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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Mar 09. 2022

동안의 추억

연수원에서 법제 발표가 있었습니다. 분임별로 법령 개정 연습을 해서 전체 교육생과 법제 교수님(법제처에서 파견 오신 과장님)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분임에서는 법무행정 직렬인 동생이 팀장으로서 준비했죠. 그런데 갑자기 저에게 발표를 좀 대신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흔쾌히 한다고 했죠.


도시재생과 관련된 법령을 개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이 어렵더라고요. 괜히 내가 한다고 했나 싶었지만 이왕 하기로 한 것 열심히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분임에 민간경력채용(민경채)으로 들어온 형, 누나 앞에서 리허설을 하고 교정도 받았습니다. 나중에 분임 누나가 팁을 하나 주셨는데, 교수님의 질문을 대답하다가 잘 모르겠으면 제가 법 전공이 아니란 걸 최대한 어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희 분임 발표 순서가 왔습니다. 저는 준비한 대로 발표를 무사히 끝냈고, 교수님께서 발표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는 모르겠어서 잘 모르겠다고 답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질문을 몇 번 더 하셨지만 역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분임에선 대답이 척척 나온 것과 너무 비교되어 보였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비장의 무기를 꺼냈습니다.


"교수님, 제가 공대 출신에 재경직이다 보니 법은 행정법을 공부한 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대답이 부실한 부분이 있는데 죄송합니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웃으시면서 물으셨습니다.


"다른 분임은 변호사나 법무행정직이 발표했는데,   분임은 재경직이 발표를 하지? 자네가 막내라고 분임에서 발표를 시킨 건가?"


그 순간 교육장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어려 보인다는 소리를 듣긴 하지만, 분임에서 민경채를 제외하고 제일 연장자였거든요. 저는 교수님께 어리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린 후 발표를 급히 마무리했습니다. 발표석에서 내려와서 카톡을 확인해 보니 절 놀리는 내용의 메시지 수백 개가 와 있더군요.


어쨌든 그 발표가 인연이 되어서 교수님과 연수원 내내 인사드리며 지냈고, 연수원을 마치고 부처로 발령받고서도 몇 번 더 뵈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도움을 받으며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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