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생활을 할 땐 일주일에 딱 반나절 쉬었습니다.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오전. 정확하게는 토요일에 무한도전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부터 일요일 점심까지였습니다. 유일하게 쉬어도 된다고 허락한 시간에 무한도전을 꼭 챙겨보았습니다. 무한도전은 합격할 때까지 저에게 위안이 되었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처음부터 무한도전을 챙겨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식당에서 우연히 무한도전을 보게 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고시생이 가는 식당은 자리 배치부터가 달랐습니다. 대부분 1인용 테이블이었고, 의자도 전부 한 방향, TV를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처럼 고시생들은 밥을 먹으며 다 같이 무한도전을 보았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웃긴 부분이 나오면 고시생들이 다 같이 조용하게 웃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공부만 하고, 때로는 자기 처지를 비관하면서 지내온 고시생들에게 무한도전은 그렇게라도 웃을 기회를 준 것입니다. 저도 그 덕에 웃었습니다. 나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존재란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무한도전이 할 때 맞춰서 식당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처지의 고시생들과 따로이자 함께 웃으며 위안을 얻고 싶었습니다.
무한도전을 보면서 단순히 재미만 느낀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한도전의 유재석을 보면서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유재석을 단지 재미있는 개그맨이라 생각했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개그맨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관리를 한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하다가 좀 어려우면 대충 넘어가야지라고 생각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유재석이 국민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행동 하나하나 조심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고시생이란 감투를 쓰고 내 공부가 1순위이라며 남 배려 없이 살고 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유재석을 보면서 마음을 다졌습니다. 고시생인 지금부터라도 남들 보기에 바르게 살아야겠다라면서요. 지금부터 그래야지 합격하더라도 괜찮은 공무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 무한도전 재방송을 봤는데 예전 고시 공부할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그 절실함을 잊고 지낸 것 같았는데 그래도 마음이 환기가 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