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어색하지 않았다. 그는 내 말을 잘 들었고, 질문도 이어갔다. 말투는 정중했고, 감정을 무리해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공손함은 유지했다.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나는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는 늘 같은 습관이 나온다. 혹시 이 사람이 나와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 나는 항상 상대를 부정하기보단 긍정적인 면에서 바라보려 애쓴다. 그게 착각일지 모르면서도 언제나 나는 가능성을 한 번쯤은 상상해보는 사람이다.
그는 나를 ‘투명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는 만남에서 늘 솔직했다. 내가 바라는 관계, 지금까지의 연애, 내가 연애를 대하는 방식까지, 숨기지 않고 꺼내는 편이다. 적어도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드러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거다. 투명하다는 말은 쉽게 읽힌다는 뜻이었을 수도 있고, 감추지 않는다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는 조금 더 깔끔한 차림으로 나타났고, 가볍게 향수도 뿌린 듯했다. 그는 더 자주 웃었고 적극적였다. 그 날은 무척 추웠고 카페를 찾을 수 없었던 우리는 근처 이태원의 바에 갔다. 하우스 음악이 깔리고 누군가는 그 음악에 둠칫 춤을 추는 그곳에서 우리는 또 한 번 대화를 나눴다. 그는 여전히 나긋했고, 나는 그 순간에도 혹시 이 만남이 더 깊어질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 사람이 아니었다.
소개팅이 반복될수록 나는 관찰자에 가까워졌다.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반응을 살피게 된다.
설레는가? 기억에 남는가? 다시 보고 싶은가? 질문을 했다.
좋은 사람은 많았다. 배려가 몸에 밴 사람, 대화를 조심스럽게 이어가는 사람, 내 말투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그럼에도 나는 그들과 헤어질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기까지일 것 같다’는 예감이 일었다. 그건 외로움이 아니었다. 어떤 직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맞았다.
나는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다. 외모나 피지컬에 집착하지 않았고, 흡연이나 문신, 이혼이나 학력 같은 외부 조건에도 큰 편견이 없다. 오히려 나는 어떤 조건도 관계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다고 믿는 쪽에 가깝다.
내가 지금 껏 미혼으로 남아 있는 건 눈이 높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기 때문에,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쪽에 가까웠다. 누가 나와 잘 맞을지를 직감하지 못하는 상태. 잘 맞는다는 건, 조건이 아니라 감정의 밀도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워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하루를 바꿔놓는 순간을 몇 번이나 보아왔고, 그 가능성을 지금도 품고 있다. 감정은 조심스럽게 반응하지만, 반응한다면 나는 그것을 알아챌 수 있다. 그래서 기대하고, 그래서 또 한 번 누군가를 만나고, 또 한 번 걸어 나간다. 감정은 없었지만 대화는 활발히 이어졌고, 말은 오갔지만 마음은 붙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 관계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사랑은 거기 없었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