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정 Mar 03. 2018

침사추이 (2)

발걸음이 닿는 곳


침샤추이는 한자로 '뾰족한 모래의 입구'라는 뜻이다 . 항구를 지나 모래를 밟을 때에 뾰족하고 뜨겁게 다가오는 느낌, 침사추이다.



파격의 수위, 되돌리고 싶은 시절


홍콩 영화는 아시아를 사로잡은 거대한 문화였다. 느와르와 로맨스가 섞인 두 시간 이내의 '활극'은 아시아 사람들의 꿈이었다. 장면 장면은 파격이었고, 유행의 선두였으며, 누군가에겐 장래희망이었다. 미안하지만 지금 그 파격적이고 멋스러운 홍콩은 없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흔적과,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의 방문만이 그 명맥을 잇는 중이다. 되돌리고 싶은 시절, 되돌릴 수 없음을 냉철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홍콩 길거리에는 한국노래가 더 많이 흘러나온다. 낭만과 파격은 오래된 필름 속에만 있다.
조류독감에 아파본 홍콩은 이제 더 이상 새 키우기를 권장하지 않는다. 새 시장은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고, 딤섬 집 천장 위에 짹짹거리며 매달려있던 새장의 풍경은 전설이 됐다.


홍콩인 전부가 중국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국 반환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없이 관광업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이제 영어를 못 쓴다고 해서 무시하는 홍콩 도시 분위기는 끝났다. 어느 언어든지, 미래로 나아갈 발판만 되어준다면 환영인 것이다.
     


어디에나 있는, 좁고 높은 집


홍콩 도심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대나무 하나만 놓아두어도 그걸 타고 옆집으로 갈 수 있겠다고. 그래서 철조망 같은 것을 저렇게 복잡하게 해 놨구나. 영화 ‘소공녀’에 나온 장면이 생각났다. 원숭이가 소공녀의 방에 대나무 같은 것을 타고 훅 들어오는 장면 말이다. 어린 소녀들은 늘 그런 영화에 집착한다. 단순히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매달리려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내가 지금보다 더욱 나은 존재인데 실수로 이런 곳에 태어난게 아닐까 하는 착각 때문이다. 사실은 내 신분이 공주였다거나, 어마어마한 배경을 지니고 있는데 단지 잠시 고생할 뿐이라고. 내가 만일 홍콩 어느 5평 안팎의 아파트에서 태어나 살아왔다면 매일 그런 생각을 하며 유년을 보냈을 것 같다. 모파상의 ‘목걸이’ 도입 부분의 묘사처럼 말이다. 이런 곳에 태어날 운명이 아닌데, 잠시 생의 실수로 반쪽짜리 하늘을 보며 철망 창문 안에서 산다고 위로했을지 모른다.


구룡공원


그러나 이런 홍콩의 작은 주거문화와 살인적 집값이라도, 숨 쉴 틈은 있다. 구룡 공원 곳곳에는 골목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체조를 하는 노인들이 있다.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고 옛 광동 가요나 월극(광동 지방의 경극) 음악을 부르는 것이다. 구룡공원은 나름 도시 안에서 ‘폐’ 역할을 하면서 홍콩인들의 산책을, 숨 돌릴 기회를 돕는다.



침사추이의 또 다른 기억


홍콩을 다니며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자면, 끝내주는 야경이나 놀라운 음식을 먹었던 순간이 아니다. 침사추이 홍콩역사박물관 한 켠에 있는 경극 극장을 재연한 공간에서 빈 의자를 만질 때, 오스틴 거리를 혼자 걷다 만난 다국적 부랑자들 사이로 용감하게 지나갔을 때다.


생각해보면 ‘남는 기억’은 늘 충격과 함께였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열심히 노력해서 상을 탔던 순간 보다, 그 상을 들고 집에 가는 길에 만난 천둥번개가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혹시나 빗물이 가방에 들어차서 상장의 글씨가 번져버리면 어떻게 하나, 번개를 맞는 건 아닐까 하는 지점에서 기억이 만들어진다.


홍콩 역사박물관


기원전 부터 현재까지 홍콩의 모든 시대를 담은 곳이다. 어부들이 살았던 주거공간, 전통 음식과 명절  풍경의 재연, 축제와 사당과 골목 골목 있었던 가게들까지 실감나게 만들어 뒀다.



홍콩 역사박물관의 백미는 경극 극장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악사도, 배우도 없는 텅 빈 공간의 빈 의자를 만질 때에 나는 전율을 느꼈다. 홍콩에서 광동어로 부르는 경극 노래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작은 의자에 앉아 얼후를 연주하고 또 북을 쳤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물론 그 의자는 박물관을 위해 새로 만든 것 일수 있지만, 그 곳에 있는 동안에 나는 수백 년 전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옛날 장국영은, 폐왕별희를 연기하기 전 끝내주는 경극 분장 사진 하나를 찍었는데 바로 내 이름과 한자가 같은 '백소정'의 분장이었다. 그녀는 뱀이었으나 사람을 사랑했고, 천년을 수련하여 얻은 사람의 몸으로 선의를 베풀며 살았으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어느 무지한 승려로 인해 탑에 갇혀야만 했다. 내가 중국이나 홍콩에 가면,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을 묻는다. '왜 한국사람 이름이 '소정'인고?' 실제로 그 동네에서 '백소정'과 똑같은 한자를 쓰는 여자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본명이 '성춘향'이거나 '황진이'인 여자가 드물듯이.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제가 다시 환생한 백소정인가보죠 뭐'. 경극 음악을 들으며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했던 그 농담이 진짜일 수도 있겠다.




화장실이 있던 골목


오스틴(Austin)은 사실 공용 화장실이 있던 곳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침사추이 번화가 근처로 기억되 한산한 거리다. 유명한 일식집이나 괜찮은 한식당들이 몰려있다. 웨딩샵 골목도 유명한데 특수성 때문인지 목적을 가진 사람들만 온다. 가게들은 비교적 일찍 문을 닫는다. 주택가에 있는 공터나 놀이터에 웃통을 벗은 사내들이 나와 있기도 한다. 게중에는 얼굴이 거무잡잡한 인도계 청년도 있고,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도 있다. 문신과 상처 투성이의 팔뚝은 가끔 허공에 모기를 쫒기 위해 휘둘러지는데, 무심코 지나가다가 깜짝 놀랄때가 많았다. 편의점에서 산 맥주캔을 마시며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내들 사이로 혼자 가로질러 걸어갈 때에, 나는 관광객의 외피를 벗고 달의 뒷면에 도달한 개척자였다. 개척은 새로움을, 새로움은 충격을, 충격은 각인을 낳았다. 지금이 사내들 사이를무사히 가로질러 걸어갈 수 있다면 여기에서 여행이 종료된다 하여도 고마울 순간이었다. 여행비가 다 탕진되어 굶는다 하여도, 그 순간 그 사내들 사이를 무사히 지나갈 수만 있다면 감사할 것 같았다. 홍콩에서 가장 뚜렷한 목적을 가졌던 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침사추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