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그림일기
나에게 필요한 건 내게 비켜선 엄마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을까. 엄마의 인생을 아이들에게 내어준 그 사랑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은 당연시 여겨지는 희생에 대해 억울해하며 내 엄마에게는 당당히 희생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만을 바라보고 섰던 어리석은 날들, 그 가운데 딸의 구두를 마당에 집어던지며 홀로 화를 삭인 엄마가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부끄러웠다. 내려다본 내 신발은 여전히 흠집 없이 반짝거렸으므로.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 류시화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한쪽으로 비켜서 있는 이들
봄의 앞다툼 속
먼 발치에 피어 있는 무명초
하루나 이틀 나타났다 사라지는 덩굴별꽃
중심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는 많은 눈물 흘리면서도
비켜선 것들을 위해서는 눈문 흘리지 않았다
산 자들의 행렬에 뒤로 물러선 혼들
까만 씨앗 몇 개 손에 쥔 채 저만치 떨어져 핀 산나리처럼
마음 한켠에 비켜서 있는 이들
곁눈질로라도 바라보아야 할 것은
비켜선 무늬들의 아름다움이였는데
일등성 별들 저 멀리 눈물겹게 반짝이고 있는 삼등성 별들이었는데
절벽 끝 홀로 핀 섬쑥부쟁이처럼
조금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야 저녁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아, 나는 알지 못했다
나의 증명을 위해
수많은 비켜선 존재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언젠가 그들과 자리바꿈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한쪽으로 비켜서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비켜선 세월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내 생을 비켜갔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