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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Feb 23. 2018

올드 홍콩 (3)


성벽으로 감싼 캇힝와이의 신비함


그렇게 구룡성채에 빠져있을 때, 캇힝와이를 찾았다. 성벽으로 둘러싼 좁은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한 사람 겨우 들어갈 만 한 좁은 골목에는 철문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바닥에는 언제 떨어져 눌어붙었는지 모르는 쓰레기와 낙엽들이 있었다.



엺게 퍼지는 향 냄새, 똑똑 하고 물 떨어지는 소리, 한 손바닥으로 가려지는 크기의 쪽빛 하늘, 창문마다 드문드문 걸려있는 빨래, 어지럽게 얽혀있는 전깃줄과 배수관의 어지러움은 어쩌면 구룡성채의 잔재, 홍콩인들이 오랜 시간 지켜온 생활양식이었다.



캇힝와이 성벽마을에 간다는 것은, 도시에서 느끼지 못한 ‘진짜 홍콩인’을 만날 기회였다. 높은 성벽 안에 오밀조밀 모여 사는 사람들, 그 세계에 침입한 이방인이 된 기분으로 좁은 길을 걸었다.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알싸한 향 냄새, 불을 꺼트리지 않는 신당의 붉은 장식들, 몸을 옆으로 돌려 게처럼 걸어야만 갈 수 있는 집집의 문들. 낮에는 방학을 한 아이들 몇몇이 나와 골목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이방인이 카메라를 들고 서 있자, 아이들은 이내 얼굴을 감추고 도망갔다. 성채에 사는 아이들도 이랬을까?



익청빌딩의 압도하는 힘


홍콩영화 ‘순류역류’에서 공간을 압도하는 장면 하나가 나온다. 어딜 봐도 꽉 막힌 개미굴 아파트 뿐인. 가운데 뻥 뚤린 공터에는 쓰레기만 가득하다. 바로 타이쿠(Tai koo) 지역의 익청빌딩(益昌大廈)이다. 할리우드 영화 ‘트랜스포머’ 덕에 더 유명해졌다.




익청빌딩은 구룡성채를 추억하고 가늠해보기 가장 좋은 장소다. 홍콩 내 가장 오래된 아파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작은 다세대 주택의 향연.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풍경은 야속하게도 관광객에겐 ‘이국적 풍미’를 준다. 실제 거주자들은 그 좁고 답답한 곳에서 숨이 막힐 지라도.



낡은 것은 신비하다, 틴하우


틴하우(Tin Hau) 지역에는 오래된 빌딩이 많다. 옛 건물을 활용해 젊은 예술가들이 전시와 행위예술 등을 하기도 한다. 오래된 주택가에 가면 관광객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특이한 풍경은 고가도로 옆에 아주 오래된 큰 돌판이 있는 건물이었다. 마치 그 곳만 흑백으로 시간이 멈춘 듯, 블랙홀처럼 시선을 빨아들였다.



길거리는 여느 작은 동네의 풍경과 다르지 않으나 야자수 나무가 많다는 특이점이 있다. 작은 템플이 하나 있어서 향을 계속 피우고 있고, 근처에는 새로 조성된 주택가가 깨끗하게 반긴다. 유기농을 테마로 한 브런치 집, 커피숍, 빵집 등에는 서양인들이 가득하다. 방금 전까지 오래된 아파트를 지나왔기에 갑자기 만나는 깨끗한 거리에 조금 당황스럽다. 틴하우의 옛 건물은 어쩌면 철거와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듯 혼자서만 회색이었다.



또 하나의 추억, 카이탁 공원


90년대 홍콩 영화에 등장하던 아슬아슬한 비행 장면. 마치 키가 큰 사람이 옥상으로 올라가 손을 뻗으면 닿았을지 모를 정도로 낮게 날던 비행기. 카이탁공항은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홍콩의 지형이나 공항의 위치 상, 위태롭게 날 수 밖에 없었다. 구룡성채의 사람들은 싼 월세에서 근근히 먹고사는 경우가 많았다. 바깥 도시에도 나가보지 못한 사람도 많았는데, 해외는 당연히 꿈의 장소였을 것이다. 매일 구룡성채 지붕 바로 위를 가장 아슬아슬하게 날던 비행기, 그걸 보고 주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믿거나 말거나, 홍콩 정부가 구룡성채에 본격적으로 ‘손’을 댄 이유는 자국민 보호 같은 이유라기 보다는, 외국인 관광객이 홍콩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보는 게 이 쓰레기장 같은 무법지대였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말 그대로 ‘치워버린’ 것이다. 지금 옛 공항 터에는 그저 공터만이 남았다. 때때로 옛 공항이 그리워 이 곳을 찾는 사람도 있다.


구룡성채 공원에서 만난 소녀


구룡성채의 흔적을 찾아가는 동안 나에게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과연, 그 시절은 ‘붕괴’된 것이 맞을까? 어느 재래시장에서, 웃통을 벗고 하얀 앞치마를 한 아저씨가 팔뚝만한 칼로 돼지고기를 써는 것을 봤다. 여기저기 적나라하게 튀어져 있는 핏방울과, 노상 나무 탁자 위에 그저 툭툭 던져놓은 고기들. 며칠 동안 상온에 놓여 있던 숙성 고기를 맨 손으로 집어 담는 풍경이었다. 가만히 보니 저 고기, 요즘 유행한다는 ‘드라이에이징’과 다를 게 없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싸게 팔리고 있는 숙성된 고기, 알고 보니 홍콩 시장에 널린 그런 고기와 뭐가 다를까.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나오는 작고 가난한 동네들. 그 곳에서의 생활방식은 성채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비록 도심에는 화려한 쇼핑몰과 야경이 있지만, 여전히 작은 평수의 집에서 철조망 창문 사이로 빨래를 창문 밖에 널어놓는 것이다.
맥도날드 창가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지금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저 할아버지가, 혹시 구룡성채에서 매점을 운영하던 아이는 아니었을까? 지금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사 가지고 지나가는 저 아주머니는, 구룡성채에서 태어난 아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비록 성채는 무너졌을지라도 성채의 사람들과 생활방식은 바닷물에 강물이 스며들 듯 자연스레 융화되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섞이고 섞여, 생활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홍콩은 정말 옛 시대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홍콩이 된 것이 맞을까? 센트럴 어느 금융가 높은 빌딩만을 보고 홍콩이라 착각했던 나에게, 구룡성채는 홍콩의 ‘삶’ 그리고 ‘사람’에 대한 깊은 고찰을 주었다.
    

(더 다양한 홍콩 이야기 한 권을 모두 순차대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다른 포스팅에도 구독과 좋아요로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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