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사무관이 오면 전통적으로 대면식이란 걸 합니다. 가까운 선배부터 차례로 비싼 저녁과 술을 사주는데 일종의 신입 환영회 같은 자리입니다. 매 기수마다 치러지니깐 선배들끼리 은근히 경쟁심리가 있습니다. 우리 대면식은 정말 재미있게 잘 놀았다며 으스대기도 합니다. 요즘은 코로나19로 대면식이 없어지다시피 되었기 때문에, 코로나19 이전의 대면식을 기준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대면식 문화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와 같은 도덕적 판단은 일단 안 하기로 하겠습니다)
대면식도 부처별로 성격이 좀 다릅니다. 보통은 저녁으로 맛있는 걸 먹고, 2차, 3차 체력이 되는 대로 밤늦게까지 마십니다. 제가 있던 부처는 선배들이 다음 날 점심까지 사줘야 대면식이 끝났죠. 반면에, 조직문화가 개인주의에 가까운 부처는 점심에 대면식을 하거나, 저녁에 보더라도 딱 저녁만 먹고 끝난다더라고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상상이 안 됐습니다. 술이 없는 대면식이라니.
저희가 선배들이 되었을 때 후배들이 들어온다고 하면 뭐 먹으러 갈지, 어떻게 대면식을 진행할지 고민부터 했습니다. 동기 단톡방이 들썩거렸죠. 그런데 또 일이 너무 바쁘다거나 사람이 너무 많은 부처는 대면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2~30명씩 신입이 들어온다면 어수선해서 몰입감이 떨어질 것 같긴 하네요.
몇 년 차 선배까지 대면식을 하는지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동기들이 다 과장이 되면 안 한다거나, 10년 선배까지만 한다는 얘기도 있어 부처별로 그 기준은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있던 부처는 공식적으로는 10년 선배까지 하고, 비공식적으로 더 높은 선배들이 날짜를 잡아 따로 저녁에 부르셨습니다. 부처에 처음 들어갔을 땐 몇 달 동안 저녁 술자리가 매우 많았죠. 그러면서 선배들 얼굴도 익히고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대면식 시즌에는 여기저기서 소문도 많이 들립니다. 어디 부처는 몇 년 선배까지 했다더라, 어디는 대면식인데 술도 안 마시더라는 것 같이요. 하지만 가장 재미있는 소문은 어디 부처에 누구랑 누가 싸웠다는 것이죠. 매년 그렇게 싸우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소문의 당사자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대면식 때 필름이 끊겼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친구들이 걱정하는 연락이 와 있더군요. 제가 선배와 싸웠다는 내용으로 마치 증권가 지라시 같은 카톡이 선배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기들은 저보고 회사 들어오자마자 사표각이라며 놀려댔지만, 저는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오자마자 소문에 휩싸이다니. 나중에 선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소문이 과장해서 퍼진 것 같다고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그런 소문도 시간이 지나니 다 사라지긴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