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Mar 16. 2022

저 폭탄 아니에요

새로운 부처로 옮기게 되었을 때 거기선 저에 대해 걱정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부처를 옮기려고 하더라도 그 부처에서 잘 놔주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부처에서 저를 너무 쉽게 놔준 걸로 봐서 혹시 폭탄을 넘긴 것 아닌가 싶었다더라고요. 제가 정말 폭탄이었는진 잘 모르겠지만, 이전 부처에서 저를 쉽게 놔준 이유가 있긴 있었습니다.




제가 부처를 옮겨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였습니다. 마침 원하던 부처에서 전입 공고가 떴죠. 주말에 나와 이력서와 지원서를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져서 뒤를 돌아보니 과장님이 서서 제 컴퓨터를 보고 계셨더라고요. 과장님께서는 저보고 부처를 옮길 거냐고 물으셨고, 저는 원래부터 가고 싶었던 부처였는데 이번에 전출 제한도 풀리니깐 한 번 지원해보려고 한다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했습니다.


과장님께서는 이왕 옮기기로 마음먹었으니 잘해보라며, 다만 지원했다가 떨어지게 되면 앞으로 부처 생활이 힘들어질 거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지원을 안 하면 몰랐던 것으로 해주겠다는 말씀도 덧붙이셨고요. 저는 그 협박 아닌 협박에 넘어가지 않고 지원서를 끝까지 써서 제출했고, 면접까지 봤습니다.


결과는 탈락이었습니다. 자리가 나면 다시 연락을 하겠다며 여지를 남겨두었지만, 기대를 할 수는 없었죠. 과장님께 결과를 알려드렸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제부터 딴생각 품지 말고 업무에 매진하라고 하셨습니다. 일도 산더미같이 주시며 제 시간 안에 못해낼 때에는 큰 소리로 화를 내기도 하시고요. 과장님께서는 종종 입버릇처럼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네가 그때 붙었으면 흔쾌히 보내주려고 했지만, 떨어졌기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것이라고요.


저는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다 제 업보라고 생각하며 버텼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지났습니다. 갑자기 그 부처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아직 옮길 생각이 있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옮기겠다고 답하고, 바로 과장님께 뛰어갔습니다.


"과장님, 저 붙으면 보내주신다고 하셨죠? 저 다시 오라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옮기겠습니다."


과장님께서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잘됐다고 축하해주시면서 당연히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과장님께서 인사팀에 잘 말씀해주셔서 차질 없이 전출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거기다 국장님은 이미 부처를 한 번 옮겼다가 다시 돌아온 경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부처로 간다니깐 '갔다가 잘 안 맞으면 자기처럼 다시 돌아와도 되니깐 잘 가라'라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당시 실장 자리는 비어 있었고, 차관님은 저에게 관심이 별로 없으셨고요.


결국 옮기는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부처에서 쉽게 내보내 준 것이라고 상세히 해명하긴  구차했습니다. 대신 폭탄으로 오해받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국민의 세금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