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 음악과 일 사이 ②

상하이에 나를 풀어놓기로 했다

by njelo

예전에 네오소울 밴드를 결성해보자며 만났던 프로듀서가 있었다. 그는 악기를 직접 연주하지는 못했지만, 샘플링과 사운드 디자인에 능한 사람이었다. 상하이 재즈 씬에서 활동하던 보컬리스트와 세션 연주자들을 모아 프로젝트 밴드를 꾸리려던 베드룸 뮤지션이었다. 악보를 직접 만들어 연주자들에게 건네고, 각자 연습해 오게 하는 방식의 밴드였다. 하지만 그는 곧 아빠가 되었고, 프로젝트는 자연스럽게 멈췄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밴드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 즈음, 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DJ 레슨을 시작했다. 처음엔 새로 뭔가를 배운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하지만 함께 수업을 듣던 폴란드인 수강생이 아버지 건강 문제로 갑작스럽게 귀국했고, 수업은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다 점점 흐지부지됐다. DJ 선생님의 두서없는 커리큘럼과 반복되는 비트 매칭 수업은 점점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음악은 결국 취미로밖에 못 하는 걸까’ 하는 고민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된 그 프로듀서가 나와 음악 취향이 비슷할 것 같다며 한 사람을 소개해줬다. 그는 기타 연주와 샘플링, 미디 작업에 능숙했고, 상하이 롤랜드(Roland)에 다니고 있었다. 그의 작업실에 놀러 갔을 때, 나는 혼자 만든 데모를 조심스럽게 들려줬다. 그는 잠시 듣더니, 함께 팀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중국의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 장비를 사고팔며 알게 됐다는 친구까지 합류했고, 우리는 셋이서 재즈힙합 프로듀서 그룹을 결성했다. 샘플링과 사운드 디자인의 개념조차 없던 내 투박한 데모는, 그들의 손을 거치며 전혀 다른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꿉꿉하고 음산했던 양푸의 작업실에서 첫 앨범을 완성했고, 이를 중국의 주요 음악 플랫폼에 업로드했다.


뜻밖에도 메이저 레이블과 음악 프로그램 관계자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앨범 발매 후에는 해외 뮤지션의 베이징 공연 오프닝 무대에 서게 되었고, 백스테이지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 경험도 했다. 그 후 우리는 매주 주말 음악 작업을 위해 상하이에 스튜디오를 구했다. 각자 장비를 한데 모으고, 금요일 퇴근 후면 부리나케 상하이로 달려갔다. 얼마나 멋진 일이 펼쳐질지 기대하며 시간을 보냈다.

FKJ LIVE IN BEIJING with Special Guest HFigures 7.27.2018 / Studio in Shanghai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두 친구는 점점 술자리와 모임에 더 관심을 가졌고, 1년 동안 단 한 곡도 완성하지 못했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나는 이 팀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래도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그 무렵, 1년 전 공연장에서 알게 된 로컬 밴드의 보컬로부터 연락이 왔다. 밴드 공연에서 디제잉을 해달라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나는 DJ보다는 드럼이 더 어울릴 것 같아 드럼을 치겠다고 말했다. 이 팀은 이미 계획이 분명했다. 합류한 지 한 달 만에 준비되어 있던 열 곡을 주말 이틀 만에 녹음해야 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앨범 녹음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십여 년 동안 밴드를 했지만, 직접 만든 곡으로 앨범을 낸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앨범 발매 후, 우리는 상하이와 베이징을 시작으로 여러 도시를 도는 투어를 했다. 도시마다 찾아와 주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낯선 이들이 사진을 찍자며 다가오는 것도 신기했다. 여러 도시를 돌며 다른 지역 밴드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회사 밖에서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회사 안에서는 점점 권태감이 짙어졌다. 이 회사를 계속 다니면 안정적인 삶은 보장되겠지만, 십 년쯤 지나면 이 도시에 고립된 채 ‘회사–집–회사’만 반복하는 삶을 살게 될 것 같았다. 퇴근 후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도, 주말에 만나 주고받는 이야기들도 모두 음악이었다. 매주 일요일 밤, 상하이에서 가흥으로 돌아가는 막차를 타기 위해 자리를 뜰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레코드숍 앞에서 음악을 들으며 수다 떠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나도 상하이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나는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오래된 취미일까. 음악만 하며 살아보면, 어떤 기분일까. 복잡하게 따지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딱 1년만 음악에만 집중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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