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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Feb 21. 2018

붉은 항구

4. 홍콩이라는 작은 섬


일찍이 중국 내륙과 북방은 정치의 중심가였다. 남쪽으로 내려오면 일 년 내내 더운 광동지방이 있었다. 정치나 정의로움 보다는 '돈'이 우선인 광동에는 상인들이 넘쳤다. 우아한 보통 북경어가 아닌 극심한 사투리의 광동어를 사용했다. 조금만 벗어나도 말이 안 통하는 광동지역은 광동만의 문화를 축척했다.


내륙인과 입맛이 한참 달라 식탁에는 기름진 만두나 달콤하고 묵직한 탕이 주로 올라왔다. 광동에서 고추나 후추를 찾는 것은 표준어를 할 줄 아는 토박이를 찾는 것 보다 힘들다. 광동 일부 상인들은 더 아래에 있는 아주 작은 돌섬으로 내려왔다. 원주민과 뒤섞여 물 하나 없는 돌섬에 붉은 깃발을 꼽고 살았는데, 그 곳이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의 홍콩이었다.


서방의 교만함은 이 향기로운 항구의 깃발 옆에 자신들의 깃발을 꼽았다. 긴 싸움 끝에 중국은 별로 기대할 것 없는 이 작은 섬을 내어줬다. 덕분에 차와 영어와 서구식 문화가 들어와 중국과 홍콩은 점점 더 달라졌다. 물은 없고, 농사도 짓기 힘들었다. 사람은 많고, 언덕은 높았다. 집이 부족해 열 평 공간에 대여섯 명 사는 건 우스웠고, 방황하는 청춘들은 영화를 만들었다. 영어는 공용어처럼 되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영어를 못 했다.


손자들은 이따금씩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돌아온 이들은 지금 중국에게 속해진 홍콩에 적응을 못 하고 있다. 더 이상 빈민가나 구룡성채의 아픔은 없지만, 때때로 젊은이들은 우산을 들고 시위를 하고, 나빠진 경제와 치솟는 집값에 오열을 한다. 명품관으로 가득 찼던 쇼핑특구는 이들의 주머니사정과 함께 하나 둘 중국 관광객에게 넘어가고 있다.


지금, 돌섬이던 홍콩은 돈 냄새와 살 냄새를 동시에 풍기는 복잡한 홍콩이 됐다.


이제는 배 보다 비행기가 자주 정박하는 홍콩이지만, 언제까지나 '붉은 항구'로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백년은 되어 보이는 낡은 간판과 새로 올려진 낯선 빌딩들이 함께 뒤섞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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