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는 뉴욕의 상징이다. 자유의 여신상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보다 뉴욕의 실생활과 가장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 뉴욕타임스이다. 무려 117번의 퓰리처 상 수상이라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는 뉴욕타임스는 뉴욕, 미국을 넘어 세계 주요 일간지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하였다. 뉴요커들은 언제든 뉴욕 거리 곳곳의 가판대에서, 지하철 속 신문을 읽는 시민에게서 쉽게 뉴욕타임스를 볼 수 있으며, 한국인들에게도 영어 공부를 위한 영자 신문으로 친숙하게 선택된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Paul Krugman 의 글이 주 opinion 란에 실리는 것을 보면 왜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뉴욕타임스를 원하는지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뉴욕타임스는 1851년 창간된 150년가량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문이다. 거의 모든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타임스퀘어는 뉴욕타임스가 있던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일컫는 말이었다. 현재는 뉴욕타임스 본사가 이전하여 그곳에 없지만, 타임스퀘어라는 이름만은 고스란히 남아 관광과 쇼핑뿐만 아니라 뮤지컬 등 문화산업의 메카가 되었다. 타임스퀘어의 유동인구는 일일 5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대기업들의 광고 입간판들이 늘어서 있는 그곳은 기업들에게는 꿈의 광고지로 불리며, 어벤저스나 스파이더맨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곳이 타임스퀘어이다. 그곳을 동네 골목길처럼 무수히 지나다녔지만 타임스퀘어가 뉴욕타임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뉴욕타임스의 엄청난 영향력이 실로 피부에 와 닿는 대목이다.
나는 다행히 학교 차원에서 뉴욕타임스를 무료구독 할 수 있도록 해주어서 가끔씩 읽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폴 크루그먼과 토마스 프리드만의 사설만큼은 꾸준히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들의 글에서는 종종 트럼프의 각종 공약과 정책들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 신문에서는 대선이라고 해도 공식적으로 어느 후보를 지지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는데, 미국에서는 신문사에서 공개적으로 후보의 지지 선언을 한다. 참 신기하고 생소했다. 이번 대선에서 뉴욕타임스는 공개적으로 힐러리의 지지를 선언하며 샌더스의 공약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혹평하기도 하였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비판의 여지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공화당 경선에 대해서는 존 케이식 후보를 지지했었으나 그가 이미 경선 포기 선언을 하여 의미가 퇴색되었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미국 헌정 역사상 기념비적인 판결도 많이 남겼다. New York Times Co. v. United States 판결은 1971년에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비밀문서 "Pentagon Papers"를 뉴욕타임스에서 입수해 보도한데 대해 닉슨 행정부가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를 위해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며 소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연방대법원은 6:3으로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주며, 행정부의 통제는 수정헌법 제1조의 언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하였다.
New York Times Co. v. Sullivan 판결은 누구라도 들어봤을 정도로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판결이다. 이는 뉴욕타임스에 실렸던 마틴 루터 킹에 대한 모금 광고 중 경찰의 흑인 인권 탄압에 대한 내용이 허위라며 경찰관이었던 설리반이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연방대법원은 기존의 입증 책임 원칙을 뒤집고 설리반과 같은 공인에 대한 보도와 관련해서는 언론이 악의적으로 허위 보도를 하였다는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에 대한 입증이 없는 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고 하여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판결에서 Brennan 대법관의 "자유로운 토론에서 오류가 있는 언사는 불가피하다. 언론의 자유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언론은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시하기도 하였다.
언론의 자유를 보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판례 모두에 뉴욕타임스가 있다. 권력과 영합하지 않는 언론이 무엇인지, 언론인의 참된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뉴욕타임스의 모토는 "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이다. 지면에 싣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도하라는 문구가 신문 표지 왼쪽 상단에 쓰여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주제도 광범위하다. 전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시대적 흐름이 어떤지까지 신문을 통해 판단할 수 있을 법하다. 미국에 오면 하루에 신문 한 꼭지씩은 꼭 읽어보려고 했는데, 이것저것 핑계를 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나가 버렸다. 이제 기말고사도 끝나 더 이상 핑계 댈 거리도 없으니, 이제부터라도 다시 뉴욕타임스를 펼쳐보아야겠다. 만약 당신이 뉴욕에 왔다면,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가판대에서 산 뉴욕타임스를 한 번 천천히 읽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