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취향이 확고한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혼자 여행을 할 때는 변심의 왕이 된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식으로 말하자면, 대문자 P의 기질이랄까. 여행 계획은 일단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음 단계인 숙소 정하기는 구글맵으로 숙소 근처의 교통과 공원들도 둘러보고 결정한다. 그리고 길게는 몇 개월에 걸쳐 블로그와 유튜브를 참고하여 엑셀 계획표에 하루하루 어디를 가면 좋을지 채워 넣는다. 드디어 여행지에 도착! 하면, 나의 계획표는 숙소 도착 방법까지만 알려주고 그 쓸모를 다 한다. 첫째 날엔 이동으로 지쳐서 대부분 휴식을 취하고, 이튿날부터는 날씨가 나의 여행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관광하고 싶은 장소뿐만 아니라 나의 기분까지. 그렇게 나는 적당히 그날의 느낌대로 구글맵에 표시해둔 곳 중 끌리는 곳으로 움직인다.
십 년 전쯤 파리로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계획한 기간은 열흘 정도였는데, 마침 첫날 유심이 없어서 고생하던 여행자 동생을 만나 도움을 주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절반은 그 친구와 매일 함께 돌아다녔다. 파리가 워낙 발길 닿는 곳곳 관광지이자 멋진 장소이기도 하지만, 혼자 간 여행에서 동행이 있다는 것 또한 계획에 없던 일이라 참 좋았다고 기억한다. 특히 센 강가에 앉아 와인을 마신 것이 제일 기억이 난다. 혼자서라면 하지 않았을 테니.
그 이후로 나에게 여행은 길을 잃어도 두렵기보다는 설레는 것이 되었다. 결국 여행에서 남는 건 내가 짠 엑셀 계획표가 아니라, 변심이 이끈 작은 순간들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여행에 있어서는 변심의 왕좌를 유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