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기엔 성공한 삶, 하지만 나는 공허했다
나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의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회사에서 일했다. 패션학과를 전공했지만, 학교에서는 옷 패턴만 배웠을 뿐 가방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다.
입사한 첫 해는 업무를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고, 시즌마다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며 훈련하듯 몰입해야 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미주와 아시아 시장을 분석해 마켓 리서치 자료를 작성했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자재를 소싱하거나 트렌디한 요소를 더한 디자인을 브랜드 본사에 제안했다. 영업팀과 개발팀 사이에서 디자이너들의 창의성과 기술적 한계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도 내 역할이었다. 브랜드마다 원하는 스타일과 방향성이 달랐고, 글로벌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해야 했으며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
처음에는 미국 출장을 간다는 사실 조차 설렜다. 미국 동서부에 위치한 브랜드 본사를 오가며 본사 직원들과 직접 미팅을 한다는 경험은 분명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업계 안에서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두세 번 반복되자, 일주일 안에 미국의 동서를 오가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일도 금세 익숙해졌다.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가끔 한국에 돌아와서도 거리에서 우리가 만든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그 장면이 반복될수록 감흥은 점점 옅어졌다.
중국인 직원들은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한국인 관리자들과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추고 있었고, 내가 정확하게 지시만 하면 일은 어렵지 않게 굴러갔다. 존경할 만한 상사들과 함께하며 성과도 꾸준히 나왔고, 시스템 역시 안정적이었다. 문과 출신이었지만 비교적 빠르게 커리어를 쌓았고, 괜찮은 연봉을 받으며 안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점점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었다.
미국 출장 중이었다.
우리가 만든 가방이 대형 리테일 스토어 매장 진열대 곳곳에 빼곡히 놓여 있었다. 상사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매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가 만든 제품이 시장에 이렇게 깔려 있다니, 뿌듯하지 않니?”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당연히 기뻐해야 했다. 우리가 만든 제품이 시장에서 팔리고, 회사가 성장하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니 뿌듯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아침이면 집 앞에서 통근 차량을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공장과 함께 있는 회사로 출근했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직원들이 인사를 건넸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집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직원들은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그들의 손과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나 역시 그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자리 옆 개발실 문을 열면 들려오는 재봉틀 소리도, 방금 만들어진 가방의 내구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쿵쿵 내리치는 소리도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 집과 회사. 하루는 단순한 복사와 붙여넣기의 연속처럼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행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직장에서도 인정받으며 커리어를 쌓고 있었고,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인 삶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게 정말 이런 삶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