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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8화] 대만으로 리저브(Reserve) 하다

사장의 마음이 전해지다

by 충칭인연

국제업무실 임원으로 오다


뉴욕지점장 강정선 부장이 상무로 승진해서 국제업무실 담당 임원으로 왔다. 그는 꼼꼼한 성격이다. 로얄 패밀리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그룹 오너와 가족들이 뉴욕을 방문하면 그들이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잘 모시는 것도 그의 업무 중 하나다.


그는 로얄 패밀리의 식사 장소를 잡으면 미리 가서 그들이 앉을 테이블 밑에 껌 조각 등 불순물이 붙어있는지 샅샅이 뒤진다. 또 그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닌다. 그 충성심이 순수하고 진실이라면 마음속에 묻어두고 있을 것을---. 그는 자신의 충성심을 떠벌리고 다닌다.


강정선 상무는 국제업무실 업무가 처음이다. 임호에게 의존하는 바가 크다. 무슨 일만 있으면 임호를 불러 문의하고 지시한다. 국제업무실의 업무 특성상 이삼일에 한번은 영문 레터나 팩스를 임원의 이름으로 발송한다. 그는 뉴욕지점장을 했던 탓에 나름대로 영어에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 처음에는 몇몇 단어를 그가 즐겨 쓰던 단어로 고쳐 쓰며 시비를 걸었다. 사소한 단어 하나를 놓고 물러서지를 않는다. 임호는 그때마다 그 단어의 용처를 설명하며 그의 이해를 도왔다. 똑같은 일이 대여섯 번 반복된 이후부터는 임호가 쓴 영문에 그는 그대로 서명하여 발송하였다. 임호의 레터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임호는 회사의 미국 로펌과 영문 레터를 주고받으며 그들의 문장에 익숙해졌다. 그는 미국 담당으로 회사가 위촉한 미국 로펌의 접촉 창구였다. 유태계 변호사들이 쓰는 영문 레터는 정선된 단어와 숙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5년 동안 영문 팩스를 주고받으며 자신도 모르게 유태계 변호사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습득하였다.


임호는 영어 때문에 비참한 하루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공항에서 국제업무실로 오자마자 뒤에 앉은 김상도 대리가 임호에게 영문 레터를 쓰게 했다. 임호는 그때까지 영어 레터라고는 써본 적이 없다. 영어 레터를 써서 그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칼로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뭐야! 씨---.”


그는 임호가 쓴 영문 레터를 보고 어이없었는지 볼펜으로 박박 긁으며 쌍소리를 했다. 임호는 치욕과 모멸감을 느꼈다. 그는 퇴근 후에 한번, 출근 전에 한번 하루에 두 번씩 영어 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했다. 피골이 상접했다. 학창 시절에 영어 공부하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영어 시험에 팝송 가사를 썼다가 불려가 혼난 적도 있다. 그놈의 영어 때문에 김상도 대리에게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강정선 상무의 인정을 받았다.


양이수 부사장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국제항공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선다. 부사장은 영어 연설문을 국제업무실에서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제목은 “세계 항공산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주제였다. 임호는 그것을 작성하기 위해 십수 권 분량의 관련 자료를 수집해 연설문을 작성하고 영작하였다. 뒤에서 볼펜 긁는 소리에 상처받던 그 별 볼 일 없었던 사원은 그렇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직원을 배려하는 사장의 마음이 전해지다


강정선 상무가 방으로 임호를 불렀다.

“임 과장이 공채 1기인가?”

“예, 그룹 공채 1기입니다.”

“하얼빈에 곧 취항한다. 지점장을 보내야 하는데 임 과장이 갈래?”


하얼빈은 베이징에서 어학 연수할 때 가본 적이 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시골 같은 도시의 모습.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얼빈을 떠나며 다시는 올 일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거기 지점장으로 가라고 한다. 하얼빈은 싫지만 국제업무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국제업무실에서 6년을 근무했으니 어디라도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예, 상무님, 보내주시면 가겠습니다.”

“지금 사장님께 하얼빈지점장 인선 보고하러 올라간다. 어디에다 이야기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예, 알겠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강 상무가 회의를 마치고 내려왔다.


“임 과장, 잠깐 들어와라.”

“예.”

임호는 강 상무를 따라 임원실로 들어갔다.

“임 과장이 1기라고 하지 않았나? 강두철 부장이 민만기 과장이 1기라는데?”

영업부 소속의 민만기 과장은 뉴스타항공 공채 1기로 입사했다. 임호보다 4개월이 빨랐다.

“민만기 과장은 뉴스타항공 공채 1기이고, 저는 그룹 공채 1기입니다.”


"들어 봐."

강정선 상무는 조금 전 사장 대면 보고 상황을 설명한다:


“사장님, 하얼빈지점장 후보로 국제업무실 임호 과장을 천거합니다. 임 과장이 공항운송 서비스 경험이 있고 또 국제업무 경험도 있습니다. 하얼빈지점장으로 적격입니다. 그리고 그룹 공채 1기입니다.”


주기성 사장은 임원, 부서장 회의에서 틈만 나면 그룹 공채 1기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원, 부서장은 모두 태양항공에서 건너온 자들이다. 임호는 이들을 태양의 핏줄, 태양의 후예라 칭한다. 주기성 사장은 이들의 하는 짓이 맘에 들지 않을 때마다 그룹 공채를 키워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태양항공 후예들의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X팔, 그룹 공채 1기를 키우려면 키울 것이지. 우리한테 지랄이야.”

그들은 뒤돌아서서 주기성 사장을 욕한다. 그룹 공채 1기에 대한 거부감은 갈수록 커졌다. 의도적인 견제가 시작되었다.


강정선 상무가 임호를 하얼빈지점장 1순위로 보고하자 옆에 있던 영업부 강두철 부장이 급히 끼어든다.

“민만기 과장이 공채 1기입니다. 임호 과장보다 입사가 4개월 빠릅니다.

민만기 과장은 강두철 부장의 영업부 직속 부하다. 강두철 부장은 임호가 그룹 공채 1기라는 사실 자체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


주 사장은 강두철 부장이 강정선 상무의 말을 자르고 끼어드는 것에 다소 당황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주 사장이 지시한다.

“그럼, 1기인 민 과장을 보내도록 해.”

강정선 상무가 임호를 천거했지만 강두철 부장의 개입으로 민만기 과장이 낙점되었다.


임호에게 상황을 설명한 강정선 상무가 임호를 격려한다.

“임 과장, 조금만 기다려 봐. 지점장 인선이 또 있을 거야.”

“예, 상무님, 잘 알겠습니다.”

임호는 임원실을 나왔다.


임호는 태양의 핏줄인 강두철 부장이 그룹 공채 1기인 자신에게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안다. 사장 주재 회의에서 상무가 1순위로 추천한 사람을 감히 부장이 나서서 태클을 건다? 쉽지않은 용기다. 그는 자기의 직속 부하인 민만기 과장을 밀었다. 그룹 공채 1기를 밀어내고 뉴스타항공 공채 1기를 라인으로 연결했다.


임호는 사무실에서 뉴욕 로펌이 보낸 팩스를 검토하고 있었다. 기획·국제업무·법무 담당 송기석 전무가 임호를 호출했다.

“전무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앉아.”


“오늘 하얼빈지점장 인선 결과 들었나?”

“예, 강정선 상무한테 들었습니다.”

“영업부에서 1순위로 민만기 과장을 올리고, 2순위로 임 과장을 올렸는데 강정선 상무가 임 과장을 1순위로 보고했다. 임 과장의 운송서비스 경험과 국제업무 경력이 지점장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한 거야."

"예---."

"사장님이 또 평소 그룹 공채 1기를 운운하시니까 임 과장을 천거했다. 그런데 강두철 부장 그놈이 눈치없이 민만기가 1기라고 끼어든 거야. 상무가 하는 말에 부장이 나서니까 사장님이 당황했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뭐라고 하신 줄 아나?”

“뭐라고 하셨습니까?”

“민 과장은 하얼빈지점장으로 보내고, 임 과장은 대만으로 리저브(Reserve)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 예.”

“그 말씀을 듣고 사장님이 임 과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이야기 해주려고 오라고 했다.”


“전무님, 감사합니다. 자세하게 알려주셔서.”

임호는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송 전무가 고마웠다.

“그래, 하얼빈 못 간 거 실망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호는 전무실을 나오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사장님이 지난 프랑크푸르트 노선 배분 결과 보고 때 내게 야단친 것을 마음에 두고 계시는구나. 틀림없어.”

직원을 배려하는 사장의 마음이 전해졌다.


<<본문을 구성하는 내용과 인물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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