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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Mar 06. 2018

청킹맨션

임청하의 발자취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에서 마약을 밀매하는 임청하는 말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난 너무 소심하게 변해버렸다. 항상 비옷을 입을 때는 선글라스를 쓴다. 비가 언제 올지, 언제 화창한 날이 될지 모르니까”
     


침사추이를 지나다 보면, 언제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을지 모른다. 건물에서 노상 떨어지는 물은 대부분 에어컨 실외기에서 떨어지는 물도 있다. 여름이라면 시시때때로 비가 오기까지 해 우산이나 모자는 필수다.



그런 임청하가 드나들었던 청킹맨션 근처는 홍콩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인도 상인들의 ‘아가씨, 짭퉁시계!’ 하는 목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린다면 바로 청킹맨션 앞이다. 더러는 이를 무서워하거나 귀찮아하고, 더러는 이에 ‘아, 드디어 홍콩이구나’ 하기도 하다. 물론 나는 후자에 가깝다.



홍콩행을 택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영화 ‘중경삼림’을 보았을 것이고, 몇몇은 그 곳이 궁금해 방문도 했을 것이다. 한때는 침사추이 청킹맨션이 가장 세련된 건물이던 적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좀 낙후된 값싼 호스텔 촌일 뿐이다. 더군다나 청킹맨션 앞에는 하루 종일 인도인들이 진을 치고 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담력이 아니고서는 그 어두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디는 건 쉽지 않다. 한 때는 각국의 여행자가 거쳐갔다지만, 지금은 동남아시아나 인도계 여행객이 대부분이다.



인도의 냄새, 임청하의 발자취


영화 ‘중경삼림’ 속 임청하와 인도인들이 만나는 장면은 홍콩에 대한 환상 전부를 대변할 만큼 매력적이기에, 나는 과감히 두 번이나 그 곳에서 묵었다. 한번은 홍콩에 멋모르고 갔던 첫 2011년이고, 한 번은 다시 한 번 청킹맨션에서 자 보자고 결심했던 2017년이다.


청킹맨션에 들어가면 인도 커리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전자상가를 연상케 하는 작은 가게들 골목골목 사이에는 A동부터 D동까지 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암울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서 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엘리베이터 위에는 그 안을 비추는 cctv가 늘상 켜져 있다. 또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들어가는 모습은 청킹맨션 안에만 있는 ‘룰’을 보여줬다. 몇몇 사람들이 다가와 배낭여행객들의 줄은 진두지휘 한다. 인도 노래가 흘러 나오고, 식당에서는 손으로 커리를 먹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광동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모두는 검붉은 얼굴에 반짝이는 눈동자를 하고 있다. 아아, 홍콩 안에 또 다른  나라가 여기구나.


청킹맨션 내부


매점이나 세탁소는 홍콩인이 운영한다. 아주 작은 ‘공화국’을 연상케 하는 청킹맨션 안은 사실 젊은 여자 혼자 돌아다니기에는 무서울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두근거림 안에 넘치는 영감을 숨겨 두었으니, 갈 수 밖에 없다. 나는 ‘아가씨!’라고 부르는 인도인 무리 속을 지날 때에 살기 가득한 ‘영화적 희열’을 느꼈다. 마치 내가 트렌치코트에 가발과 선글라스를 쓴 임청하가 되어, 악명 높은 홍콩 뒷골목을 휘두르는 여왕이 된 듯 한 기분이랄까. 실제로 동양인 여자는 나 하나밖에 없었다. 고작 엘리베이터를 향하는 몇 걸음일 뿐이었는데 홍콩행 전부를 아우를 감상을 안겨줬다.


건물 안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만나는 충격적 풍경


숙소는 11층에 있었고, 복도에는 알 수 없는 냄새가 가득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뻥 뚤린 건물 속이 보였다. 풍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전 구룡성채 사진집에서 본 듯 한 건물 중간의 틈새였다. 전선과 배수관, 에어컨 실외기, 빗물과 쓰레기가 한데 쌓여 있었다. 어쩌면 청킹맨션에서 나는 냄새는 그 곳으로 부터 오는 듯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운치로 느껴지는 것은, 홍콩에 대한 나의 열망이 분명 ‘옛 영화’와 ‘실제 도시’의 실체와 닿아있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호스텔의 주인은 알 수 없는 신을 섬기는 외국인이었다. 인도 혹은 아랍계로 보이는 그는 내 앞에서 유독 친절하고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걱정 말고 잘 쉬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동양인 투숙객은 없었다. 필리핀 가족, 인도계 사람들뿐이었다. 아아, 이 곳에 의자 하나 놓고 앉아 모든 청킹맨션 사람들과 다 같이 사진 한 장 찍는다면, 인생에 길이 남을 텐데. 시도하지 못한 나의 작은 담력에 조의를 표한다.  

여기서 잘 거라니까, 홍콩 친구가 진드기 패치를 사라고 했다.


공포는 오직 머릿속에만 있는 것


청킹맨션에 잘 입성했지만, 문제는 이것이었다. 결국 새벽 네 시에 짐을 싸들고 맥도날드로 도망쳐 나온 것이다. 도무지 잠을 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창문이 없는 어두운 실내에 하얀 형광등 하나가 켜지는 방이었다. 침대와 냉장고, 화장실이 그럴듯하게 갖춰져 있지만, 사실 값싼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조금 불편할 수 있는 상태인건 사실이다. 더군다나 어디를 둘러봐도 홍콩이 아닌, 어느 오지의 나라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복도에서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떠드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한 두려움에 캐리어를 문 앞에 대어 놓았다. 음악도 들어보고 글도 써보려 했지만, 간간히 들리는 잡음에 집중할 수 없었다. 청킹맨션에서 지내는 건 아무래도, 영화처럼 근사하지는 않았다. 인도 음악이 들리는 중경맨션에서의 '임청하'를 기억하는 기쁨은 고작 몇 시간 뿐 이었다. 아, 나의 홍콩 사랑은 고작 이 정도였나.


임청하의 장면을, 끝끝내 재연하지 못하고


명색이 홍콩을 책으로 담겠다는 사람이 하루도 못 버티고 나간다는 부끄러움에 사로잡혔는데, 세상은 참 얄궂기도 하지. 짐을 싸가지고 나오는 새벽 네 시에 아무도 없는 조용한 청킹맨션 안에서 비로소 자유를 느낀 것이다. 실체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마음이 한 순간에 풀렸다.


저녁에 보았던 어지러운 풍경은 싹 정리되고, 가게도 모두 닫았다. 사람들도 전부 자러 들어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텅 빈 청킹맨션을 홀로 걸으면서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한 것일까. 그래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밖으로 나왔다. 침사추이 골목에는 술 취한 젊은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24시간 편의점이나 페스트푸드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누군가는 잠을 자고, 누군가는 깨어있는 도시였다.


새벽 네 시에 짐을 싸들고 나간 맥도날드


다시 만난 평화


다른 호텔로 옮겨 체크인을 하기 까지 시간이 남았으므로, 24시간을 여는 맥도날드를 찾았다. 새벽 네 시 반의 맥도날드는 여전히 환하고 활기찼다. 20대 초중반의 남녀 아이들이 여럿이 모여 마치 초저녁처럼 수다를 떨고 노는 중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은 유쾌했다. 청킹맨션에서 느꼈던 두려움이 한 번에 씻겨 내려갔다. 젊고, 활기차고, 건강한 홍콩이 느껴졌다. 마치, 맥도날드에서 처음 만남을 시작했던 '첨밀밀' 두 주인공이 떠올랐다. 다시 그런 설익은 사랑을 다시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캐리어에서 첨밀밀 장면을 인화한 사진을 꺼냈다. 여명과 장만옥의 젊은 얼굴에 마음이 놓였다.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결국 사람이었다.


맥도날드의 연인, 장만옥과 여명


듣던 대로 몇 명의 노숙인이 구석 테이블에서 자고 있었다. 또 테이블을 치우는 직원도 모두 퇴근해버린 새벽이라 쓰레기가 많았다. 동이 틀 무렵 맥도날드에서 나오는 길, 맞은편에 있는 모스크를 봤다. 하이얀 지붕은, 종교를 초월해 평화를 선사했다. 다시 아침이 시작됐고 사람들과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작고한 작가 마광수는 그의 저서 ‘마광수의 뇌구조’ 마지막 페이지 즈음 이런 말을 한다. ‘시대가 혼란스러워도 사랑은 인내하는 마음이고, 애틋한 기다림이다’. 책 한권 내내 낯 뜨거운 성 담론과 단어들을 쏟아내던 그가 이토록 ‘의로운 발언’을 했다는 것에 사뭇 울컥했다. 그리고 되묻게 되는 한 가지 물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무엇을 그토록 진절머리나게 원하고 갈망하기에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것일까.



새벽녘 길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노동자 이외에도 젊은 청년들이 있었다. 근처에서 실컷 마시고 놀다 들어가는 길인지, 여전히 붉은 얼굴로 떠들썩했다. 침사추이 골목은 늘 시끄럽지만 위화감은 없다. 잘 닦인 대리석 바닥의 백화점에는 없는 살 냄새가있다. 조금 떠들썩하고 조금 취해있을 지라도, 총기를 소지하거나 과도하게 제압하는 눈길 같은건 없다. 어쩌면 홍콩이라는 것은, 이렇게 마광수의 문장만큼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여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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