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Mar 05. 2022

성적에 목매고 싶지 않아서요

행정고시에 합격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어떤 부처에 배정되느냐도 중요하죠. 저희 때는 2차 시험과 연수원 성적을 합산한 점수로 부처를 선택했습니다. 연수원 성적이 반영되다 보니 일반행정이나 재경 직렬의 합격생은 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마냥 놀지 못했습니다. 점수가 높으면 가고 싶은 부처에 갈 수 있는데, 점수가 낮으면 남는 부처에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가고 싶은 부처에 가려면 연수원 성적을 잘 받는 게 중요했습니다. 2차 시험 점수는 이미 지나간 일이니깐요. 그렇지만 연수원에서까지 성적에 목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점수 가지고 줄 세우는 건 행정고시로 족했습니다.


#1

연수원에서 분임별로 하는 국토순례 활동에서 제가 팀장이 되었습니다. 국토순례를 마치고 결과 보고서를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국토순례 보고서가 절대평가로 바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실상 다 똑같은 점수를 주겠다는 얘기죠. 저는 점수도 점수지만 보고서를 잘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며 좋은 보고서를 쓰자고 팀원들을 다독였습니다.


저는 특별한 보고서를 쓰고 싶었습니다. 남들처럼 보고서에 사진만 넣으면 평범할 것 같고, 보고서에 동영상을 담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동영상 편집을 할 줄 아는 분임 동생을 데리고 활동 영상을 하나씩 만들어 웹에 업로드하고, 주소를 QR코드로 만들어 보고서에 넣었습니다. 코로나19 전이라 QR코드를 아무도 모를 때였는데도 보고서에 품을 많이 들였죠. 그러고 2차원인 보고서 종이에 3차원인 동영상을 담았다며 혼자 기뻐했습니다. 솔직히 오버한 것 인정합니다.


#2

연수원 교육이 끝나갈 때쯤이었습니다. 갑자기 인사혁신처 교육 담당자가 한자검정시험을 쳐서 통과자에게 가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계획에도 없던 거였죠. 교육 끝무렵에 저희들이 노는 모습을 보기 싫으니 어떻게든 공부를 시키기 위해 만든 방안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는 반발심이 생겼습니다. 말이 가점이지 노는 교육생은 점수를 까겠다는 거니까요. 부처 선택이 중요한 직렬은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죠.


저는 그냥 안 하기로 했습니다. 안 하면 제 손해가 맞지만, 급조한 정책에 따라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험 날 저는 백지를 내고 혼자 나가버렸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어차피 시험에 통과했다고 지금 일하고 있는 부처가 달라져있을 것 같지 않거든요. 제 자존심을 지킨 거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30대 마지막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