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 음악과 일 사이 ①

가흥에서 상하이까지 — 음악이 나를 이끌었다

by njelo

2015년 첫번째 직장을 관두고, 정규직인 줄 알고 지원했던 대기업 온라인 쇼핑몰. 하필이면 그해부터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 거기다 내가 지원한 부서도 아니라 거의 취업사기를 당해 헤드헌터에게 클레임을 걸었다. 그래도 탄탄한 회사에서 경험삼아 버티자 생각하며, 매일같이 이직을 꿈꾸며 취업 카페를 들락거렸다. 그러다 “패션취업 완전정복” 카페에서 빨간 글씨로 적힌 연봉 공고를 발견하고 바로 헤드헌터에게 연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본사 화상면접을 봤고, 귀가하던 길에 바로 전화가 왔다.


“2주 후에 출국하실 수 있나요?”


가흥(嘉兴), 처음 듣는 도시였다.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해외 주재원’이라는 말에 주저 없이 “네”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정말로 2주 만에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매일 새우잡이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는 기분으로 출근하고 있구나.’

공장 출근 시간에 맞추려면 아침 7시 반까지 사무실에 도착해야 했다. 회사 인근은 치안이 좋지 않아 살 수 없었고, 시내에 거주하던 나는 매일 아침 6시 반, 출근 차량에 맞춰 집을 나섰다. 특히 월요일이면 주말마다 골프를 치고 오시는 부장님이 직접 운전해서 절대 늦으면 안됐다. 혹여나 그 차를 놓치면 택시를 타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옷만 다뤄봐서, 가방 디자인은 하나하나 배워야 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 개편이 이어졌고, 어느 팀에서 갑자기 나를 찾을지 몰라 늘 긴장한 채 대기해야 했다. 회사에는 철저한 매뉴얼과 시스템이 있었고, 손과 발이 되어주는 중국인 직원들도 함께했다. 한국인 상사들은 자녀 교육 문제로 대도시에 거주해 이른 시간에 퇴근했고, 중국 직원들 역시 정시에 퇴근하는 분위기였다. 업무가 몰리는 시기를 제외하면, 나 역시 비교적 칼퇴가 가능한 환경이었다. 웃긴 건 퇴근을 하면 본격적으로 나의 하루가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음악을 듣거나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것이 어느새 일과처럼 굳어졌다. 새벽 두 세시가 훌쩍 넘어 잠들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다 보니 하루 평균 네 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나와 같은 해 입사한 유일한 여자 동기는 2년 만에 귀국했다. 그 이후 나는 백여 명의 중국 직원과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남자 상사들과 동료들 사이에서 5년을 버텼다. 회사에서의 나는 그저 업무를 수행하는 하나의 인력이었지만, 퇴근 후의 나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상하이로 향했다. 공연을 보러 가거나 합주를 하러 가는 일이 점점 자연스러워졌고, 회사 바깥에서의 시간이 날이 갈수록 더 즐거워졌다.





중국의 커뮤니티 플랫폼에서 밴드 멤버를 모집하는 글을 발견했다. 여러 팀에 지원했고, 처음 연락이 닿고 일정이 맞는 이들은 상하이 외곽 칭푸(青浦)의 별장 지하에서 연습하던 팀이었다. 고급 주택단지에 사는 멤버들은 모두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교통이 불편해 지하철역 근처에서 한 멤버가 나를 태우고 합주실로 데려갔다. 점심에는 리더의 아내가 직접 차려준 따뜻한 밥을 함께 먹었다. 모든 게 평화롭고 여유로웠지만, 그들의 음악은 내게 조금 올드하게 느껴졌다.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자연스럽게 상하이에서의 첫 밴드와 결별했다.


이후 또래들이 모인 팀에 합류했다. 드디어 밴드다운 밴드를 만났나 싶던 찰나, 기타리스트가 쿤밍으로 2주만 다녀오겠다며 떠났다. 그리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쿤밍(昆明)은 온화한 날씨와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에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그는 그곳의 삶에 매료되어 그대로 눌러앉은 듯했다. 남은 멤버들끼리 연습을 이어갔지만, 가흥에 묶인 내 현실을 실감하며 이대로는 밴드를 계속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해질 틈도 없이,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음악은 계속하고 싶었다.


그렇게 새로운 길을 고민하던 어느 날, 상하이 스트로베리 뮤직 페스티벌 입장 줄에서 덩치 큰 영국인이 나눠주는 전단지를 받았다. DJ 레슨을 한다는 아카데미 홍보지였다. 이상하게도, 뭔가를 새로 시작해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큰 결심 없이 바로 등록했다. 턴테이블 앞에 둘러서 비트 매칭만 시키는 런던 출신 DJ에게 이 낯선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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