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희딤

어린 시절 시골 살이를 했던 나는 자연의 색을 좋아한다. 특히 들꽃의 여리고 앙증맞는 색들을 좋아한다. 들꽃을 좋아하지만 정작 그 이름은 잘 모른다. 예쁘면 그만이지, 하고 우겨본다. 노랑이라는 이름도 들꽃의 노랑과 튤립의 노랑은 채도에서부터 다르다. 초록의 경우도 한여름의 푸릇하고 쨍한 색감보다는 봄에 새순이 자라면서 만드는 연둣빛이 더 귀여워 보인다. 그 색들은 이른 아침 안개와 이슬을 맞으면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한낮, 해가 쨍쨍한 시간이면 그들도 더 선명한 빛깔을 낸다. 그래서 지금도 산책길에 들꽃을 발견하면 반가움에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반면, 해 질 녘의 색은 묘한 두려움을 준다. 많은 이들이 노을을 아름답다 여기지만, 나에겐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오묘한 시간이 불안하게 다가온다. 깊은 계곡의 짙푸른 색도 마찬가지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소름을 자아낸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나는 꽤 색에 민감한 사람인가 보다. 정작 내 옷장에는 무채색 옷이 가득한데 말이다.

들꽃이나 식물처럼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존재들에게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반면, 노을이나 깊은 물처럼 닿을 수 없는 공간에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어쩌면 이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묵묵히 뿌리내리고 나만의 색을 내고 싶다는 내면 깊숙한 바람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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