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와에 출장하다
캐나다 오타와에 출장하다
임호는 1996년 3월 구재선 실장과 함께 캐나다 오타와에 출장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회원국 정부 공식 대표단의 일원으로 정부 컨퍼런스 센터(Government Conference Centre)에서 열린 ICAO 항공정책회의에 참석했다. 항공사가 반드시 가야 하는 성격의 회의는 아니다. 회원국 공식 대표단의 구색을 맞추려면 항공사의 동행이 필요했다. 회의 참여 여부는 항공사의 재량에 맡겼지만 뉴스타항공은 참여하기로 했다. 내년에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유럽에 실질적 거점을 확보하려면 건교부 눈에 들어야 했다.
회기의 오전과 오후 내내 세션별로 항공 안전표준, 슬롯배분, 소음규정, 환경, 규제, 시장자유화 등 주제 토론이 열렸다. 졸린 눈으로 회의를 지켜보는데 구재선 실장이 임호의 팔을 툭툭쳤다.
“임 과장, 나가자. 김현철 과장 밖에 있지?”
마지막 세션이 끝나려면 30분 정도 남았다.
“예, 김 과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현철 과장은 그룹 공채 1기로 임호와 입사 동기다. S대 국제정치학과를 나온 수재다. 국제업무실로 배정받아 근무하다 퇴직하고 언론사로 이직을 준비했다. 그는 뜻대로 되지 않자 2년 후 국제업무실로 복직했으며 회사의 패스트 트래커(Fast-tracker)로 선정되어 몬트리올의 맥길 대학에서 항공 MBA 과정에 수학 중이다.
“임 과장 먼저 나가 있어. 심의관께 인사만 하고 올께.”
임호는 밖으로 나와 중고 토요타 옆에 서 있는 김현철 과장에게 갔다. 그는 임호가 오타와에 도착할 때부터 공항에 마중나와 일정을 함께 하고 있다.
“몬트리올까지는 얼마나 걸리나?”
“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하루 종일 피곤하실 텐데 좀 주무시죠.”
“그래. 우리 때문에 운전하느라 수고하네.”
“아닙니다. 오랜만에 뵈니 좋습니다.”
김 과장이 언론계로 이직을 생각하고 회사를 그만둔 것도 구재선 실장 영향이 컸다. 김 과장이 2년 후 국제업무실로 복귀 의사를 밝혔을 때 그의 복귀를 반대한 것도 구재선 실장이었다. 김 과장은 구 실장과 껄끄러운 관계를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싶었다.
“실장님, 저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카지노로 모시겠습니다.”
구 실장은 카지노를 좋아한다. 국내 굴지의 현성건설을 다니다 그만두고 미국에서 10여 년 살다가 뉴스타항공 창업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출장 목적지에 카지노가 있는 곳이면 언제든 환영이다.
구재선 실장은 독단적으로 결정하기보다 토론하기를 좋아한다. 국제업무 관련 현안이 생기면 직원들을 주변에 옹기종기 모이게 한다. 회의실로 이동하는 일은 없다. 의문이 해소될 때까지 그 자리에서 토론한다. 대리가 제시한 의견이더라도 논리가 타당하면 자기의 생각을 접고 이를 수용한다. 때론 한두 시간 이상 진행되는 토론은 형식이 없고 자유롭다. 모두의 관심을 한곳에 집중시켜 사고의 수준을 급격히 향상한다. 혹시 모를 왜곡된 판단의 가능성을 현저히 낮춘다. 이러한 스타일의 토론은 모두에게 유익하며 팀웍을 높인다. 그는 형식적이고 시간 죽이기식의 회의는 생각조차 없다.
구재선 실장은 오후 5시 50분만 되면 퇴근하라고 직원들을 들볶는다. 당시 퇴근 문화는 임원과 부장이 퇴근해야 퇴근하는 분위기였다. 퇴근 시간인 오후 6시를 한두 시간 넘기는 것은 다반사다. 모든 부서가 그러했다. 삼삼오오 나가서 부서비용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돌아와 자리에 앉아 있다. 돌아와서 딱히 할 일도 없이 윗사람들 퇴근하길 기다린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단지 늦게 퇴근했다는 사실만으로 회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 생각한다.
구재선 실장은 비효율적, 비생산적 퇴근 문화가 싫다. 임호도 이점은 전적으로 같은 생각이다. 구 실장은 퇴근 시간이 되면 재촉한다.
"임 과장, 왜 안가? 빨리 퇴근 해."
"아직 상무님이 퇴근 전입니다."
"상무님은 약속 있어. 얼른 먼저 퇴근 해."
임원실에 한도선 상무가 퇴근 전이어도 구 실장은 6시 칼퇴근이다. 한도선 상무는 위층 사장이 퇴근했는지가 자신의 퇴근 기준이다. 대기업 임원이니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구재선 실장은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세인트로렌스(St. Lawrence) 강 수변에 위치한 카지노 드 몬트리올(Casino de Montreal)에 가기로 일정을 잡았다. 김 과장은 구 실장의 이동을 지원하면서 관계를 개선할 요량이었다. 김 과장 와이프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
“와이프 불편하게 하지 말고, 우리 가다가 맥도날드 빅맥으로 때우자. 길가에 맥도날드 많잖아?”
“와이프가 저녁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집으로 가시죠.”
“그래? 괜한 고생시키는 거 아닌가?”
김 과장은 맥길대학 인근 코트 데 내쥬(Côte-des-Neiges)의 아파트로 일행을 안내했다. 김 과장의 아내가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식탁에는 기본 찬이 세팅되어 있다. 일행이 앉자 김 과장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치찌개와 군침이 도는 갈비찜을 아내로부터 건네받아 식탁 중앙에 놓는다. 김 과장 아내가 하얀 쌀밥과 콩나물국을 쟁반에 받쳐 들고 와서 구재선 실장부터 차례차례 놓아준다.
“실장님,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아이고, 진수성찬입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함께 드시죠.”
오랜만에 한국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니 며칠 동안 심술을 부리던 오장육부가 정상 가동을 시작했다.
“형, 작년 11월 취항한 서울-브뤼셀-비엔나 노선은 수요가 어때요?”
김 과장은 사석에서 임호를 형으로 부른다. 서울-브뤼셀-비엔나 노선은 뉴스타항공이 유럽에 취항한 첫 번째 노선이다. 유럽 담당이었던 김 과장은 작년 8월 캐나다로 오기 전 서울-브뤼셀-비엔나 노선에 대한 수요 분석과 취항을 주도했다. 본인이 제안하여 만든 노선이니 관심이 많을 것이다.
뉴스타항공은 건교부로부터 브뤼셀과 비엔나 운수권을 배분받았다. 문제는 브뤼셀과 비엔나 둘 다 한국발 유럽 직항편을 띄울만한 허브 도시로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단독 노선으로 운항할 만한 수요가 충분하지 않았다. 유럽 도시를 운항 네트워크에 포함한다는 글로벌 항공사의 전략적 접근이 아니라면 적자를 예상하면서 취항을 서두를 노선은 아니었다.
김 과장은 브뤼셀과 비엔나를 연결하여 취항할 것을 제안했고, 회사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두 도시를 연결하여 운항했다. 브뤼셀-비엔나 구간에 운항하는 비유럽 국가 항공사에 대해서는 유럽 내 두 도시 간 판매를 금지했다. 유럽을 단일항공시장으로 규정하고 유럽 내 두 도시 간 판매를 카보타지(Cabotage)*로 금지했다. 이러한 규정 때문에 두 도시를 연결한 네트워크의 시너지 효과가 낮았지만 각각의 도시를 단독 운항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었다.
*외국항공사가 상대국 내 두 도시 간 여객 및 화물을 운송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항공사 보호를 위해 이를 금지한다.
“탑승률이 50%에서 60% 정도야. 수요가 살아날 기미가 없어. 브뤼셀과 비엔나 모두 유럽 내 환승 포인트의 매력과 기능을 갖추지 못해 수요 확장에 한계가 있다.”
임호가 현철의 질문에 대답했다.
“브뤼셀과 비엔나는 수익성보다는 유럽 시장 본격 진출에 앞서 시장진입 초기의 탐색적 전략으로 진입한 거야. 유럽 노선 톱 프라이어리티(Top priority)는 프랑크푸르트지. 내년 초에 한·독 항공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사장 관심이 대단해. 내년 회담은 프랑크푸르트 확보하는 것에 사활을 걸 거야. 브뤼셀, 비엔나 노선은 프랑크푸르트 노선 확보 후에 철수할 수도 있어.”
구 실장이 유럽 거점으로서 프랑크푸르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적항공사 경쟁력 강화 지침을 보면, 장거리 노선의 항공사 복수 취항 조건이 연간 21만 명입니다. 작년에 20만 명에 좀 못 미쳤어요. 올해는 21만 명을 가뿐하게 넘을 겁니다. 복수 취항 조건이 충족되니 내년 항공회담에서 운수권만 확보하면 저희가 프랑크푸르트 노선에 취항하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캐나다에서 공부하는 중에도 김 과장은 프랑크푸르트 노선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현철아, 태양항공 말이야. 서울-프랑크푸르트 노선 21만 명 넘지 못하게 하라고 영업에 지시한 모양이다. 우리 못 들어오게 하려고 발악을 한다, 발악을. 프랑크푸르트 환승 수요는 프랑크푸르트로 안 보내고 다른 지역으로 돌리고 있다. 21만 명 넘지 않게 하려고.”
“걔들 그러고도 남습니다. 한두 번 겪습니까?”
식사 중에 유럽 이야기에 몰입해 있었다. 구 실장이 식사를 다 끝내고 서두른다.
“프랑크푸르트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고, 다 먹었으면 나갈까?”
구 실장은 카지노 갈 생각에 바쁘다. 그는 김 과장 아내에게 저녁 식사 잘 먹었다고 인사를 건넸다.
“임 과장, 뭐해? 기내에서 산 샤넬 향수 사모님께 직접 드리자.”
임호는 기내에서 준비한 향수를 구재선 실장에게 건넸다. 구 실장은 김 과장 와이프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카지노에서 밤을 새우다
차가 세인트로렌스 강 수변을 따라 카지노 드 몬트리올로 접근했다. 일 노트르담(Île Notre-Dame) 섬 위의 거대한 카지노 건축물이 황금색, 붉은색, 보라색 조명들로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내며 수변 경관과 어우러졌다. 형형색색 빛들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건물이 수면에 그대로 반사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넓은 공간 곳곳에 슬롯머신이 늘어서 있다. 슬롯머신에는 나이 많은 현지인과 관광객 차림의 사람들이 기계 앞에 앉아서 오른쪽 레버를 연신 잡아당겼다 놓기를 반복한다.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슬롯머신 앞에서 깔깔거리며 게임을 즐긴다. 레버를 움직일 때마다 화면에는 체리, 세븐, 바 모양의 그림들이 드르륵 하고 돌아간다. 이쪽저쪽의 기계에서 상단의 동전 투입구로 돈 들어가는 소리와 하단의 동전 출구로 돈이 쏟아져 나오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구 실장은 슬롯머신 구역을 지나 블랙잭 테이블을 찾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임호도 그를 따라서 홀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는 블랙잭 테이블 몇 곳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각 테이블이 풍기는 기운에서 그날의 운수를 읽어내고 있었다. 그는 여러 블랙잭 테이블 중에서 동양 여성으로 보이는 딜러의 테이블에 앉았다. 거기에는 중국인 유학생 하나와 광동어를 하는 홍콩인, 그리고 캐나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서양인이 앉아 있었다.
중국인 유학생은 같은 또래로 보이는 미모의 여자가 곁에 있었다. 그는 가죽 재킷의 안쪽 주머니에서 100달러짜리 달러가 가득 든 돈 봉투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다. 구 실장은 그들 사이로 자리를 잡고 달러를 칩으로 교환했다. 짧은 스커트의 미녀 종업원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음료수를 건넨다. 김 실장은 10불짜리 칩 하나를 그녀의 쟁반 위에 올려놓으며 눈인사를 한다. 그녀는 윙크로 대신했다.
딜러가 카드를 나누기 시작한다.
구 실장은 양옆에 앉은 플레이어들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한다. 플레이어들의 조합이 잘 어우러지면 딜러의 승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임호는 블랙잭을 해본 적이 없어서 지켜보기만 했다.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임호는 환전소로 가서 100불을 주고 1불짜리 동전으로 바꿨다. 그는 동전 바구니를 들고 비어있는 슬롯머신 하나를 찾아 앉았다. 슬롯(Slot)이라고 하는 동전 투입구에 1달러 동전 세 개를 넣고, 오른쪽 레버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놓았다. 화면에 상중하 각각 3개의 그림 총 9개의 그림이 돌아가다가 드르륵 소리를 내며 멈추어 선다. 중앙에 세 개의 그림이 똑같거나 앞에 체리가 나오면 기계 하단의 동전 출구로 당첨 금액만큼 동전이 나온다.
1불, 2불 배팅도 가능하며 배팅 한도는 3불이다. 3불을 동전 투입구에 넣고 레버를 당기면 2초면 끝난다. 동전 투입 시간 3초를 포함하면 레버를 한번 당기는데 5초 정도가 걸린다. 5초마다 3불이 들어가니 한 번도 그림을 못 맞추면 100불은 2분 8초면 사라진다. 잠깐의 재미와 잭팟을 잡는다는 환상이 주는 즐거움에 대한 출혈은 크다. 임호는 비교적 그림이 잘 맞아 100불이 다 없어지는데 한 시간이 좀 넘게 걸렸다. 100불로 즐겁게 시간을 보낸 셈이다.
구재선 실장 옆으로 돌아와 보니 그 앞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칩이 놓여있다. 그의 표정도 앞에 쌓인 칩만큼 환하다. 자정이 좀 넘어서 구 실장이 임호에게 100불 칩을 주었다. 자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 자지도 못하고 옆에 있으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그는 임호에게 룰렛이 재미있다고 가서 해보라고 권했다.
임호는 룰렛 테이블을 찾아갔다.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원형으로 된 룰렛 휠(Roulette wheel) 가장자리는 딜러의 손에서 튕겨 나간 작은 구슬이 돌아가는 레일이 있다. 볼록한 휠 중앙 옆으로는 바깥쪽 레일에서 구슬이 돌다가 안쪽으로 굴러 내려와 들어갈 수 있도록 사각 홈이 있다. 그 옆엔 숫자가 쓰여있다. 0과 1부터 36까지의 숫자가 비규칙적으로 쓰여있는 원형판은 구슬과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플레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임호는 가장 간단한 한 가지 방법을 택했다. 배팅 칩을 놓는 레이아웃(Layout)의 숫자 다섯 개를 골라 그 숫자 위에 각각 10불 칩을 하나씩 놓았다. 룰렛 휠이 돌아가고 딜러가 휠의 반대 방향으로 작은 구슬을 손가락으로 튕겨 회전시킨다. 휠의 회전속도가 느려지자 구슬이 가장자리에서 중앙으로 굴러 내려와 숫자 16 밑의 사각 홈으로 빨리듯 들어간다. 임호가 배팅한 다섯 개의 숫자 중 16이 당첨되었다. 16에 배팅한 몇몇 사람들이 환호성을 외친다. 딜러는 숫자 16에 놓아둔 칩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당첨 숫자 위에 마커(Marker)를 놓아둔다. 당첨자에게는 배팅액의 36배를 보상하고 당첨 숫자 위에 놓인 칩은 다음 플레이까지 그대로 놓아둔다. 임호는 당첨금으로 배팅액 10불의 36배인 360불을 받았다.
딜러가 룰렛 휠을 다시 돌렸다. 이게 웬 떡이란 말인가? 또다시 구슬이 16으로 빨려 들어갔다. 임호는 또 360불을 받았다. 임호는 총 720불을 챙겼다. 그는 더 이상의 운을 기대하지 않고 슬롯머신으로 갔다. 충분한 자금이 생겼으니 구 실장 옆에서 기다리지 않고 슬롯머신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구 실장의 블랙잭 게임은 새벽 3시가 지나서야 끝났다. 초반 끗발은 간데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져온 돈도 다 잃고 신용카드 대출까지 끌어다 쓰고 끝났다. 둘은 한 시간 정도를 의자에 앉아 쉬면서 김현철 과장이 픽업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오타와로 가는 도중 임호는 뒤에 앉아 연신 졸았다.
“임 과장, 피곤해? 젊은 사람이 잠 몇 시간 못 잤다고 그렇게 비글비글하면 어떡해? 장가도 안 간 사람이 체력이 그래서 되겠냐?”
“실장님, 제 체력은 문제가 없고 실장님 체력이 좋은 겁니다.”
“그래? 하하하. 내가 체력이 보기보단 좋지. 오늘 세미나 끝나면 한 번 더 오자.”
“예? 또요?”
구 실장은 세미나가 진행되는 중에 머릿속으로는 계속 돈 끌어올 데를 생각했다. 그는 오타와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뉴스타항공 뉴욕지점에 전화를 걸어 지점장인 강정선 부장을 찾았다. 임호는 그때 처음으로 강정선 지점장의 존재를 알았다. 2년 후 그가 구재선 실장의 직속 상사인 국제업무실 담당 임원으로 올 줄 누가 알았으랴?
“지점장님, 안녕하십니까? 국제업무실 구재선 실장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십니까?”
구재선 실장은 로얄 패밀리다. 강정선 지점장으로서는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인물이다.
“급한 부탁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강정선 지점장은 구 실장의 부탁을 그와 관계를 맺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제가 급히 쓸 돈이 필요합니다. 10,000불만 융통해주십시오. 귀국해서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통장 알려주시면 바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강정선 지점장과 구재선 실장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구 실장은 총알을 확보하고 세미나 일정만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잠깐 졸더니 지난 밤의 피로를 털어낸 듯 보였다. 임호는 세미나 일정 하루 내내 졸았다. 구 실장이 투덜대며 옆에서 한마디 한다.
“젊은 사람이---, 쯧쯧쯧.”
구재선 실장은 저녁에 다시 카지노 갈 생각으로 들떠있다. 임호는 옆에서 기다릴 생각을 하니 잠만 쏟아진다. 출장인데 이래도 되는 걸까? 다행히 성과와는 관계가 없는 출장이었다. 귀국 후 출장 결과를 보고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임호는 그날 저녁도 꼬박 날을 새웠다.
<<본문을 구성하는 내용과 인물은 허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