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Mar 11. 2022

남산타워

고시생이 무슨 벼슬하는 사람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이 집은 잘 치우고 지내는지, 밥은 잘 먹는지 궁금해서 서울 한 번 올라오면 안 되겠냐며 아들의 허락을 구하는데, 아들은 그게 뭐 어렵다고 한사코 거절을 해댔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시험도 쳤고, 공부한다고 거절할 명분을 대기도 어렵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어머니께 한 번 올라와도 된다고 답하는데, 저의 태도가 마치 고시생이 아니라 장원급제한 벼슬아치의 태도같이 보여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불효는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와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제가 멀리서 서울까지 오셨는데 어디 가고 싶은 데는 없냐고 묻자 어머니는 남산타워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남산타워. 공부한다고 서울밥 먹은 지 몇 년이 됐지만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고 별로 가보고 싶지도 않은 곳이었습니다. 자식에게 바라는 것 하나 없는 어머니가 남산타워 한 번 가보고 싶다는데 그걸 또 왜 흔쾌히 가자고 못했을까요. 오만상을 찌푸리며 남산타워는 어떻게 가는지 그 방법을 잘 모르겠는데 꼭 거길 가고 싶냐고 다른 데는 가고 싶은 데가 없냐고 되물어봤던 걸 떠올려보면 참 한심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눈치를 보며 남산타워 안 가도 괜찮다고 또 고개를 저으시는데 저는 그 어머니의 약해진 모습에 의기양양하여 선심 쓴다는 듯이 서울까지 오셨는데 남산타워 가는 게 뭐 그게 어렵겠습니까 하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습니다. 참 불효를 하는 법도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가 봅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모시고 밖을 나서니 한여름 한낮의 뜨거운 공기가 훅 하며 느껴졌습니다. 에어컨 속에만 있다 순간 아차 밖은 나설 곳이 못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나가자마자 다시 집에 들어오고 싶은 생각뿐이었죠. 어머니는 내 생각 하나 못 읽고 뭐가 그리 좋은지 방글방글 웃기만 하셨습니다. 서울이라고 누가 코 베어 갈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겁나는지 아들 팔을 꼭 붙잡고 말이죠.


자 보자, 여기서 남산까지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나 핸드폰을 검색하는데 뭐 잘 모르겠더라고요. 말만 남산타워지 어디 정류장에서 내려서 어떻게 올라가는지 하나하나 찾아보기에는 햇살이 너무 뜨거웠고 눈이 부셔 핸드폰이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내 마음과 짜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밖을 연신 두리번거리는데 마치 촌에서 두 모자가 상경해서 서울 구경하는 모습처럼 보여 부끄러움이 확 올라왔습니다. 아니 저는 그래도 서울살이를 한 지 몇 년이 넘은 어엿한 서울 촌놈이라 여기 제 어머니랑은 같은 부류로 보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었거든요.


어떻게든 버스를 타고 남산타워 근처까지는 갔습니다. 버스에 내리니 길 건너에 산이 하나 있고, 그 위로 남산타워 같은 게 불쑥 솟아 있더라고요. 사실 저도 남산타워를 멀리서 본 게 다라 저렇게 보이는 게 진짜 남산타워인지 확신할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대낮에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남산타워 앞에서 저 앞에 저 불쑥 솟은 게 남산타워냐고 묻기는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냥 어머니에겐 저게 남산타워다라고 말하는데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똑똑한 아들이 그렇다고 하는데 바로 수긍해버리셨죠. 혹여나 저게 남산타워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끝까지 남산타워로 믿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참 난감했습니다. 남산타워 앞까지는 왔는데 저 남산타워까지 어떻게 가는지 방법을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눈앞에 남산타워가 보이는데, 거길 못 찾아 간다라. 지금으로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냥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되는데, 그땐 정말이었습니다. 왜 남산타워로 가는 법을 못 찾았을까요. 귀찮아서인지 내심 여기까지 왔으니 내 할 일은 다 했고 어머니도 남산타워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된 거다라고 이제 집에 돌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굳이 남산타워를 손으로 만져봐야 하겠냐, 이 정도로 가까이서 본거면 남산타워 간 것 아니냐라며 어머니에게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왜 또 거기서 순순히 수긍을 하셨을까요. 여기까지 온 것도 남산타워 온 거나 진배없다며 아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데 돌아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이게 아들의 불효인 줄이나 알까요.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날의 진상을 알게 되고 이제야 아들이 진심이 그러했다고 깨달으시게 되겠죠. 불효에 불효를 더하는 꼴인가 싶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던 그렇게 남산타워 투어는 끝이 났습니다. 남산을 올라가기는커녕 집에서도 보이는 남산타워를 좀 더 가까이서 더 큰 실물을 눈으로 본 정도로 끝났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철이 들고 효도도 하고 있습니다. 몇 년의 낙방 끝에 고시도 합격하여 어머니의 기를 팍팍 세워드렸고, 고시 공부하느라 장가도 못 가 늙어빠져 결혼이나 할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게 착하고 잘나고 효심 깊은 며느리도 보게 해 드렸죠. 그래서 지난 불효는 다 잊고 살던 때였습니다.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데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아들의 효심 깊음을 설명하던 때였습니다. 아들이 서울에서 공부하느라 힘들고 지쳤는데도 어머니 서울 구경시켜주겠다고, 서울의 명물 남산타워 보여주겠다고 데리고 나서서 남산에 올라 타워까지 갔다고 하시는  아니겠습니까. 저는  먹다 말고 순간 부끄러워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득한 정신을 붙잡고 아니 어머니  그렇게 말씀하시는데요, 그때 남산타워 근처까지 갔지 올라가진 않았잖아요라고 말하며 겨우 팩트에 가까운 진실을 바로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니 그거면 남산타워 갔다  거나 다름없지,  어디 가서도 아들이 남산타워 구경시켜줬다고 자랑하고 다닌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도저히  되겠다 싶어 제가 자꾸 효자로 포장되는  하늘에 죄짓는  같이 마음이 무거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동안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