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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Mar 31. 2018

삼판

홍콩의 작은 섬들


충격적이게도, 홍콩에는 섬이 234개나 된다. 고작 서울만 한 크기의 홍콩인데 말이다. 그 중 외국인이 쉽게 찾을만한 섬은 란타우 펭차우 창차우 라마섬 정도다. 어느 섬은 방문지라고 하기엔 민망한 크기이기도 하다. 만일 당신이 '무명의 섬'으로 가고 싶다면, 쉽게 길을 잃거나 헤맬 각오를 해야 한다.



홍콩의 섬들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모습이다. 바닷물, 삼판(舢舨, 작은 배), 비린내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다만 구분을 해보자면, 란타우 섬은 산 앞에 배가 있고, 라마섬은 언덕 집 앞에 배가 있고, 창차우섬은 돌산 앞에 배가 있는 정도랄까. 삼판이라는 ‘배’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부 다 센트럴에서 페리를 타고 가면 도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시간 덕에, 도시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늘 페리에 가득하다.

만일 1시간 남짓의 뱃멀미와 작은 규모의 섬 나들이를 견딜 자신이 없다면, 섬의 정취와 손쉬운 접근을 지닌 애버딘과 섹오가 답이다. 여행에 있어서 멀미와 헤맴은 큰 짐이기 때문이다.



<애버딘>

반짝이고 또 출렁거리는


홍콩에서 가장 매력적인 동네를 꼽으라면 나는 에버딘을 꼽는다. 이전에는 어느 버스 터미널에서 무엇을 타고 어떻게 가라는 복잡한 설명이 필요했지만, 이제 아일랜드 라인의 MTR이 개통을 했다. ‘Wong chuk hang’ 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면 10분 만에 도착 한다.


에버딘의 밤


영화 ‘도둑들’은 진한 ‘홍콩 풍미’를 머금은 한국영화다. 스토리야 그렇다 치고, 영화에 나오는 홍콩과 마카오 풍경은 절대 식상하지 않다. 관광지나 쇼핑몰은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과 홍콩의 도둑들이 첫 만남을 했던 애버딘 점보 레스토랑은 이미 너무 유명해졌다.



식상해진 장소라고 생각되지만 계속해서 가게 되는 이유는 점보 레스토랑까지 가는 ‘길’이 멋지기 때문이다. 사실 점보 레스토랑은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방문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비싼 광동요리를 파는데도 불구하고, 홍콩인들 인식에는 ‘맛이 없다’는 평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애버딘에 있는 점보레스토랑 전용 삼판을 타고 5분정도만 가면 도착한다. 수상가옥 형태로 지은 레스토랑의 규모, 금빛 장식들, 애버딘 해변가의 풍경만으로도 ‘잘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영화에서 도둑들이 타고 움직였던 작은 통통배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 퀘퀘한 비린내 등은 영화 속 도둑이 된 듯 한 감상을 충분히 제공한다. 이질적이게도 고층 아파트가 바로 맞은편에 자리 잡아 시야를 가린다.



아파트는 어디에나 있지만


바로 옆 틈새 하나 없이 들어선 빼곡한 고층아파트와 그 주변으로 자리 잡은 작은 동네는 확실히 ‘애버딘’스러운 무언가가 있다. 도시에서 흔했던 '간판' 하나 없는 조용한 주택가. 떠드는 이 하나 없는 완전한 ‘로컬 동네’로서의 이미지. 이 모든 건 짭쪼름한 냄새와 함께 버무러져 온 몸을 휘감는다.


에버딘은 작다. 역시나, 홍콩 여느 마을처럼 작다. 부산 바다와, 여의도 아파트촌과, 통영 뱃마을이 좁은 원 속에 공존한다고 생각해보라. 그게 에버딘이다. 에버딘은 '비린내'를 견딜 수 있어야 하는 마을이기도 하다. 한때는 삼판선을 짐 삼아 살던 사람이 수만 명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늘 물과 생선을 가까이했다.



에버딘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길거리 식당은 고작 우리나라 떡볶이 한 접시 값도 안 되는 싼 가격의 생선수제비를 판다. 생선살과 밀가루를 버무려 반죽한 울퉁부룽한 어묵을, 생선 뼈 우린 국물에 삶아 준다. 상추 두 세개 겨우 올려 진 게 끝인 이 한 그릇을 먹으려고 에버딘 사람들은 삼판선을 타고 온다. 긴 널빤지 앞에서 목욕탕 의자에 앉아 먹는다.



테이트아웃 줄도 길다. 재밌게도 비닐봉지에 수제비를 후루룩 담아서 그냥 가지고 간다. 맛은,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으며 비린내에 자신 있는 사람에게 권하겠다. 테이블에 있는 후추와 식초, 고추양념을 새까만 색이 될 때까지 부었더니, 겨우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비린내 국'을 위해 이토록 긴 줄을 서 있는걸 보면, 에버딘 사람들의 마음에는 물과 생선이 살고 있구나 싶다.




애버딘에 사는 친구


전철이 개통된 지 얼마 안 된 에버딘에는 버스나 트램이없다. 대신 봉고차 만 한 미니버스가 다닌다. 미니버스를 타고 언덕을 올라올라 주택가에 도착했다. 에버딘은 침사추이나 센트럴 같은 도시보단 집값이 싼 편이다. 친구네 집은 10평 조금 넘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네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아파트는 흡사 주차장 건물을 연상케 했다. 복도나 계단 같은 개념이 없어 보이는 아파트는 그냥 '골격'만 있는 듯 했다. 불 하나 들어오지 않는 복도에는 철문으로 닫힌 홍콩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데, 밤 늦게 귀가라도 하는 날엔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 친구네 집엔 170cm가 넘는 내 키로는 서 있을 공간이 없어보였다.



빨래 말릴 공간이 없어서, 네 식구 빨래는 늘 천장에 매단 빨랫줄에 빡빡하게 걸려있었다. 미니냉장고와 천으로 된 신발장. 식탁 대신 마련한 안방 침대 옆 간이 테이블은, 21세기 금융가의 중심 홍콩의 가정이 맞나 싶었다. 슬프게로 이렇게 사는 사람이 반 이상이라고 한다. 에버딘 이외에도 중국 경계에 있는 신계 지역 등은 집값이 저렴해 서민들이 사는 편인데, 이보다 더 좁은 집도 있단다.


그러나 이 가족과 식사를 할 때면 매번 가슴이 울컥한다. 예순이 넘은 나이인데도 길을 지날 때면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이방인인 나를 끌어안고 집으로 데려가 야채볶음 따위에 밥을 먹이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크기는 집의 크기와 반비례 하는지도 모른다. 작은 공간에 붙어 앉아 티비를 보는 식구들, 매일 가까이서 온기를 나누고 있음이 분명했다.

     


<타이오>

타이오는 푸르다, 비린내를 잊을 만큼 눈부시다.


날씨가 좋은 날에 타이오를 찾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선명한 ‘푸른 빛’을 만날 수 있다. 배 위에서 생선을 잡아 올리는 생생한 모습, 수사시장의 펄떡펄떡 뛰는 생동감도 덤이다. 무엇보다 작은 타이오 마을의 풍경은 평화로운 해변마을의 전형을 보여준다. 간판 이라던지 호객행위는 전혀 없다.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주택가 집들을 보면서 정말 홍콩이 맞는지 생각하게 된다.



여행은 이상하다. 현실에서 벗어나려 나왔는데, 갑자기 일을 같이하던 동료는 지금쯤 뭘 먹을까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 지기도 한다.


해외여행씩이나 와놓고, 어느 날 밤 조용한 호텔에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시골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거나, 지겹도록 먹었던 집 앞 커피숍의 라떼도 생각난다. 점점 많아지는 관광객 덕에 줄을 서야하는 가게도 많아지고 있었다.



<탑문도>

시골의 정취


여름이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휴가 풍경, 어릴 땐 시골, 대청마루, 매미소리였다. 홍콩에서 느닷없이 그런 정이 그리워질 때 '탑문도'를 가보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일 것이다.


탑문도는 작은 섬. 뜰을 뛰어다니는 야생 소, 마당에 건어물을 넣어놓고 말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바닷가 근처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더위를 식히는 주민들의 풍경이 있다. 삼시세끼 조용히 먹다, 다음날 집에 가면 되는 그런 시골말이다.


그럴 듯 한 랜드마크나 기가 막힌 맛집은 없을지라도, 홍콩 어느 소박한 섬동네 사람들의 정취를 마음 놓고 즐기기에는 탑문도만한 곳이 없다. 센트럴에서 페리를 운영 중이기에 접근은 쉽다. 늘 한국인 몇 명은 페리 터미널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가끔 동행을 만나는 행운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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