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Mar 19. 2022

결자해지

예전에 과장님, 선배 사무관 이렇게 셋이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과장님께서 어쩐 일인지 자기에게 불만이 있으면 이야기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과장님 말씀을 잘 따르시던 선배 사무관이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과장님께서는 이 일을 회상하시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를 인용하셨을 정도로 충격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선배는 과장님께서 선배가 쓰던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들면 그 파일을 달라고 한 후 본인이 직접 컴퓨터로 고치신 일이 몇 번 있었다고 했습니다. 선배는 아무리 일이 중요하고 바쁘다고 하더라도 사무관에게 보고서 작성을 맡겼으면 사무관이 끝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과장님의 행동은 사무관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과장님께서는 그 이야기에 놀라며 바로 해명을 하셨습니다. 일이 워낙 많으니 보고서를 수정한다고 사무관이 왔다 갔다 하느니 자기가 한 번에 수정해서 주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냐라고 하셨죠. 하지만 선배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과장님의 행동으로 자기가 신뢰받지 못한다고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함께 일을 할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선배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 일은 자기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저 또한 선배의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과장님께서 제 보고서를 직접 고쳐주신다고 하면 내심 더 좋아했습니다. 일단 일이 빨리 끝나니깐요. 하지만 선배 덕분에 제가 사무관으로서 책임감이 부족했었단 걸 깨달았습니다. 제 일을 제가 못 끝내서 남이 대신한다면 저의 자존심에 상처가 난다는 것도요.




최근에 어떤 과장님께서 자기 부서 직원들은 책임감이 없다며, MZ세대과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그 과장님 밑에서 일하는 사무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장님이 일을 시켰다가 마음에 안 들면 과장님이 알아서 다 고친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과장님이 고칠 건데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제 생각에는 과장님께서 사무관에게 일을 맡겼으면 일처리가 답답하더라도 그 사무관이 직접 끝내도록 하면서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간에 과장님이 채어가서 직접 마무리한다면 그 당시의 일은 빨리 잘 해결되겠지만, 이게 반복되면 사무관 입장에선 일할 맛이 안 나겠죠. 나중에는 과장님께서 모든 일을 직접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훌륭한 리더라면 조직의 단기적인 성과에만 치중해선 안 되고 구성원을 성장시켜서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직원들이 결자해지 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리는 것도 리더의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