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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Mar 22. 2022

웃으며 토론하기

행정고시 2차 시험에 합격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면접이 남아 있는데요. 면접에서 꽤 많은 사람이 떨어집니다. 면접에 한 조가 6~7명으로 구성되는데, 그중에 한 명은 떨어진다고 봐야 했었죠. 면접에서 떨어지면 다시 1차부터 시험을 봐야 했기 때문에 그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면접 준비 기간인 한 달 동안은 정말 피가 마를 정도로 힘들게 준비했습니다. 지금은 제도가 바뀌어서 1차 시험은 면제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면접 부담이 줄어든 건 아닐 것입니다.


면접은 집단 토론과 개인 발표로 나뉘었는데요. 집단 토론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집단 토론에 대해 잠깐 설명드리자면, 면접 조 하나가 모여서 찬/반이 갈리는 주제를 받아 그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토론을 합니다. 토론 순서는 모두발언, 찬반토론, 마무리발언으로 진행되고요. 마무리발언에서는 "다들 좋은 의견을 주셨는데 결론이 잘 안 나와서 아쉬웠다"와 같은 소감과 함께 "앞으로 공직에 가게 되면 좀 더 건설적인 토론이 될 수 있도록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겠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저는 면접 스터디에서 집단 토론을 여러 번 연습하다 보니 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마무리발언에서 6~7명 모두가 비슷한 발언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 듣는 면접 평가위원이 지루하지 않을까 했던 것이죠. 그래서 실험을 해봤습니다. 마무리발언 때 진짜 제가 느낀 점을 말했던 것이죠. 예를 들어, "오늘은 즐겁게 토론을 하려고 했는데 주제가 무거워서 그게 잘 안됐다"라는 식으로요. 잘못하면 생뚱맞은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으니 안전하게 하자며 스터디원들이 저를 말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짜 느낀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실제 면접날이었습니다. 오전에 면접 조별로 집단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찬반 의견 발언까지 별 탈 없이 끝났고 마무리발언을 할 차례였습니다. 당연하게도 저마다 비슷한 내용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는 경직된 얼굴을 억지로 피고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토론 시작 전에는 웃으면서 토론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긴장되어서 그런지 그렇게 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제가 공직에 가게 되면 사람들과 웃으면서 토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면접장을 나왔습니다. 함께 집단 토론을 한 동생이 저보고 그러더군요. 제가 마무리발언을 할 때 제 뒤에 앉아 있던 평가위원이 빵 터져서 웃었다고. 저는 속으로 정말 다행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합격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떨어졌다면 (마무리발언 때문에 떨어진 게 아니었더라도) 평생 후회할 뻔했습니다.




지금 제 업무를 하다 보면 다른 부처 공무원들과 회의를 할 일이 종종 있습니다. 제가 면접장에서 말했던 대로 회의를 할 때 웃으면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는지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에게 나쁘지 않은 점수를 주셨던 평가위원을 생각해서라도 다음에 있을 회의에서는 환한 미소를 지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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