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내 세계를 넓혔다

취미였던 음악, 낯선 곳에서 나를 연결하다

by njelo

부모님은 음악을 좋아했다. 아직도 나의 백일 선물로 산 독일산 피아노는 여전히 건재하다. 몽땅한 손가락이 콤플렉스였던 엄마는 내 손가락이 예쁘게 자라길 바라며 6살이 된 나를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중학교 때는 합창단에서 활동했다. 원래 반주를 맡던 친구는 피아노 전공을 준비하던 학생이었는데, 대회 곡이 너무 어려워 계속 실수를 했다. 음악 선생님이 내 연주를 듣고 한 번 쳐보라고 하셨고, 그렇게 반주를 맡게 됐다. 이후 교가 녹음을 하기도 하고, 이후에는 가끔 결혼식 반주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곡이 생기면 인터넷에서 악보를 찾아 혼자 연주했다. 어릴 때 포도 송이를 채워가며 연습하는 것이 너무 귀찮고 싫었지만, 한 평생 피아노를 칠 일이 꾸준히 있어왔다.


엄마와 길을 걷다 우연히 들린 드럼 소리, 엄마는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들을 내가 대신 경험하길 바랐고 나는 신나게 중2 때 처음 드럼을 배웠다. (이후에 용인 수지는 그렇게 실용음악학도들의 성지가 된다.) 드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꼭 밴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밴드부에 가입했다. 혼자 연주하는 것보다 함께 합주하는 것이 훨씬 즐거웠다. 그때부터 밴드는 내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일부가 됐다. 대학도 입학하자마자 밴드 동아리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밴드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2012년, 교환학생으로 중국 중산대학 주하이 캠퍼스에 갔다. 유학생 최초로 교내 밴드 동아리에 가입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웠고, 대학에서도 몇 과목을 들었지만, 막상 중국에서 생활해보니 듣고 말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만큼은 달랐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특히 드러머는 중국에서도 귀한 존재라 여러 팀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나고나니 귀도 트이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밴드부 오디션을 보고 파트별로 한 명씩 선발해 팀을 꾸리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중국에서는 동아리 내에 많은 인원들이 한꺼번에 모여, 직접 멤버를 모아 팀을 꾸렸다. 덕분에 여러 팀과 합주하며 현지 학생들과 교류할 시간이 많아졌다. 예술단과 단과대학별 축제 무대에도 참여했다. 그 결과, 교환학생으로 1년씩 머물던 유학생들 가운데 나는 현지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생이 됐다. 처음에는 언어의 장벽이 컸지만, 함께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합을 맞춰가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사람을 연결하는 강력한 매개체였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을 연결했다.


2015년, 중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퇴근 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러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주말이면 상하이로 가서 음악을 만들고 싶은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공연도 찾아다녔다. 회사 일을 마치고 내가 가장 몰두하는 것은 언제나 음악이었다. 나는 음악을 ‘취미’라고 불렀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오래 붙잡아온 것이었다.


음악은 그저 오래된 취미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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