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 인터뷰 경험담
난 항상 ‘학교’라는 기관에 있었다. 초중고등학교를 지나 학부 4년 (여름방학 때에도- 학교에 남아있지 않으면 다른 ‘학교’로 갔다), 그리고 졸업 후 잠시 일할 때에도 대학 연구소에 있었다. 지금은 다시 학생으로 돌아왔고 앞으로 몇 년간 학교에 남아있을 계획이다. 하여간 공부 복은 엄청나게 타고났다.
그동안 학교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학교 안에서 어떤 생각으로 성장하는지, 학교 밖의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사는지도 궁금하다.
요약하자면, 나는 ‘학교’라는 시스템에도 관심이 많다.
안전하면서도 치열한 학교라는 세계. 그곳에서 20대를 맞이하고 좌충우돌 4년을 보내고 졸업하면 학교에 각별한 애정을 지니게 된다 (다니는 동안은 '애증'일지 몰라도). 동문 가족의 일원으로, 우리 학교의 다음 주인공은 누가 될지 궁금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처음으로 모교의 동문 인터뷰를 했다. 많은 미국 대학이 미국 내,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동문들에게 지원자들의 인터뷰를 부탁한다. 동문 인터뷰는 갓 졸업한 파릇파릇한 졸업생부터 몇십 년 전 졸업한 어른들까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졸업 후 학교에 대한 기여로 여겨지기에 인터뷰어에게 보수나 혜택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바쁜 시간 쪼개서 인터뷰어가 된 이유? 꿈과 희망이 가득한, 의욕과 에너지로 반짝반짝한 고등학생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도 학교 인터뷰를 열심히 준비하던 지원자였는데. 내가 인터뷰어가 되어서 여러 지원자들을 만나면 그만큼 나도 배우는 것이 많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배웠다).
동문 인터뷰가 입학사정관들의 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나? 처음엔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이미 모든 기록들 (성적, 수상경력, 활동, 교사 추천서 등)을 가지고 있고, 에세이를 비롯한 그 기록들이 합격 여부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리포트를 쓰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런 자료도 편견도 없이 학생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학생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 (학교에서 인터뷰어에게 학생의 이름과 연락처, 학교 정도만 주고 그 외의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레쥬메를 받으면 옆에 잠시 두고 적어도 인터뷰하는 동안은 레쥬메를 들여다보지 말고 학생과의 이야기에 집중하라고 배웠다). 자세한 절차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입학사정관들은 문서상에 나타난 학생의 이미지와 내 의견을 비교해서 학생의 됨됨이를 파악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평가가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가”라는 말이 참 애매하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느낀 점을 리포트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렇게 난 일주일에 걸쳐서 똑똑하고 열정적인 고등학생 4명을 만났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1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고, 내 컨디션에 따라 평가가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내 컨디션 관리도 하면서 인터뷰에 임했다. (예를 들면, 배고파서 지치거나 일찍 끝내지 않도록 든든히 먹고 간다던가, 같은 종류의 기분 좋은 아이스티를 마시면서 만난다던가, 너무 급하게 허둥대지 않도록 적어도 30분 전에 인터뷰 장소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는다던가)
그리고 리포트는 인터뷰가 끝난 그 자리에서 바로 썼다.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 순간에, 머리를 닫고 손이 가는 대로, 있는 사실부터 쭉 메모했다. 이 학생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그중 어떤 것들을 강조해서 설명했는지, 어떤 점에서 놀라웠는지, 실망스러웠는지. 학생의 전체적인 태도와 인상, 내 느낌도 솔직하게 전부 썼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고 일단 집에 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더 맑은 정신으로 정성껏 리포트를 완성했다.
이미 수년간 수많은 학생들을 인터뷰하신 분들도 있는데 내가 감히 이런 경험담을 나눌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올해 만난 4명만 봐도, 세상에 뛰어난 학생들이 정말 많다. 한국에서 엄청나게 공부하는 것처럼, 미국 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은 놀라울 만큼 많은 활동을 하고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했다. 그만큼 문서상으로는 모두가 화려할 것이다. 하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른 부분이 있다. 학생이 진심으로 열정을 다했는지, 단지 대학에 가기 위해서, 혹은 남들이 하니까, 스펙만 만들어왔는지- 학생이 이야기하는 태도, 눈빛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다르다. 이건 꾸미거나 숨길 수 없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이 똑똑한 학생들 중에서 누가 우리 학교 분위기와 잘 맞는지를 느낄 수 있다.
물론 한 시간의 만남으로 누군가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다고 하면, 그건 큰 자만이고 착오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 한 시간 동안 전해지는 스토리는 생각보다 크다. 에세이 형식으로 작성하는 리포트 외에도, 전체적인 학생에 대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아주 드물게 뛰어남(7)부터 추천하지 않음/걱정스러움(1)까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4점을 받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아무리 성격 좋고 사람 좋은 인터뷰어라도 모두에게 7점을 주지 않는다. 나도 4명 중 단 한 명에게 7점, 다른 한 명은 6점 (5-6점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4점을 주었다. 많이 고민했느냐고? 공교롭게도 인터뷰 끝나자마자 내 대답은 거의 정해졌다. 리포트를 쓰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만 크게 변하지 않는다.
4명을 만나면서 나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본받고 싶을 만큼 열정적인 학생을 만나면 그 날 하루 종일 나도 기분이 좋고 의욕이 생겼다. 신선하고 반짝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다. 그들이 대학에 가서 어떻게 발전할지 그려보는 것도 재미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방금 리포트를 전부다 제출했고, 3월 말에 모두에게 결과가 발표될 것이다. 내가 만났던 학생들 중에 합격하고 정말 학교로 진학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덩달아 신날 것 같다.
인터뷰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하려고 시작한 포스트는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길어졌다. 어떤 면에서 학생들이 돋보이거나 실망스러웠는지는 다음에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