하니까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또 걷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네 말은 송 대리가 회비를 내지 않고 우리 둘이 낸 돈 2,000위안으로 쓴단 말이야?”
“네, 그겁니다.”
“에이, 그럴 리가.”
“과장님, 그렇지 않으면 벌써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최판성의 말을 들어보니 수긍이 가는 설명이었다. 그는 탐정이라도 된 듯 말을 이어갔다.
“제 말이 틀림없습니다. 송 대리는 베이징 출발할 때부터 런민비를 한 푼도 가져오질 않았습니다.”
“아니 월급 말고도 연수비 명목으로 한 달에 적지 않은 돈을 회사에서 주는데 왜 그러고 다녀?”
“글쎄 말입니다.”
최판성은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듯 이야기보따리를 하나하나 풀어가기 시작했다.
“과장님은 학교 기숙사에 한 달도 안 계시고 동왕좡으로 방을 구해 나가셔서 잘 모릅니다. 과장님 기숙사에 계실 때는 저희 어디 가서 식사하고 술 마시면 전부 과장님이 내셨잖아요?”
“그랬지. 그게 왜?”
“과장님 가신 뒤로는 둘이 식사할 때 제가 계속 냈습니다.”
“왜?”
“송 대리는 돈을 안 가지고 다닙니다. 돈을 방에 놔두고 왔다면서 나중에 준다고 말만 합니다. 상습적입니다. 이번 여행도 경비 준비 없이 따라나섰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허허, 참.”
별일이 다 있구나. 최판성의 말을 듣고 보니 송 대리의 그동안 행적이 이해가 갔다. 항공사 대리라는 자가 후배 사원 앞에서 참 모양 빠지는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구나. 기가 막혔다. 최판성의 말대로라면 그리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최판성에게 관리를 맡기면 송 대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이 갔다. 돈을 빌려 달라고 하던가, 아니면 갑작스러운 이유를 대고 여행을 도중에 중단할 수 있다. 돈 몇 푼 때문에 여러 사람이 불편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 대리에게 회비를 관리하게 하면 문제는 하나다. 그의 경비까지 부담한다는 심리적인 불편함만 수용하면 된다. 며칠만 있으면 베이징으로 돌아가니 그때 기회를 봐서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기왕 시작한 여행이니 외견상 트러블 없이 여행을 마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어려운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것으로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하는 꼬락서니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덮어주기로 했다.
“그럼, 내일 구이린 출발 전에 네가 송 대리에게 회비 전달해라.”
“네, 알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최판성은 선배의 경비까지 부담하는 것이 억울할 수 있겠다. 그 불편한 마음은 임호가 따로 풀어줘야겠다고 마음에 새겼다.
임호 일행은 다음 날 아침 시안에서 비행기를 타고 구이린에 도착했다. 중국 광동성 서쪽으로 광서성 장족자치구(广西壮族自治区)에 세계적인 관광지 구이린(桂林)이 있다. 구이린의 양수오(阳朔)는 자연의 놀라움이다.
“桂林山水甲天下 구이린의 경치는 천하에서 제일이고
陽朔風景甲桂林 양수오의 풍경은 구이린에서 으뜸이다.”
구이린이 세상에서 제일이고 구이린 최고의 경관이 양수오라고 한다. 그곳을 가보지 않을 수 없다. 구이린 시내에서 양수오 가는 마이크로버스에 올랐다.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라 외국인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좌석은 다 찼고 여러 사람이 서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내 공간도 없는데 기사는 더 태우려는지 출발할 생각이 없다. 버스에 오르고 15분이 지났다. 먼저 타고 있던 사람들은 빨리 가자고 누구 하나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띄엄띄엄 타면서 차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한발 한발 뒤로 밀린다. 임호는 자기라도 나서지 않으면 날 새게 생겼다 싶다. 기사를 재촉했다.
“师傅, 什么时候走啊?” (기사님, 언제 가죠?)
“马上” (곧 갑니다.)
기사가 운전대에 양손을 얹고 앞을 바라본 채 습관적으로 대답한다. 곧 출발하겠구나 하고 기다렸다. 10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갈 생각이 없다. 기사를 또 재촉했다.
“可以走吗?” (안 가요?)
“马上” (곧 갑니다.)
간다고 말만 하고 가지를 않는다. 간다고 했으면 가야지 말만 하고 안 가니 ‘빨리빨리’의 한국 사람은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런다고 버스를 탄 중국 사람은 기사를 탓하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 언어가 갖는 모호성에 잘 적응하고 있다. “마상(马上)”이 갖는 언어적 유희가 있다. 글자 그대로 “마상(马上)”은 길 떠나기 위해 사람이 말 위에 오른 것을 형상화하였다. 거기까지다. “마상(马上)”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것은 말에 오른 거기까지다. “말에 올랐으니 가야 한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이다. 가고 안 가고는 말 탄 사람의 마음(결정)이다. 지금 바로 갈 수도 있고 30분 후에 갈 수도 있다. “마상(马上)”이라는 단어는 지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이지 바로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국 사람은 그 말의 뜻을 잘 알고 있다. 버스는 여전히 시동만 걸어 둔 채 갈 생각이 없다. 임호는 다시 한번 재촉한다.
“师傅, 走吧!” (기사님, 갑시다!)
“马上” (곧 갑니다.)
그는 싸구려 테이프가 돌아가듯 줄곧 “마상(马上)”만 외쳤다. 임호는 안 되겠다 싶어 카운터블로를 날렸다.
“你说马上马上, 马上到底是什么时候啊?” (곧 간다는데 곧이 언제입니까?)
차 안에 있는 중국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임호를 보고 웃는다. 그들은 웃으면서 자기들과는 뭔가 달라 보이는 행색의 임호에게 친근감을 전했다. 버스는 비로소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수오에 도착하니 다른 관광지와 달리 유독 미국과 유럽에서 온 배낭 여행객들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행은 작은 동력선을 타고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며 어부가 가마우지를 물에 놓아 물고기 잡는 연출을 지켜보았다. 어부는 가마우지 목에 맨 줄을 이용해 가마우지가 물속에서 잡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도록 한다. 물고기가 입안에 가득하면 가마우지를 배로 올려 물고기를 뱉어내게 한다. 몇 번의 반복적인 작업을 끝내면 어부는 가마우지 목줄을 풀고 몇 마리의 물고기를 입에 던져 준다. 가마우지는 고된 노동에 시달렸던지 주인이 던져 주는 물고기를 허겁지겁 받아 삼킨다.
강을 따라 여기저기 솟아 있는 동글동글한 산봉우리는 어린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 산봉우리 그대로였다. 미술책 속의 산봉우리도 신기했는데 눈앞에 여기저기 솟아 있으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과연 양수오의 풍경은 천하제일이다.
임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인 게스트하우스 1층 레스토랑에 광시성 대표 쌀국수인 구이린 미펀(桂林米粉)과 현지 맥주인 구이린 피지우(桂林啤酒)를 놓고 둘러앉았다.
“과장님, 광저우 지점장 김두식 차장 아시죠?”
최판성이 갑자기 광저우 지점장 이야기를 꺼냈다.
광저우는 광동성의 성 소재지다. 구이린의 동쪽으로 대권거리 450km에 위치하며 비행기로는 한 시간 좀 넘게 걸린다.
김두식 차장은 S대 중문학과를 나왔다. 걸을 때 몸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건들건들 걷는다. 저런 걸음걸이라면 병역 면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은 뱀의 눈을 닮았으며 비웃는 투로 말을 한다. 그는 태양의 핏줄이며 서울-광저우 노선 취항과 함께 광저우 초대 지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잘은 몰라. 광저우 지점장이 왜?”
“본사 회계팀에서 감사를 나갔는데 비용을 쓰고도 영수증 처리는 하나도 안 했답니다.”
“회사 예산을 근거 없이 쓰면 되나.”
“회계팀에서 영수증 정리가 안 된 것을 두고 문제를 지적하니 뭐라고 한 줄 아세요?”
“글쎄---.”
“영업이 장사만 잘하면 됐지. 영수증은 니들이 와서 챙기라고 했답니다.”
“배짱 좋네. 영업지점장이 판매만 하는 사람이 아닌데.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해. 직원 관리해야지, 매출 관리해야지, 비용 관리, 대리점 관리해야지. 지점장은 관리할 게 많아. 영수증 챙기는 것도 그중 하나야. 장사 한 해 못했다고 망한 회사는 없어. 다 관리 못해서 망하는 거지.”
임호는 영업지점장이 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다들 알잖아. 본사 영업 담당 임원 하나가 회사 비용을 함부로 쓰고 다녔어. 영수증 처리를 대충 한 모양이야. 경리를 담당하는 나이 어린 여직원이 그것을 보고 배운 거지. 짧은 기간 동안 1,000만 원을 빼 쓰다 걸렸어. 바로 잘렸고 그 임원도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밑에 직원은 윗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배우거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말은 틀림이 없어.”
“예, 맞습니다. 과장님,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최판성이 임호의 맥주잔을 채웠다.
“그러게. 괜히 흥분했네.”
임호는 최판성이 채운 맥주잔을 들이켰다.
내일이면 시안과 구이린 여행 일정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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