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다
어학연수 중에 여행을 떠나다
임호는 어학연수 중 겨울방학 기간을 이용해 시안과 구이린 방문 계획을 세웠다. 홀가분하게 혼자 가려 했으나 함께 연수 중인 회사 동료 송중석 대리와 최판성 사원이 따라나섰다.
송 대리는 공항운송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키가 작고 통통하며 넉살이 좋아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선다. 학생들이 처음에는 그를 호감으로 받아들이다 점점 꺼리기 시작했다. 평소 말과 행동이 과장되고 신중하지 못한 면이 있어서다. 옷차림 역시 가볍고 경박하여 유학생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최판성 사원은 화물 부문 계약 담당이다. 사원이지만 해외 계약 등을 도맡아 하는 영어 실력파다. 키가 크고 각진 얼굴에 큰 눈과 짙은 눈썹을 가진 미남이며 덩치가 좋다. 태도가 공손하고 신중하여 여자 유학생들에게 인기가 짱이다. 술만 마시면 볼썽사나운 주사가 있다는 것이 유일한 흠이다.
이들 셋은 여행 일정을 의논했다. 첫 번째 방문지를 시안으로 잡았다. 구이린을 거쳐 베이징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임호는 어학 연수하는 동안 그들과 식사하거나 술을 마실 때 또 때때로 가라오케에 가서도 계산은 항상 자신이 했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임호가 연장자이고 또 상사이니 그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함께 여행하는 경우는 그렇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임호는 여행에서 사용할 경비는 회비를 걷어 충당할 것을 제안했다.
“자, 여행 중에 공동으로 쓰는 비용은 갹출하는 게 어때?”
“좋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얼마씩 걷는 게 좋을까?”
“우선 2,000위안씩 걷고 다 쓰면 다시 걷는 걸로 하시죠.”
송중석 대리는 처음 걷을 때 좀 많이 걷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지 마시고 1,000위안씩 걷는 게 좋겠습니다.”
막내인 최판성 사원이 송 대리의 제안을 반박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야 관리하기 좋고 불필요하게 쓰이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돈을 많이 들고 있으면 그만큼 더 쓰게 되어 있습니다.”
최판성의 말이 일리가 있다. 사원이지만 신중한 면이 보였다. 주사 부릴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래. 그럼 1,000위안씩 걷고, 돈 관리는 최판성 씨가 하도록 해.”
임호는 지갑에서 1,000위안을 꺼내 최판성에게 주려는 찰나 송 대리가 나섰다.
“과장님, 제가 관리하겠습니다. 제게 주십시오.”
송중석 대리가 자기가 관리하겠다고 나섰다.
“왜? 막내가 하도록 놔두지. 구태여 송 대리가 할 필요 있나?”
“제가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중요한 일이라고?”
“그래도, 제가 하겠습니다.”
송 대리는 자기가 하겠다는 의견을 강하게 밝혔다.
“그럼, 그렇게 해.”
임호는 1,000위안을 송 대리에게 주었다. 최판성도 1,000위안을 꺼내 송 대리에게 건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안 진시황릉에 가다
다음 날 세 사람은 시안으로 출발했다.
시안은 중국 서부 대개발의 중심 도시다. 중국 문명의 뿌리이며 실크로드의 시발점이다. 진시황릉과 병마용 등 역사 유적이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을 유혹한다.
시안 셴양국제공항(西安咸阳国际机场)에 도착했다. 공항 이름은 시안의 북쪽에 위치한 진나라 수도 셴양(咸阳)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세 사람은 공항 밖에 늘어서 있는 추주처(出租车, 택시)에 올랐다. 녹색 바탕에 노란색 라인이 길게 들어가 있는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낡은 택시다. 차를 타니 좁은 차 안에는 퀴퀴한 냄새가 가득하다. 중국은 겨울로 접어들면 저녁에는 날씨가 매우 춥다. 집안에 들어가면 바깥보다 더 춥다. 난방장치가 잘되어 있질 않아 기온이 떨어지면 밖에서 입고 있던 옷을 집에서도 그대로 입고 지낸다. 침대에서 두꺼운 옷을 입고 자면 밤중에 흘린 땀이 옷으로 스며든다. 아침에 일어나 일하러 가는데 날씨가 추워 옷을 갈아입기도 귀찮다. 밤새 땀 흘리고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운전석에 앉아 있으니 차 안에 냄새가 진동한다.
창문을 열려고 부서진 손잡이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돌리니 창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내려간다. 찬바람이 밀려들어 잠깐 시원하다 싶더니 이번에는 다른 냄새가 밀려 들어온다. 센양공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면 도로 옆으로 넓고 넓은 농지가 주욱 펼쳐져 있다. 달리는 차창에 바람 따라 들어오는 냄새가 정겹지만 역겹다. 문을 닫아야 할지, 문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다.
약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시안교통대학 장안캠퍼스에 도착했다. 그들은 대학 내부에 있는 초대소에 여정을 풀었다. 실내에 TV와 화장실이 있고 커피포트와 중국차가 제공되는 제법 크고 깨끗한 방이었다. 가방 속의 버버리 체크무늬 와이셔츠를 꺼내 옷장 안에 걸어 두었다. 잠깐 쉬었다가 로비로 내려가 일행들과 함께 한가롭게 대학 캠퍼스를 걸어서 교문 밖으로 나왔다.
셋은 인근 저잣거리를 찾아 일부러 손님이 밀려있는 국수집으로 갔다.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온 사람이 많았다. 손님과 주인 간에 주고받는 높낮이가 큰 억양의 대화 소리, 거의 던지다시피 던져 놓는 면 사발이 테이블 위에 착지하는 둔탁한 소리, 긴 나무젓가락으로 후후거리며 휘저은 면발이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후루룩 소리, 하얀 모자를 눌러쓴 주방장이 버무린 밀가루를 도마 위에 내리치는 소리, 하얀 면발을 끓는 물 속에 집어넣을 때 거품 튀는 소리를 들으며 차례를 기다린다. 서 있는 동안 배는 벌써 꼬르륵 소리를 낸다.
잠시 후 임호는 복무원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아 시안의 국수인 량피(凉皮)를 주문하고 거기에 샹차이(고수)를 듬뿍 넣었다. 고추기름의 매콤한 맛과 샹차이의 향이 어우러져 황홀한 미각이 온몸을 감쌌다. 송 대리와 최판성은 곡기가 부족해서인지 공기밥을 추가했다.
셋은 저녁 무렵에 시안교통대학 인근에 학생들이 많이 찾는 얼춘(二村) 야시장을 찾았다. 신장에서 온 젊은 부부가 가판대에서 양꼬치를 분주하게 굽고 있다. 양꼬치 굽는 구수한 냄새가 연기를 타고 피어오르며 학생과 관광객의 발길을 유혹한다. 여학생 둘이 손에 양꼬치를 들고 깔깔거리며 재잘거리고 있다. 최판성이 양꼬치 맛에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아니면 예쁜 여학생 둘에게 마음이 움직였는지 가판대로 향했다. 양꼬치에 뿌린 향신료 쯔란(孜然)과 라쟈오펀(辣椒粉, 고춧가루)은 양고기의 고소한 지방과 섞여 느끼한 맛은 누르고 입 안에 독특한 맛과 향을 남긴다.
“카아, 양꼬치는 이 맛이죠. 어떠세요? 과장님.”
최판성이 양꼬치의 고기 한 조각을 입으로 뜯어 물고 평소와 다른 과도한 표현을 연출한다.
“응, 맛있어. 왠지 고향의 맛이 느껴져.”
“하하하, 그건 과장님이 신장 사람 닮아서 그런 거죠.”
옆에서 재잘거리던 중국 여학생들이 최판성을 흘끔흘끔 쳐다본다. 그중 하나가 서투른 한국말로 판성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 사람이세요?”
“아, 네, 한국말 하세요?”
양귀비를 닮은 여학생이 말을 걸어오니 20대 후반의 혈기 왕성한 최판성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네, 조금요. 나 목욕탕집 남자들 좋아해요.”
이순재가 출연한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을 말하는 거였다. 한국에서 절찬리에 종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작품이다. 중국에는 아직 공식 수입되지 않았고 해적판 비디오와 디스크가 유통되었다. 시내 전문 매장에 가면 미국, 일본, 홍콩,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의 해적판 비디오와 디스크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와우, 그것을 어디서 봤어요.”
최판성이 중국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대화했다.
“비디오요. 그 드라마 때문에 한국어 공부 시작했어요.”
그들은 한국 드라마 하나 때문에 금방 친해졌다.
최판성이 로컬 라이브 밴드가 있는 바를 찾았고 여학생이 한 곳을 안내해주기로 했다. 양꼬치는 그 맛과 양을 보면 가성비가 높은 음식이다. 두 여학생이 먹은 것까지 계산하고 자리를 옮겼다. 가면서 최판성은 여학생들과 벌써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시안교통대학 인근의 셴닝루(咸宁路) 골목길에 있는 2층 건물의 지하 1층 계단으로 내려갔다. 좁은 입구에 걸린 형광 간판에 페이샹(飞翔, 비상)이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테이블이 10개 정도 놓여있고 젊은 남녀로 가득 차 있었다. 벽에는 중국 유명 가수의 공연 포스터들이 더덕더덕 걸려있었다. 실내는 중국산 특유의 담배 냄새가 연기와 함께 자욱했다. 임호 일행 다섯 명은 무대 바로 앞쪽에 있는 빈자리에 앉아 맥주와 포도주를 시켰다.
좁은 스테이지에는 드럼과 올겐, 앰프가 있고 중앙엔 스탠드 마이크와 의자가 놓여있다. 평소엔 통기타 가수가 노래를 하지만 주말엔 교통대학 항공 공학계열 학생들로 구성한 밴드 공연이 있다고 한다.
“아, 그래서 가게 이름이 페이샹(飞翔, 비상)이구나.”
“맞아요.”
여학생들이 맞장구쳤다.
시안은 중국 내 항공산업 1급 전략도시 중 하나다. 교통대학의 항공우주 관련 공학계열은 우수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들은 졸업 후 항공연구소나 중국민항항공총국(CAAC) 산하 국영 기업으로 진출한다.
임호 일행은 외지에서 현지 여학생들을 만나 우의를 교류하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최판성은 여학생들에게 명함을 건네고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임호 일행은 자정이 되기 전 가게를 나와 천천히 걸어서 교통대학 초대소로 돌아왔다. 캠퍼스 내 호숫가 옆 벤치에는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남녀가 밤 깊은 줄을 모른다.
다음날 일찍 진시황릉을 찾았다.
진시황릉 입구로 가는 길에는 현지 상인들의 텐트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텐트 안쪽에서 새까만 얼굴만 살짝 내밀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별 말없이 표정과 동작으로만 의사를 전달하느라 애쓴다. 가만히 해석해 보니 진시황릉에서 방금 도굴한 골동품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모양이다. 한 손에 감춘 때 낀 골동품 조각을 살짝 보여 주고는 얼른 안으로 숨긴다. “너만 봐!”라는 대사를 동작으로 속삭이는 것 같았다.
임호는 진시황릉 앞에 섰다. 한 황제의 초국가적 권력이 지배한 거대한 제국의 구구한 역사 속에 그가 남긴 업적의 공과 과가 송두리째 이 땅속에 묻혀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전국시대 7국(진, 초, 연, 한, 조, 위, 제)을 통일하고 중국 최초로 중앙집권 국가 체제를 완성했다. 나라마다 다른 글자 모양을 하나의 통일 문자로 규격화하였고,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여 국가 표준화 프로젝트를 강행했다. 이렇듯 행정, 세금, 상거래의 관리 표준을 통일함으로써 실질적인 통일 국가 체계를 구축한 것은 그의 공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지식인 세력인 유가의 비판적 사상을 통제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책을 불태우고 유생을 처형(분서갱유)한 것은 그의 과다.
황제의 권위와 통일 제국의 안보를 위한 아방궁과 만리장성의 축조는 민중의 불만을 야기했다. 그것은 진시황 사후에 체제가 붕괴하는 사유로 작용했다. 통일의 과업을 달성한 것은 평가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통일 국가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합리적인 국가 통치 및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적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항공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든 임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언젠가는 뉴스타항공이 시안에 취항 것을 상상하니 가슴이 벅찼다.
일행은 진시황릉에서 인근 병마용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흙으로 굳어버린 수많은 병사가 마치 진시황의 진군 명령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듯 숨을 죽이고 전방을 주시하고 서 있다. 그들은 서로 얼굴도 체형도 다르다. 서로 다른 고향을 떠나와 이곳에서 출정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 가슴속엔 얼른 전쟁을 끝내고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일 것이다. 병사의 표정에서 임호는 그들의 두려움과 희망, 걱정과 기대,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것을 보았다.
임호는 차로 20분 정도를 달려 화청지(华清池)에 도착했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온천을 즐겼다는 당대의 황실 온천 휴양지를 둘러보았다. 천하절색 양귀비가 겨울에 몸이 약해지자 현종은 화청지의 온천수를 이용하여 양귀비의 전용 온천탕을 만들었다. 그녀가 목욕할 때면 황실 악대가 곡을 연주했으니 양귀비에 대한 현종의 정성이 짐작이 갔다. 양귀비의 초상화 하나를 사서 숙소인 교통대학 초대소로 돌아왔다.
하루 동안 강행군을 했으니 다리도 아프고 피곤하다. 화청지에서 사온 양귀비 초상화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1280년 전 화청지에서 온천을 즐기던 그녀가 지금 임호 방에 있다. 내일은 일찍 구이린으로 간다.
<<본문을 구성하는 내용과 인물은 허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