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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Mar 12. 2022

내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간다

제가 부처를 옮길  일입니다. 당시 제가 하던 일은 종류가 다양하면서도 하나하나가 어려운 업무들이었습니다. 청사 앞은 물론 청와대까지 가서 시위하시는 민원인들, 국회가 관심이 많아 툭하면 불러다 현황을 설명해달라는 사업, 수천억  규모의 기금 총괄, 거기다 담당하는 법률까지. 제가 오기 전에도 사무관 경력 5 이상은 되는 사람이  맡았던 업무였습니다. 경험이 부족했던 저는 주말도 없이 매달  초근을 찍으며 힘들게 일했었죠.


이런 자리에 저보다 한참 후배인 수습 사무관이 후임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업무를 인계하면서도 앞으로 해야   어려운 일뿐이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다음 주에 국회 간담회가 있는데 수습이 과장님을 데리고 국회에서 잘 할 수 있을까, 제가 쓰다  기금 운영 개선 방안을  마무리할  있을까, 작년에 무리해서 집행한  국회가 결산  지적하면 제대로 대응할  있을까,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게다가 인계를 하면서 과연 이 후배는 제 이야기를 다 이해하고 있는 건가도 의문이 갔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표정을 보이는데, 제가 보기엔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었거든요. 알겠다는데 제가 그럴 리 없다며 다시 설명해주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 그냥 넘어갔습니다. 대신 몇 달이 지나도 좋으니 모르는 것이 생기면 바로 저에게 전화해도 괜찮다는 당부를 하면서요.




다음 날, 무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직장에 왔습니다. 과연 후배가 잘할 수 있을지 저의 신경이 모두 거기로 향해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전화가 오지 않을까란 생각에 하루 종일 제 휴대폰만 바라봤습니다. 연락이 없더군요. 이러다간 제가 했던 일까지 다 망치진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한참 지나서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업무에 대한 간단한 질문이길래 제가 빨리 대답해주고, 오히려 제가 묻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건 없었냐, 그 간담회는 잘 끝났냐 등등. 후배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간담회 참석자들이 고성으로 욕하기 시작하자 과장님과 자기는 자리에서 뛰쳐나와 도망갔지만 그 후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고.


저는 아니 그때 '도망친 일이 있었음 말을 해줘야 할거 아니야'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왔지만 꿀꺽 삼켰습니다. 이제는 제 일이 아닌데, 제가 괜히 간섭해봐야 책임 지지도 못할 건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다 싶었습니다. 제가 듣기엔 문제처럼 여겨져도 당사자가 아니라는데 어쩌겠습니까. 제가 나와도 회사는 알아서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는걸요. 그런데 별 문제없다는 소리에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살짝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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