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항공자유화협정을 체결하다
항공자유화협정을 체결하다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에 한국은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해 미국이 지원하는 IMF 차관이 필요했다. 미국은 이 기회를 이용해 항공자유화협정(Open Skies Agreements) 카드를 내밀었다. 미국 교통부(DOT,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고위직이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항공당국은 물론 태양항공과 뉴스타항공을 방문하여 항공자유화협정 체결을 종용하며 관련 절차를 진행해 나갔다.
1997년 한·미 항공자유화협정 체결을 위한 예비회담을 앞두고 항공자유화협정에 대한 사전 이해를 구하고자 미국 DOT의 부차관보(Deputy Assistant Secretary) 인사가 뉴스타항공을 방문했다. 뉴스타항공에서는 기획·국제업무·법무 담당 임원인 송기석 전무가 접견했다. 송기석 전무는 영업부의 강두철 부장과 국제업무실의 임호를 회의에 참석토록 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미 DOT 부차관보 머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는 팀을 이루어 몰려다니는 한국, 일본 사람들과는 달리 혼자서 회사를 방문했다.
“환영합니다. 회사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송 전무는 강두철 부장과 임호를 그에게 간단히 소개했다. 머피는 명함을 건넨 후 자기의 방문 목적을 차분하게 설명해나갔다.
“내년 초에 한·미 항공회담이 열립니다. 한·미 항공자유화협정 체결이 목표입니다. 사전 조율을 위해 다음 달 양국 항공당국 간 예비회담을 개최합니다. 나는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항공자유화협정을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해 아시아지역을 투어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와는 올해 1월 아시아지역 최초로 항공자유화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건교부는 물론 태양항공과 뉴스타항공을 만나고 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일본입니다. 거기서도 국토교통성(Ministry of Land, Infrastructure, Transport and Tourism, MLIT)은 물론 JAL과 ANA를 방문합니다. 항공자유화협정 체결을 위해서는 항공사의 이해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는 앞에 놓인 녹차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말을 이어간다.
“문제는 한국의 항공당국과 양 항공사가 여전히 거부감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항공자유화에 의한 시장개방을 기회로 보지 않고 심각한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호는 회의에 앞서 송기석 전무에게 항공자유화정책의 배경과 핵심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는 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다. 송 전무는 머피에게 한국 항공사가 우려하는 부분을 설명한다.
“우리는 협정 부속서에 존치한 기재 변경(Change of Gauge) 조항에 거부감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일명 스타버스트(Star Burst)*라고 불리는 노선 운영 시스템입니다. 미국의 AA, UA, DL 같은 메가 캐리어(Megacarrier)들이 대형기로 태평양을 횡단하여 서울에 취항하고, 서울에는 소형기를 주둔시켜 놓고 직접 운항하거나 아니면 제3국 항공사와 코드셰어(Codeshare)를 통해 아시아지역의 주요 도시를 연결 운항합니다. 한국 항공사들은 미국 대형 항공사의 무차별적 공급력에 의한 시장잠식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
*별빛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처럼, 허브(Hub)를 중심으로 노선망이 각국의 주요 도시로 퍼져나가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 우려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항공자유화협정에 대한 최초의 이해보다 한 단계 진전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엔 항공시장 개방 그 자체에 부정적이었죠. 지금 추진하고 있는 항공자유화협정(Open Skies Agreement) 체제는 양국이 합의하던 운항 관련 사항을 항공사의 재량으로 결정하게 합니다. 항공사가 시장수요 전망에 맞게 공급력을 투입한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동시에 항공사 간 시장점유율 쟁탈을 위한 과당경쟁의 리스크가 공존합니다. 항공자유화협정을 최초 협의할 때는 이러한 시장개방 자체에 거부 반응이 거셌지만 지금 이 단계는 지났습니다.”
머피가 말을 잠시 멈추자 송기석 전무가 호응한다.
“예, 글로벌 항공시장의 자유화 조류 확산에 점점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항공자유화는 미국이 자국의 항공사가 최적의 자원을 활용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물론 협정 상대국 항공사도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송기석 전무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항공 운송 시장의 자유화 바람이 대세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머피는 송기석 전무의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쟁점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 말씀하신 기재 변경(Change of Gauge) 조항은 한국 건교부도 태양항공도 우려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뉴스타항공도 그렇습니다. 마치 한국항공사의 6자유 운수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한국 측의 지나친 기우입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태평양 노선과 아시아 노선을 연결하는 것은 미국 항공사는 물론 아시아 항공사도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 항공사만의 탁월한 경쟁력입니다.”
영업부 강두철 부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송석기 전무는 머피가 설명할 때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을 보였다.
*제3국-자국-상대국 간 항공수요를 운송하는 권리를 6자유 운수권이라 한다. 단, 전 구간을 단일 항공기로 운항하지 않고 자국에서 동일 항공사의 다른 편명의 항공기로 갈아탄다.
“항공자유화협정이 체결되면 양국 항공사 간 업무 협력이 확대될 것입니다. 특히, 한국 항공사의 미국 국내 노선진입이 수월해지면 미국 지방도시 및 아시아지역 수요 유치에 유리할 겁니다. 지금까지 항공자유화협정 체결로 한국 항공사가 누릴 수 있는 노선 네트워크 구성상 효익을 말씀드렸습니다. 뉴스타항공의 미국 시장확대에 유익할 것입니다. 협정 체결을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노력하겠습니다.”
송기석 전무는 머피의 말에 대답한 후 강두철 부장을 보며 말을 건넨다.
“강 부장, 듣고만 있지 말고 뭐라도 한마디 해봐.”
“아, 네.”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던 강 부장은 갑작스러운 송 전무의 말에 당황했다. 그는 머피를 바라보며 말을 더듬는다.
“나는 4년 전에 하와이지점장으로 갔다가 본사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머피가 호응했다.
“하와이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제가 지점장으로 간 이후로 한국 여행객이 무척 많이 늘었습니다.”
그는 회의의 주제인 항공자유화협정과는 관계없는 소재를 꺼내 회의의 맥을 끊었다. 집중력을 분산했다. 하와이지점장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관광객이 증가한 것을 과시했다. 송기석 전무가 어색한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강 부장의 말을 자르고 개입한다.
“오늘 회사를 방문해주신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한·미 항공자유화협정에 좋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임호는 머피를 로비까지 전송했다.
태양항공과 뉴스타항공은 미국 대형항공사들의 국내 시장잠식을 우려하여 항공자유화협정의 점진적, 단계적 체결을 권고했다. 정부는 외교적 마찰을 우려하여 미국과 항공자유화협정을 체결했다.
중국 시장개척의 역사에 동참하다
1998년 6월 항공자유화협정이 체결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강정선 상무가 임호를 자기 방으로 호출했다.
“임 과장, 장춘지점장으로 발령낼 테니 나갈 준비해.”
사장이 대만지점장으로 리저브 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을 송기석 전무로부터 전해 들었다. 갑자기 장춘은 또 무슨 말인가? 그때 강정선 상무는 임호에게 대만지점장 리저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는 내심 임호를 장춘 지점장으로 보내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랬으니 임호에게 구태여 대만지점장 리저브 이야기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나 보다. 강정선 상무가 임호를 서둘러 내보내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호는 의문이 들었다. 장춘지점장 자리는 대만지점장 자리에 견줄 바가 아니다. 임호는 대만에 대한 미련이 있지만 장춘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예, 장춘지점입니까?”
“그래. 서울-장춘 노선이 정기성 전세편으로 운항하다가 지난 3월 말에 정기편 포인트로 전환했다. 정기편으로 전환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영업을 해야 할 거야. 지금 지점장으로 나가 있는 이왕근 차장은 6월 말까지 임기야. 이왕근 차장 알지?”
“예, 국제업무실 출신입니다.”
“장춘에 들어가서 업무인수인계하고 동북지역 수요 개발에 진력하라고.”
“예, 알겠습니다.”
임호의 중국 시장개척의 역사가 시작하는 순간이다.
<<본문을 구성하는 내용과 인물은 허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