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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Feb 20. 2018

야간비행

3. 공항, 보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글자.


처음 공항에 갔을 때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초등학교 무렵이었다. 겁이 났을 것이다. 비행이라는 거대한 두근거림을 처음 만났을 때, 만에 하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두려운 예감도 감돌았을 것이다. 마침내 어른이 되어 수 없이 비행한다 하여도, 그 미세한 떨림은 어쩔 수가 없다.
     


계속해서 확인해보는 이정표
숫자와 알파벳과 화살표의 향연
인파의 질서정연함
 
공항에서 가장 좋은 시간은 노을이 지는 시간이다. 저녁 8시 즈음의 인천공항은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해가 지면 천천히 골드빛 조명을 은은하게 켜는 것이다. 탑승동 위에 있는 정자에 앉아 F 수속 게이트 쪽을 바라보면 공항이 순식간에 황금물결 치는 것을 볼 수 있다.지붕은 복잡한 흰 철근으로 얽혀있고, 그 아래는 저마다의 질서를 가지고 움직인다. 상점들은 하나 둘 바리게이트를 치고 영업이 끝났음을 알린다. 밥 때를 놓친 여행객은 차가운 샌드위치와 우유를 들고 의자에 기대 식사를 한다.


어쩌면 이들의 이정표는 모두 같은 곳을 향하고 있을지 모른다. 텅 빈 마음 채우고파 울며 노래하는 새벽 부엉이처럼 공항에서 두 눈을 껌뻑이는 이들. 꿈을 꾸는 몽중인들. 그냥 이 한 마디를 하고픈 거 아니야?


‘나는 날고 싶어!’


공항에 뿔뿔이 흩어져 앉아서 또 줄을 서서 또 누워서 또 먹고 마시는 모든 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날고 싶다’고 외치는 상상을 해 본다. 우리들의 외침은 어쩌면 대지를 들어 올려 하늘위로 날게 할 힘이 될지도 몰라. 일부러 밤 비행기를 택했다. 야간비행이 주는 감상은 여행 전체를 어우르는 기대감이 있다. 오후에 도착한 공항에서 오랜 시간 대기했다. 지루함은 없었다. 이쯤 되면 공항에 가기위해 여행을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톨스토이는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대신에 비행하는 것을 배운다고.
     
기계덩어리에 몸을 싣고, 4만 피트 상공 위로 날아가는 일. 그리고 한참동안 그 안에서 앉아있는 일.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인천에서 홍콩까지의 거리는 1,292마일, 세 시간 반 조금 넘는 비행시간, 한 시간의 시차. 한 번쯤의 터뷸런스를 견디고 열 번쯤의 건조함을 이겨내면 후덥지근한 공기와 마주하게 된다.


야간비행을 택한 이유는, 새벽의 고요한 홍콩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새벽 세시 쯤 도착한 홍콩은, 내가 제일 먼저 이 땅에서 눈떠 움직이고 있다는 묘한 쾌감을 가져다줬다. 공항에서 벗어나면 그제 서야 막 하루가 시작된다. 그동안 수 없이 다닌 홍콩행의 반 이상은, 이렇듯 야간비행이었다. 짭쪼름한 기름냄새와 습한 공기가 빌딩을 뚫고 다가온다. 홍콩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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