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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pr 18. 2016

NYCL#7 사이렌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 때에는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가 살게 된 아파트가 소호 중심에 있었기에, 근방에서 떠들썩하게 밤을 즐기던 청춘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앵앵대는 사이렌 소리가 귓가에 계속 울렸기 때문이다. 처음엔 집 근처에 불이라도 난 줄 알았다. 그러나 밤새 계속되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니 화재 따위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여덟 시간 내내 간헐적으로 지속되는 응급 상황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소리를 듣고도 태평하게 잠을 잘 수 있는 뉴욕 시민들이 신기했다. 만일 뉴욕에서 사이렌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결코 나의 예민함 때문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실제로 한 번 잠이 들면 잘 깨지 않는 전혀 예민하지 않은 체질이기도 하다.) 인간적으로, 뉴욕의 사이렌 소리는 너무너무너무너무 크다.


    사이렌을 울리는 차들도 가지각색이다. 소방차, 경찰차, 응급차 등등... 온갖 긴급을 요하는 차들이 종류를 불문하고 한결같이 어마어마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활주한다. 계속 듣고 있으면 청각이 마비되어 버릴 것만 같다. 정확한 통계 수치는 없지만 나의 청각에 의하면 서울의 사이렌 소리보다 훨씬 큰 것이 100% 확실하다. 도대체 왜일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복잡한 뉴욕 거리의 자동차들이 비켜주지 않기 때문일까.

엄청난 소리를 내는 뉴욕의 구급차. www.123rf.com에서 발췌.

    뉴욕의 거리를 걸을 때에는, 마치 중국 북경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4차선의 도로에서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거침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요커들은 신호를 불문하고 차가 오지 않으면 일단 직진한다.(이것을 Jay walking이라고 부른다.) 물론 자동차도 사람이 없을 때는 마찬가지로 거침없이 지나간다.

    유학을 오기 전, 아직 학교가 결정되지 않았을 때에, 미국에서 유학을 했었던 선배 경험자들은 하나같이 운전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다. 미국에서는 교통 신호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사람이 없어도 빨간 불에 멈추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등 한국과는 사뭇 다른 엄격한 교통법규에 대한 조언이었다. 물론 그분들은 뉴욕이 아닌 다른 지역에 다녀오신 분들이었다. 경험에서 우러난 소중한 조언들이었지만, 그것들은 뉴욕에서는 필요가 없었다.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사람들이 신호 지키기에 엄청난 융통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jay walking은 불법이지만, 수많은 뉴요커들이 경찰이 보는 앞에서 jay walking을 한다. 경찰이 벌금을 물리는 일을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신호를 지키던 나도, 점차 사람들에 동화되어 편리함과 융통성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주위를 휙휙 살펴본 후, 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면 도로를 마구 건넌다. 뉴올리언스에 갔을 때도 습관처럼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순간 그 많은 행인들 중 나 혼자 횡단보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면 무심코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처럼 복잡한 도로 사정 탓에 사이렌 소리를 그렇게 크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jay walking을 하는 뉴욕 시민. The Villiage Voice, 2015. 9. 15. 기사에서 발췌

     2015년, 뉴욕과 뉴저지 주 전, 현직 소방관들이 사이렌 제조인 Federal Siren Corp. 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원인은 바로 청각 상실. 소방차 내부에서도 사이렌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도록 설계한 탓에 청력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Federal Siren 측에서는 교통안전을 위한 것으로 불가피하며, 사이렌 소리가 적정 수준인 85db을 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소방관들은 전문가의 말을 빌어 사이렌 소리가 쉽게 100db을 넘어 120db까지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 경험상 잠시만 구급차가 옆에 있어도 귀가 찢어질 것 같이 힘들었던 것으로 보아 120db쯤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이 소송의 귀추가 궁금해진다. 


    아-, 내가 사이렌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퇴근 시간 무렵, 도로가 꽉 막혀 지나가지 못한 병원 응급차가 내 옆에 서서 계속 사이렌을 울려댔기 때문이다. 그 시끄러움을 참을 수가 없어서 귀를 틀어막았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도 전력질주를 해야했다. 이후로도 한동안 귀가 멍-했던 나는 이 고통을 반드시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뉴욕에서 구급차를 보게 된다면 일단 귀를 막고, 제발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하라. 비록 어제는 그 기도가 통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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