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부처를 옮길 때 일입니다. 당시 제가 하던 일은 종류가 다양하면서도 하나하나가 어려운 업무들이었습니다. 청사 앞은 물론 청와대까지 가서 시위하시는 민원인들, 국회가 관심이 많아 툭하면 불러다 현황을 설명해달라는 사업, 수천억 원 규모의 기금 총괄, 거기다 담당하는 법률까지. 제가 오기 전에도 사무관 경력 5년 이상은 되는 사람이 쭉 맡았던 업무였습니다. 경험이 부족했던 저는 주말도 없이 매달 풀 초근을 찍으며 힘들게 일했었죠.
이런 자리에 저보다 한참 후배인 수습 사무관이 후임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업무를 인계하면서도 앞으로 해야 할 게 어려운 일뿐이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다음 주에 국회 간담회가 있는데 수습이 과장님을 데리고 국회에서 잘 할 수 있을까, 제가 쓰다 만 기금 운영 개선 방안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작년에 무리해서 집행한 걸 국회가 결산 때 지적하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게다가 인계를 하면서 과연 이 후배는 제 이야기를 다 이해하고 있는 건가도 의문이 갔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표정을 보이는데, 제가 보기엔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었거든요. 알겠다는데 제가 그럴 리 없다며 다시 설명해주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 그냥 넘어갔습니다. 대신 몇 달이 지나도 좋으니 모르는 것이 생기면 바로 저에게 전화해도 괜찮다는 당부를 하면서요.
다음 날, 무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직장에 왔습니다. 과연 후배가 잘할 수 있을지 저의 신경이 모두 거기로 향해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전화가 오지 않을까란 생각에 하루 종일 제 휴대폰만 바라봤습니다. 연락이 없더군요. 이러다간 제가 했던 일까지 다 망치진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한참 지나서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업무에 대한 간단한 질문이길래 제가 빨리 대답해주고, 오히려 제가 묻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건 없었냐, 그 간담회는 잘 끝났냐 등등. 후배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간담회 참석자들이 고성으로 욕하기 시작하자 과장님과 자기는 자리에서 뛰쳐나와 도망갔지만 그 후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고.
저는 아니 그때 '도망친 일이 있었음 말을 해줘야 할거 아니야'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왔지만 꿀꺽 삼켰습니다. 이제는 제 일이 아닌데, 제가 괜히 간섭해봐야 책임 지지도 못할 건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다 싶었습니다. 제가 듣기엔 문제처럼 여겨져도 당사자가 아니라는데 어쩌겠습니까. 제가 나와도 회사는 알아서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는걸요. 그런데 별 문제없다는 소리에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살짝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