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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Feb 21. 2018

올드 홍콩 (2)


철거 직전의 구룡성채를 담은 사진집 ‘City of Darkness’를 살펴보면 전율이 온다. 어느 예술 감독의 살떨리는 B급영화를 본 듯 한 기분, 혹은 다른 행성 어느 완전히 암울했던 세계를 목도한 기분이다. 분명 하늘이 있으나 하늘을 볼 수 없는 마을이다. 고층으로 올라가고 있으나, 지하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말 할 수 없이 좁은 실내, 화장실과 침실과 주방이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바글바글 모여 사는 사람들. 마약과 매춘과 불법을 헤치고 옥상으로 올라가 연을 날리는 어린아이들, 어두운 성채 안에서 키워지는 새장 속 새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단 30cm 정도의 틈, 여유 공간이 없어 햇빛을 받지 못해 곰팡이가 쓴 벽들, 바닥이나 계단에 죽어있는 큰 쥐들, 먼지처럼 뒤엉킨 공포스런 전깃줄들, 불법으로 행해지던 치과 영업소의 핏빛 타일 벽지, 허가를 받지 않고 운영되던 도살장, 바닥에 앉아 만두를 빗는 식당, 담뱃재를 떨어트리며 거위를 도살하는 정육점, 우체국, 국수집, 유치원, 매점, 사당, 그리고 영국인이 들어와 만든 교회. 모든 것은 어두침침한 형광등 불빛과 창문 없이 붙어있는 구룡성채 안에서 공생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마약을 사고 팔았다. 어느 청년은 스테인레스 선풍기를 켜고 앉아 허벅지의 성한 부분을 찾아 주사바늘을 찔러 넣고 있었다.

구룡성채 옛 터에서 만난 할아버지


매점을 운영했던 한 구룡성채 주민의 아들은, 그가 10대 초반인 나이에 마약을 권유받았다고 한다. 경계라든지 도덕적 잣대라든지 하는 것은 구룡성채에 없었다. 그나마 새를 파는 남자가 유일하게 사진집 안에서 웃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은 여든 정도 된 노인이 되지 않았을까. 또 지붕 위에 올라가 수천 가구에 조달되던 전깃줄 사이사이를 뛰어놀던 어린아이들, 머리위로 가까이 지나가던 카이탁 공항의 거대한 비행기 그림자가 구룡성채의 마지막 사진기록이다.


왕가위 감독은 구룡성채에서 ‘아비정전’을 찍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편굴에 쥐가 들끓고, 더럽고, 치외법권이며 무척 위험한 신 시티다”



     
구룡성채는 홍콩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는다. 어쩌면 홍콩이 그토록 땅에 묻고싶어 했던 마지막 수치가 아니었을까. 영국 식민지 영향으로 멋스런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미식의 나라, 고층 빌딩과 환상적인 야경, 고급 문화의 향연 등은 구룡성채로 인해 비로소 ‘균형’을 찾는다. 빛이 그림자를 만나 비로소 생동하는 것이다.


구룡성채를 만난 후, 홍콩이라는 나라와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을 갖게 됐다. 암울했던 시대의 페이지는 때로 미적 감흥과 감동을 동반하기도 한다. 사람,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 냈던 거대한 구룡성채의 역사. 지금은 사라졌기 때문에 더욱 애달프다.


어느 일본 영화감독이 표현했던 ‘옌타운’이라는 가상의 마을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동안 그 음악을 들으며 홍콩의 50년 전 구룡성채를 걷는 상상을 했다. 비록 어둡고, 혼란스러우며 공포스럽기까지 했지만, 비뚤어진 모든 것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적 미학을 동반 했다.


구룡성채 철거 이후 남겨진 잔해들


흉터는 때때로, 예쁘기도 하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어” 미국의 한 다큐멘터리에서 구룡성채 거주자가 했던 말이다. 아무리 슬럼가에 외계도시 같았다 하더라도, 구룡성채 역시 사람이 살고 태어나고 또 죽는 곳이었다. 흉터처럼 남은 구룡성채의 기록들은, 나로 하여금 홍콩을 더 애정하게 했다. 흉터는 때때로 예쁘기도 하니까.


성채에 거주했던 사람들 일부 계층을 만나볼 수 있냐니까, 홍콩 친구들이 전부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하지 말라고.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서 구글로 역사를 배운 '무늬만 홍콩인' 친구 역시 "위험한 짓 하지 마"라고 권면한다. 이럴 때에 느낀다. 아, 너희들이랑 나랑 다르구나. 맞다. 어쩌면 이들의 뼛속까지 파고든 것을 내가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공연한 비밀' 또는 '암묵적 합의'를 맞닥뜨릴 때, 나는 참을 수 없이 강한 한기를 느낀다. 성채를 둘러싸고 있던 두터운 벽이, 우리 앞에도 있구나.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벽을 부수고 깨고 싶다. 더 들어가 알고 싶다.
지금 구룡성채 옛 터에는, 아무도 성채를 기억하는 이가 없다. 예쁘게 조성된 기념공원 곳곳에 과거를 추억하는 기념물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노인들은 공원에서 쉬고 있고, 더러는 조깅을 하는 젊은이들을 발견했다.

구룡성채 공원

1994년 구룡성채가 완전히 철거된 이후, 주민들은 약간의 보상금을 가지고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때때로 구룡성채가 있었던 ‘Lok Fu(록푸)’ 지역 길을 걸으면서 옛 성채 주민들을 맞닥뜨리는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 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모르나, 홍콩인에게 구룡성채는 공공연한 비밀 같은 역사가 된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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