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습관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면 몇 층에서 출발하는지, 몇 층에 서 있는지 같은 것들을 유심히 봤습니다. 언제부터 그런 걸 따지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추측해보자면 괴기담을 모은 책 같은 데서 엘리베이터에 나오는 귀신 이야기를 봤을 때부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 혼자만 탔는데 정원 초과 버튼에 불이 켜졌다거나, 닫힘 버튼을 누르는데 자꾸 누가 타는 것 마냥 저절로 문이 열린다거나 하는 것은 귀신 이야기의 단골 소재였거든요. 어린 마음에 엘리베이터는 신기하면서도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저도 엘리베이터를 타다가 놀란 일을 몇 번 겪었습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가 서 있다가 제가 버튼을 눌러서야 비로소 내려오기 시작했다면 당연히 그 안에 사람이 없는 게 마땅할 것인데, 간혹 사람이 있을 때가 있었거든요. 보통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목적지 층을 누른 줄 알았는데 깜박했다거나 하는 사소한 실수로 벌어지는 일이라 생각해서 놀라긴 했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가기 어려웠던 일도 하나 있어서 그 일을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대학원을 다니면서 게임에 빠져 살았을 때였습니다. 집 앞 조그만 6층짜리 상가의 4층에 있는 피시방에서 살다시피 했었습니다. 보통 게임을 시작하면 새벽 4시는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죠. 그 시간에는 피시방 빼고는 모조리 다 불이 꺼져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는 1층 아니면 4층에만 서 있었습니다. 피시방에 오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만 이용하다 보니 당연한 거였죠.
그날은 좀 이상했습니다. 제가 새벽 4시에 피시방에서 나와 집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봤더니 3층에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속으로 3층에도 새벽에 일이 있나 보다 하면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기 적적해서 잠깐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4층에 있겠지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보니 엘리베이터가 5층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서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누가 5층에 갔을 리가 없는데 왜 거기 서 있을까 하고요. 그러면서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고 4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습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심 정말 귀신이 있다면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지 않을까란 농담을 속으로 해봤습니다. 무서운 기분을 덜려고 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문이 열리는 순간 속으로 '헉' 하고 놀랐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꼬마 여자애 두 명이 서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둘 다 가벼운 옷차림이었고, 둘 다 저를 뻔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각각 4살,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애들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숨이 멎은 채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여기서 제 이야기를 실제로 들은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왜 탔냐고 나무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실제 그 일을 겪어보면 알 거라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타게 된다고 답했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누르려고 보니 당연하게도 아무 버튼도 눌러있지 않았습니다. (그랬으니 5층에 서 있었겠죠) 저는 손을 덜덜거리며 1층을 눌렀습니다. 문 앞에 꼭 붙어 서 있었고, 뒤를 감히 쳐다볼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손이 슬쩍 다가오더니, 지하 1층을 누르고 사라졌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4층부터 1층까지 내려가는 시간이 무척 길었습니다. 1층에 서자마자 저는 도망갔습니다. 꼬마 여자애 둘을 엘리베이터에 남겨두고 혼자 달렸습니다. 순식간에 집까지 도착해서 같이 살던 친구에게 방금 겪은 일을 소상히 이야기해줬습니다. 둘 다 그 여자애들이 귀신이 아니고선 설명이 안된다며 앞으로 그 상가에 그 피시방은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몇 년 후 그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이 이야기를 다시 나눴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그러더군요. 그 엘리베이터에 자기랑 저랑 함께 탔었다고. 그러면서 친구가 마치 자기가 겪은 것 마냥 이야기를 술술 하더라고요. 저는 에이 아니라며 그땐 분명 나 혼자 있었다고 했지만 친구가 오히려 더 놀라며 무슨 소리냐며 반문했습니다. 결국 거기 누가 있었는지 결론이 나지 않았죠.
저는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하지만 확실하다고 말하기도 이젠 애매합니다. 그때 그 애들을 본 게 사실인지, 나 혼자 본 게 사실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제 기억에 살을 붙이고 양념을 쳐서 그럴듯하게 꾸며낸 것은 아닌지. 지금은 다 큰 40대 아저씨가 됐지만 여전히 엘리베이터는 저에게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